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발 X발 X발 비용으로 시골에 폐가를 충동 구매했다.” 퇴사 욕구와 삶의 회의에 시달리던 30대 초반의 방송사 PD는 전 재산 4500만 원으로 전라북도 김제 논밭 한가운데의 폐가를 사들였다. 115년 된 초가집을 고치려니 돈이 부족해 서울 도심 ‘초역세권’ 전셋집을 처분했다. ‘리틀 포레스트’를 그렸던 로망과 달리 현실은 노동, 또 노동이었다.

재건에 가까운 수리를 마치고 두 달 만에 입주한 집에서는 난데없이 물이 샜다. 석 달 뒤 겨우 전깃불이 들어온 뒤엔 인터넷 설치가 한 달 걸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집안 곳곳에서 찾아낸 골동품이 인테리어 소품이 되고, 옆집 ‘김제 엄마’와 95세 동네 친구를 사귀는 시간을 거쳐 11월에야 5100만 원을 들인 리모델링이 완성됐다. 이제 좀 쉬는가 했더니 사무실 겸 카페 용도로 인적이 드문 죽산면 거리의, 간판 색마저 바래진 상가 건물을 샀다.

이 과정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제안을 덜컥 받아들인 회사 덕에 시작된 ‘시골살이 브이로그’가 1년 하고도 한 달을 넘겼다. 유튜브 채널 ‘오느른’(오늘을 사는 어른들)을 운영하는 최별 MBC PD의 이야기다. 구독자들에게 “대체 이게 왜 힐링이 되죠?”라고 되묻던 콘텐츠는 2021년 한국PD대상 디지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채널 구독자 28만 명, 조회수는 2729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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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위치한 사무실 겸 카페 '오느른 오, 피스' 건물과 최별 MBC PD. 사진=최별 PD 제공

서울발 KTX를 타고 전북 김제로 이동하면서 상상한 최별 PD는 이런 모습이었다. 푸르른 김제평야에서 꽃무늬 앞치마를 허리에 질끈 묶고 반려견 효리·리본과 뛰노는 청년. 꽃을 따다 전을 부쳐 먹거나, 동네 어르신과 수다 떨다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청년.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둔 사무실에서 좌충우돌 카페 운영기를 시작한 청년 등등.

이 자유로운 동갑내기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까. 지난 16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 문을 연 카페 ‘오느른 오, 피스’에 들어선 순간, 한낮까지 밤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방송사 PD와 마주했다. 손님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예쁘게 플레이팅 된 팬케익을 먹는 동안, 건물 2층에서 만난 제작진은 전기가 끊겨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업 중인 노트북이 꺼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힐링을 주기란 이렇게 고되다.

-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을 보고 말았다.

“더 반가워해 드리고 싶은데 죄송하다. 힐링하고 있는 줄 아셨을 것 같은데!”

- 카페 찾아오신 분들이 꽤 있더라.

“외지에서 많이 찾아오시는데 코로나19 조심해야 하고, 헛걸음 하실까봐 카카오 채널로 미리 예약을 받는다. 동네분들은 오전 시간대에 아무 때나 편히 오신다.”

- 손님들한테 직접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안내하던데.

“제가 맨손 설거지를 좋아한다. 천연 비누로 설거지하면 손 당기는 느낌이 없어서 그런 경험을 해보고 가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음식 공짜로 드리는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브이로그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시골에 살다 보니 서울에서 살 때보다는 환경 문제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공유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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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위치한 '오느른 오, 피스'의 카페 내부. 사진=최별 PD 제공

- 어떻게 카페까지 열게 됐나.

“동네 분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만큼 구독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오느른’으로 모인 28만의 ‘어른이’(구독자 애칭)와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우연’의 개념을 확장하면 좋겠다는 취지다. 제가 없는 날에도 PD들이 요일제로 카페를 담당하면서 찾아오신 분들과 대화를 나눈다. 하시는 일은 뭔지, 채널을 왜 좋아하는지 대화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포인트들을 발견한다. 연락처도 쌓이고 있다.”

- 전국적인 ‘풀’이 짜이는 건가.

“그런 측면이 있다. 그리고 우리 채널이 (시골살이에 대한) ‘대리만족’ 키워드로 성장했지만 허무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실체적인 힘을 갖는 힐링이 있으면 좋겠더라. 사람들이 적당한 타이밍에 우연히 참여할 수 있는 힐링 콘텐츠 말이다.”

- ‘실체적 힘을 갖는 힐링’이 뭘까.

“정확한 개념이 있는 건 아닌데, 방송사에서 영상 작업 하는 사람으로서 허무할 때가 있었다. ‘온 에어’로 방송 내보내고 나면 보람은 있었지만, 그런 콘텐츠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만져지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과 동경이 있었다. 각각 담당한 파트의 일만 하는 직업에서 오는 허무함 같은 게 있다. 혼자 외톨이가 된 것처럼 외로워질 때, 무언가와 맺어질 때 생기는 유의미한 것들이 있다.”

- 원래 혼자 ‘온전히 쉬고 싶어서’ 김제로 내려왔다. 결국 ‘맺어짐’이 힐링이 됐나.

“처음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말 거는 게 좋지는 않았다. 아빠가 집에 와서 안 갈 때도 스트레스받았는데 어느 순간 받아들이게 됐다. 사실 구독자분들 때문인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른들과 잘 지내는 걸 좋아해 주시고 그렇게 지내는 것 자체가 맞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억지로 나를 고립시키려 하고 상처를 안 받으려고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지난 한 해 마음 상태가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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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느른 오, 피스'에서 일하고 있는 최별 MBC PD와 조연출 겸 카페 직원들. 사진=MBC 유튜브 채널 '오느른' 갈무리

- 서울 살 때도 어르신들과 살가웠나.

“전혀 아니다. PD라는 직업 때문에 비교적 사람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측면이 있었을 텐데, 되레 힘든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취재거리 빼내고 감정을 소모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도 있었다. 여기 와서는 출연자로 만나지 않은 분들이 출연자가 되고, 나도 출연자고. 나는 PD인데 PD가 아닌 것 같은 부분이 재미있었다.”

‘오느른’의 초반 콘텐츠들은 몸 쓰는 장면이 많다. “이게 힐링이라구요?” “시골집 고치기, 이걸 보고도 도전하시겠어요?” “전 어쩌다 이곳까지 왔을까요”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이어졌다. 집을 다 고친 후에도 눈을 뜬 순간부터 ‘노동’의 연속인 농촌의 하루가 반복됐다. ‘노동’은 영상 위에 얹어지는 자막 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 콘텐츠에서 ‘노동’을 강조할 때가 많다.

“깨달은 바가 그랬다. 처음엔 ‘리틀포레스트’를 상상했고, ‘논 버벌’(non-verbal) 콘텐츠를 기획했다. 외국인들이 볼 만한 좋은 풍경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는데 정말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말도 많아졌다. 와 일이 이렇게 많다고? 잔머리 굴리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 초기 콘텐츠에선 등장하지 않던 본인 얼굴을 올해 초부터 공개했다. 계획된 건가.

“처음엔 ‘펭수’를 꿈꿨다. 휴대전화도 새로 개통했는데 한 번도 못 쓰고. 얼굴 공개는 방송 채널용 다큐멘터리 편집이 계기였다. TV 다큐에서 사람 목만 나온 영상은 도저히 못 쓰겠더라. 그 뒤로 유튜브에서만 얼굴을 숨기고 나오는 게 이상해서 얼굴을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사실 ‘현타’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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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오느른 하우스'. 사진=최별 PD 제공

- 요즘엔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영상이 많다. 시골집에서 농사 짓고 음식 해 먹는 소소한 콘텐츠가 그립다는 구독자 반응도 있던데.

“공사비가 부족해 서울 전셋집을 빼면서부터였다. 회사에서 재택근무 하라고 한 것도 이때부터였고, 쉬기만 하면 됐던 ‘세컨하우스’에서 아예 살게 되면서 PD로서의 책임과 의무감까지 내려왔다. 그때부터 ‘나 월급 받으면서 브이로그 찍으면서 생활해도 되나, 어디 가서 MBC PD라고 하면 창피한 거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유튜브 채널엔 반복적 일상을 매번 비슷하게 보고 싶은 취향의 사람이 모였으니 그런 걸 계속 올려야 성장할 거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할 건 해야 겠다는 성격이라.”

- 어찌 보면 지금이 ‘시골에서 사는’ 모습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보통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은 창문 바깥으로 보는 풍경 느낌이다.

“작년엔 내면적 질문을 계속 했다. 나는 누구고, 뭘 좋아하고, 어떨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공유하는 콘텐츠였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자존감이 올라오고 나서는 계속 나에게 질문하는 게 의미있는 콘텐츠인가 싶더라. 자위하는 식의 콘텐츠가 될까봐 무섭기도 했고, 실제로 살다보니 느낀 것들이 있다. 처음엔 사람이 없어서 좋았는데, 사람이 진짜 없다. 당장 옆집 할아버지가 안 보이면 살아 계시는지 확인해야 하는 일을 겪으면서 콘텐츠 상으로 ‘저는 힐링해요’ 하는 게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은 선에서 현실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저는 MBC에서 월급 받는 PD니까 여기서 먹고 사는 걱정을 안 하지만, 대부분 청년이 농촌에 오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크지 않나. 진정성 있지만 장난치지 않는 것처럼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다.”

- 내 공간을 위해 폐가를 고쳤다면, 이제는 동네 자체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건가.

“동네 전체가 빈 공간이 많다. 지난 한 해 동안 생긴 영향력을 통해 시도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시도가 마을이 변해가는 과정이라면 재밌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정말로 이런 걸 해보고 싶은데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 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와준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지금은 2년째인데 몇 년 더 이어진다면 유튜브 조회수와 별개로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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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청 특산물 광고를 담은 MBC 유튜브 '오느른' 채널 콘텐츠 갈무리

서울 MBC 본사 소속인 최별 PD는 종종 ‘로컬 크리에이터’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 김제평야에서 직접 벼농사를 짓는가 하면, 전라북도청과 협업해 전라북도에서 생산되는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전북도청은 ‘오느른’ 유튜브 채널 구독과 알람 설정을 하면 추첨을 통해 지역 특산품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북 지역 매체들도 오느른에 관심을 보였다.

-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을 했던데.

“전라북도청에서 주무관으로 일하는 구독자분이 먼저 연락이 왔다. 기존의 유튜브 브랜디드 콘텐츠보다는 조금 더 ‘오느른’스럽게 하려고 매회 기획 회의를 하고 있다. 8월에 한 번 더 남았다.”

- 협찬도 늘어난 거 같다.

“MBC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가져가지만 제작비를 충당할 정도가 아니다. 유료 광고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의문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유료광고를 하고 그 비용 대부분을 다시 이 지역에 쓰고 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자는 마음이다. 4월부터는 회사로부터 제작비 지원이 없었다. 스태프 인건비 등 모든 게 다. MBC도 유튜브가 처음이라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구독자분들의 반응을 보고 배우면서 수정해가고 있다.”

- 최근 ‘오느른’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김제 올 때부터 생각이 있었나.

“PD도 훌륭하고 좋은 직업이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개인적 감상을 정리하는 글은 못 쓰겠더라. 콘텐츠와 별개로 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한 ‘멘탈’과 집중력을 훈련하고 싶었다. 나름 경력이 10년 정도 됐는데 처음 여기 와서 5분짜리 브이로그 자막 쓰는 게 2주 걸리더라. 스스로 충격도 받았지만 점점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의 뜻을 공감해주는 데 재미를 느꼈고, 얼마 되지 않아 출판제의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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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오느른 하우스'. 사진=최별 PD 제공

책 ‘오느른’은 포토에세이집이다. ‘오느른 하우스’와 김제 농촌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 사이 짤막한 감상을 담은 문장들이 담겼다. 종이를 실로 엮어서 만든 사철 제본도 ‘잘 찢을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 사실 사진 많은 책을 안 좋아하는데, “책을 사긴 했는데 글은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면 예쁜 사진 페이지를 찢어 방에 붙여 놓기라도 하세요”라는 문장을 보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책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 영상에 기대어 가는 책일까, 사진 없이 책이 안 되는 글들일까, 자존심 상하다가도 사람들이 별로라고 할까봐 걱정이 많았다. 나도 서점에서 제목 좋은 에세이를 사두고 정작 안 읽는 경우가 많아서 차라리 포토에세이가 낫겠다, 꼭 내 글에 돈을 써야 하나! 생각했다.”

- 솔직해지기 위한 작업의 연속인 것 같다. 2017년에도 ‘MBC스페셜-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 편에 직접 출연해서 연애, 결혼 이야기를 털어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화로 움직이는 사람 같다. 당시 스물여덟 나이에 결혼은 뭔지, 왜 하는 건지 질문이 많았고 사회적으로도 한창 비혼·미혼 이야기가 대두됐다. 그런데 언론에서 나보다 나이가 두 배 이상은 많은 분들이 이 현상을 거시적으로 다루면서 ‘결혼을 안 하는 이기적인 세대’라 말하니 화가 나지 않나. 그래서 저 말의 함의를 살펴보자며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는데 솔직담백하게 말해줄 출연자 섭외가 안 돼서 아무 생각 없이 출연했다. 그땐 이게 제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될 줄 몰랐다. 그래도 그 다큐에 전문가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세대를 묶어서 말하기보다 각각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능스러운 다큐였고 만듦새가 좋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되게 많이 혼났다.”

- 그 화가 ‘집’으로 옮겨진 건가.

“이제 결혼은 좋은 사람 있으면 하는 거고 궁금증도 없어졌는데, 집에 대한 관심사가 생겼다. 왜 서울에 집을 못 사지? 오래된 다세대 빌라 사려 했더니 회사 선배들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더라. 대출받아서 아파트 사라고 하는데 그러고 싶진 않았고. 서울 집 사는 걸 실패하면서 더 큰 사고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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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느른 오, 피스'에 마련된 방명록. 사진=최별 PD 제공

- 오느른하우스에서의 생활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까.

“그건 아니다. 처음에 카페·오피스를 만들면 그저 출근지 하나 생기는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가 생기더라. 고민 끝에 확장은 하되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하우스에서, 카페에서 하는 일을 분리해 나가려 한다. 백지에 마을 지도 다시 그리는 느낌. 지금까지는 집, 사무실 그린 거다.”

- 여러 고민이 느껴진다. 구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오느른이 어디 있는지 고민이 많았다. 판타지인가, 현실 세계인가. 회사에서 왜 자꾸 현실적인 걸 보여주려 하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느 날 저희 팀 연준 PD가 ‘그전에는 동화 같은 판타지였다면 지금은 드라마 같은 판타지로 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더라. 맞는 말 같다. 이 과도기를 저희가 잘 지나가야 하지만, 콘텐츠를 보시는 분들도 불편함이 느껴질 때 사람들의 삶이 어디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저희 일상을 보여드리는 게 환상속의 세계로 보이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불편했다.”

- 공사하고, 농사짓고, 카페 운영까지 왔다. 계획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

“아직 영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는데 얼떨결에 시작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카페 알바생이 생기면서 가장 큰 고민은 더 이상 잘 데가 없다는 거다. 죽산면 이장님에게 집을 물어보니 바로 그 다음날 빈 집에 데리고 가시더라. 봐둔 곳은 있는데 그때 바로 시작했으면 지금도 집 고치고 있어야 한다. 천천히 생각을 좀 하면서 진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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