언론의 자정 노력으로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모방하는 죽음)가 축소됐다는 연구와 관련, 언론에서 보도가 쏟아졌다. 정작 해당 언론들은 보도자료를 받아쓰며 ‘자살’이라는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심지어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한 삼성서울병원은 자살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지도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베르테르 효과’ 크게 감소했다”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제목에 ‘자살’ 강조한 보도 29건 중 18건에 달해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우리나라 자살률이 줄어든 배경으로 언론의 보도변화를 꼽았다. 아울러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호주-뉴질랜드 정신의학 저널(Australian & New Zealand Journal of Psychiatry(IF = 5.744))' 최근호에 발표했다고 22일 밝혔다.

해당 연구는 유명인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언론 보도가 극단적 선택 방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지 않았을 경우 자살률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전 교수 연구팀은 그 근거로 지난 2005년부터 2011년 사이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보도 이후 한 달 동안 일반인 자살률은 평균 18% 늘었지만,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 예방법)과 2013년 자살 보도 권고기준 2.0이 시행되면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사진=Getty Images Bank

언론은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온 보도자료를 같은 날 오전부터 받아쓰기 시작했다. 관련 보도는 네이버에 검색이 되는 매체(검색‧뉴스스탠드‧콘텐츠 제휴 매체) 기준으로 22일 하루 총 29건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제목에 자살을 명시한 기사는 18건(62%)이다. 해당 매체(보도 시간순)는 뉴시스, 연합뉴스, 시사위크, 매일경제, 헬스조선, 헬스인뉴스, MBN, 청년의사, 메트로신문, 메디컬투데이, 뉴스1, 인터뷰365, 동아사이언스, YTN사이언스, 여성신문, 코리아헬스로그, 한국일보, 메디컬월드뉴스 등이다. 

권고기준이 영향 미쳤다는 보도…정작 기준 안 지키며 보도

정작 해당 기사는 보건복지부를 통해 마련된 자살 보도 권고기준 2.0이 효과를 봤다는 내용이지만 관련 기사들은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보도자료 내용에 있는 자살이라는 표현은 ‘극단적 선택’ 등으로 표현해 보도했어야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는 보도가 된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는 9가지 원칙이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원칙은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한다’고 돼 있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은 당초 2004년 만들어졌으나 SNS의 등장 등으로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2013년 수정됐다.

▲22일 삼성서울병원이 배포한 전홍진 교수 연구팀 연구 성과 관련 보도자료 일부 갈무리. 사진=삼성서울병원
▲22일 삼성서울병원이 배포한 전홍진 교수 연구팀 연구 성과 관련 보도자료 일부 갈무리. 사진=삼성서울병원

제목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싣지 않고 극단적 선택 등의 표현으로 바꿔서 보도했거나 베르테르 효과만 언급한 기사는 총 10건에 그쳤다. 나머지 한 건은 관련 연구 보도자료를 인용한 칼럼이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는 “유명인 극단적 선택 뒤 모방 ‘베르테르 효과’ 8년새 확 줄었다”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헤럴드경제는 “언론 보도기준 바꾸자…‘베르테르 효과’ 확 줄었다”라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극단적 선택’ 언론 보도 자정…‘베르테르 효과’ 줄었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데일리는 “‘베르테르 효과’ 크게 감소했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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