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방송사의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던 비정규직 아나운서가 항소심 재판부에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해당 아나운서가 주장했던 퇴직금 등 미지급 임금 상당액도 모두 인정받았다. 

실제 업무는 정규직 노동자처럼 했지만 계약을 프리랜서로 맺는 방송계의 꼼수로 노동청, 국회 국정감사, 민사소송 1심과 항소심 등의 다툼을 거쳐 방송사 퇴사 1266일만에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은 것이다. 

대전지역 민영방송인 TJB대전방송에서 일하던 아나운서 김도희씨는 2012년부터 6년간 일하다 퇴사했는데 ‘전속 아나운서 출연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 김씨는 사용자인 TJB의 지휘감독 하에 일했다며 노동법상 노동자라고 주장했지만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난 201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노동청은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 2018년 10월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전직 TJB 아나운서 김도희씨가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 2018년 10월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전직 TJB 아나운서 김도희씨가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2018년말 김씨는 퇴직금, 유급휴가임에도 무급처리해 지급하지 않은 임금, 경조사 휴가를 무단결근 처리해 지급하지 않은 임금, 병가임에도 무단결근 처리해 지급하지 않은 임금 등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TJB 측은 김씨가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니므로 김씨가 요구하는 금액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전지방법원(판사 차호성)은 지난해 6월 “TJB는 방송업무뿐 아니라 방송 외적 업무에서도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며 “김씨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근로자)에 해당하므로 TJB는 김씨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양당사자(김씨·TJB)가 다투지 않았던 병가 부분의 미지급 임금을 인정하지 않으며 원고(김씨)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또한 재판부는 퇴직금 등의 지연이자를 6%로 계산했는데 이 부분 역시 노동자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노동법상 임금체불의 경우 생계와 직결돼 특별히 보호해야 할 채무 중 하나로 민사소송에서 확정판결을 받으면 20%로 계산하는 특별규정이 있다. 사측이 이를 다툴만하다고 여겨지면 재판부는 특별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6%를 적용할 수 있다. 

▲ SBS 민영방송 네트워크사인 TJB 대전방송
▲ SBS 민영방송 네트워크사인 TJB 대전방송

 

1심 판결 1년1개월만인 지난 14일 항소심 재판부(대전지법, 재판장 나경선)는 김씨를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며 소송에서 김씨가 주장했던 미지급 임금 액수를 모두 인정했다.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병가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사전에 연차휴가를 청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피고가 근무일 전날 다른 프리랜서 아나운서에게 원고(김씨)가 출연할 방송을 대체하도록 해 휴가에 대한 사전승인이 이뤄졌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TJB)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피고의 근로자 지위를 부정하고 취업규칙의 적용을 배제했기 때문에 연차휴가 사용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가 김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1심에서 소송비용의 50분의1을 김씨에게 부담하게 한 판결과 달리 항소심에선 소송비용을 모두 TJB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 당연히 노동자성에 대해 “원고(김씨)의 업무수행과정에서 있었던 지휘감독관계자 전속성, 지급 받은 보수의 성격 등에 비춰볼 때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지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지난 2018년 1월26일 퇴사해 약 3년반이 흐른 지난 14일 항소심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미디어오늘에 “평범한 노동자들이 돈을 받기까지 1266일이나 걸리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 싶다”며 “(노사가) 대등한 당사자간 싸움이 아닌데도 민사법원에 가면 대등의 원칙이 적용돼 노동법 사건은 민사소송으로 가면 불합리한 게 많다고 느꼈고 그래서 노동청 단계에서 제대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퇴사시 받았어야 할 돈은 모두 인정됐고 노동자임을 인정받고 싶어서 다퉜으니 이겼다고 볼 수 있지만 여러 제도를 거치며 한 사람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컸다”며 “(노동자성·미지급임금 등의) 입증책임을 회사에게 전환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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