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이 최근 언론사 ‘무더기 인수’에 나서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호반건설은 지난 5월 광주방송을 매각하면서 같은 시기 전자신문과 EBN을 사들였다. 호반건설은 2019년 포스코의 서울신문 지분을 인수한 뒤 2년 만에 재차 서울신문 구성원에게 지분 인수를 제안하고 나섰다. 호반건설이 10조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면서 방송법 위반을 피해 지역방송을 매각하는 가운데 전국 단위 전문·종합 매체를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호반그룹의 ‘미디어그룹’ 구상의 일환 아니냐는 질문과 함께 건설사의 자본력을 동원한 언론사 인수에 우려도 제기된다. 호반그룹 고위관계자는 20일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당초 구상 같은 것은 없었다”며 “EBN과 전자신문은 수익성이 있다고 봤고, 서울신문은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뜻에 따른 언론 투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미디어 정책에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반건설은 인수한 언론사들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호반그룹 사옥에 입주시킬 예정이다. 전자신문과 EBN이 7월 말부터 현재 비어있는 1동으로 사옥을 이전한다. 호반건설은 1동에 방송시설을 들여 스튜디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규모가 더 큰 2동엔 호반건설 사옥과 함께 건설사 관련 자회사들이 들어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대로 호반건설 사옥. 사진=호반건설 홈페이지
▲서울 서초구 양재대로 호반건설 사옥. 사진=호반건설 홈페이지

호반건설은 지난 7일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서울신문 주식 전량을 매입하고 싶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매입대금으로는 1인당 위로금 5000만원 등 총 510억원을 제시했다. 중앙일간지 수준 임금 개선과 편집권 독립 등도 보장하겠다고 했다. 19일 인수한 전자신문 구성원에도 3년 간 임금 30% 인상과 중앙경제지 수준 개선, 자녀 학자금과 취재비 지원, 위로금(기본급 100%) 지급 등을 확약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최근 동시다발로 이뤄진 언론사 매각과 인수 움직임을 두고 “큰 그림을 하나씩 연결해가려는 것은 아니다. 서울신문과 관계는 2년 전부터 이어졌고, 광주방송의 경우 지난해 말로 ‘10조 대기업’ 집단에 들면서 매각하게 됐다. 전자신문과 EBN은 때마침 수익성이 있는 사업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자신문과 EBN 인수 배경에 “전자신문의 경우 유가부수도 많고 재정자립도도 높았다. IT와 경제를 비롯한 전문 영역이 앞으로 더 부상하지 않겠나. 건설 아닌 안정된 산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요구가 있던 상황에서 두 매체는 전문지라는 점이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자신문은 전자신문이 주체이다. 독립적으로 그쪽(전자신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재무적으로 지원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전자신문과 EBN 인수가 수익 사업 차원이라는 발언은 논란 소지가 있다. 호반건설이 ‘편집권 독립’을 공언했으나, 매체 경영에서 재무 성과를 우선 목표 삼을 가능성이 읽히는 대목이다. 더욱이 건설자본이 미디어그룹을 통해 이를 추구할 경우, 언론보도를 통해 대주주의 산업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 호반건설과 EBN, 전자신문 로고
▲ 호반건설과 EBN, 전자신문 로고

이 관계자는 서울신문 인수 시도에는 “수익성보다는 김상열 회장의 뜻”이라고 했다. “김 회장이 학창시절 시골에서 고학을 하면서 배달하던 신문 가운데 하나가 서울신문이었다고 한다”면서 “서울신문의 경우 수익성을 위한 전략이라 보기 어렵다. 편집권 독립을 전제로 우리(호반)는 재무와 경영을 뒷받침하고 투자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해당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호반이 미디어그룹 운영에 뜻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남들이 볼 때도 (미디어)그룹이 되지 않나. 이제 미디어 정책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방송매체를 출범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전자신문 구성원들이 여러 채널로 확장할 뜻이 있고, 투자 자금과 확장 시설이 필요했던 것으로 안다. 전자신문을 통해서 TV채널을 출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EBN은 호반의 전자신문 인수 소식을 알리며 “전자신문TV(가칭) 설립 등 신문, 온라인 미디어, 방송을 아우르는 종합미디어 그룹으로 발전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디어그룹을 거느린 건설자본의 출현에 우려가 나온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호반이 대주주였던 KBC광주방송의 경우 2011년 호반건설이 인수한 뒤 2년간 호반건설 홍보 관련 보도가 앞선 2년에 비해 12배 늘었다.

▲서울신문 사옥인 서울 프레스센터.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신문 사옥인 서울 프레스센터. 사진=김예리 기자

세간엔 김상열 회장이 건설사 소유 미디어그룹을 형성한 뒤 차남에게 경영을 맡길 구상이라는 구설도 돌았다. 김 회장의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상무이사는 현재 28세로 호반건설 출자회사인 호반산업 지분의 42%를 소유한 대주주다. 이같은 주장에 호반그룹 관계자는 “소설은 어떻게든 못 쓰겠나.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라고 했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19일부터 23일까지 ‘호반건설의 우리사주조합 지분 인수 제안에 대한 협상 착수 동의의 건’에 대한 총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일 발의된 우리사주조합 이사회(이사장 박록삼) 해임 건도 함께 부쳐졌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편집국을 포함한 각 부문 구성원이 참여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꾸려 선거를 주관하고 있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의 결정이 언론계에 던지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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