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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저주’ 속 그래도 ‘희망’을 본다
도쿄 올림픽 ‘저주’ 속 그래도 ‘희망’을 본다
[이선영의 시선]

2020 도쿄올림픽은 32번째 하계 올림픽이지만 여러 면에서 최초다. 125년 역사상 사상 처음으로 1년 연기돼 홀수년에, 그것도 관중 없이 치러지는 초유의 올림픽. 수상자가 스스로 메달을 목에 거는 ‘셀프 메달 수여식’도 예정된 진풍경 중 하나다. 중계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에게도 이번 같은 올림픽은 처음이다. 

MBC의 경우 원래라면 10여 명의 아나운서를 현지에 파견하지만 이번에는 중계진을 최소화해 본사에서 아나운서 1명만 단독으로 파견했다. KBS도 역사상 최소 인원을 파견했고, SBS는 중계진 출장 없이 모든 경기를 서울에서 중계하기로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취재 제한으로 현장 중계의 이점이 없어졌기 때문인데, 가장 큰 변화는 3인 중계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가령 기존에 캐스터 1명에 해설진 2명이 하던 축구 중계는 거리 두기 방역 지침 때문에 현장 중계석에서는 할 수 없다. 결국 현지에서 송출한 화면에 목소리를 생방송으로 입히는 ‘옵튜브’ 방식으로 대부분의 경기가 진행된다. 

중계방송뿐 아니라 취재 환경도 열악해졌다. 모든 기자들이 취재 동선을 사전에 조직위에 보고해야 하고 선수들과 대면 인터뷰도 금지됐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 사이에서는 취재력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언론사 모두 똑같은 내용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나온다.

그런데 도쿄 현지에 미리 입국해 IBC(국제방송센터)에 머무르는 동료들에 따르면 이런 엄격한 취재 제한이 무색하게 방역 관리가 허술하단다. 취재진의 이동을 IBC 내로 제한하고, 핸드폰으로 동선을 추적하는 시스템은 별도 확인 절차가 없어 IBC 밖을 자유롭게 오가는 외국 취재진이 숱하다고 한다. 

외출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는 ‘15분 룰’도 유명무실. 도쿄 내 마스크 착용이 권고 사항이다 보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도 10명에 3~4명은 된다는 전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직위원회 직원들뿐 아니라 참가선수 중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이러니 개막을 사흘 앞둔 지금까지 ‘올림픽을 굳이 왜 하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숱한 냉소가 오갔다. 우여곡절 끝에 개막은 하더라도, 대회가 언제고 갑자기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매주 스포츠 뉴스가 끝나고 포털과 유튜브를 통해 달리는 시청자들의 반감은 더 직접적이다. “이번 올림픽은 아예 안 보겠다”는 보이콧 선언은 말할 것도 없고 “망했으면 좋겠다”며 아예 저주를 퍼붓는 경우도 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전 세계가 전염병에 신음하는 지금 ‘세계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에 입각해 세계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역할을 IOC가, 올림픽 개최지인 일본이 했어야 했다. 최소한의 안전마저 의문인 무대를 던져 놓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경기를 펼치라니. IOC와 일본 정부는 올림픽 정신을 수호하는데 이미 실패했다. 

하지만 이들의 실패와는 별개로, 우리는 여전히 선수들을 바라봐야 한다. 올림픽 무대는 천문학적인 손익이 달린 IOC의 것도,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개최국의 것도 아니다. 숱한 시간을 스스로 한계로 밀어 붙여가며 달려온 선수들 것이다. 

올림픽 시계를 보며 선수들의 5년 치 땀, 숨, 꿈이 어른거린다. 13살부터 세차장 알바를 하면서 어렵게 육상 선수로서 자리 잡은 마라톤의 심종섭, 9년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체조의 양학선, 꿈에서도 노를 젓는다는-4수 끝에 올림픽에 출전하는 조정 종목 단독 출전 선수 정혜정,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인 이름 모를 선수들까지 모두. 올림픽에 오기까지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번 대회가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드라마를 써낼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한 줄도 놓치고 싶지 않다. 함께 주먹을 불끈 쥐게 할 전율이든, 코끝이 울컥하고 아려오는 순간이든, 최대한 생생히 전하고 싶다. 

역대 최악의 올림픽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이번 대회를 향해 희망 어린 시선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린다. 어쩌면 그동안 본 적 없는, 팬데믹보다 더 극적인, ‘최초의 희망’을 목격할 수도 있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
▲이선영 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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