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언론계와 정치권을 흔들었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16일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전 기자와 그의 후배 백승우 채널A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상고심이 이어질 수 있지만, 검찰이 지난해 이 전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도 공소장에 한동훈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검언유착’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찾지 못하고 마무리될 공산이 더 크다.  

판결문을 보면, 홍 부장판사도 이 사건에 한 검사장이 관여했는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 전 기자의 취재 과정에 강요죄 구성 요건인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 즉 협박이 있었는지는 하나하나 상세히 적시했다.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 전 기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비위를 캐기 위해 여권 인사와 가까운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전 신라젠 대주주)를 회유·협박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철 전 대표는 지난 2019년 9월 7000억원대 투자 사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은 바 있고,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된 사건 1심에서도 징역 2년6월을 받은 범죄자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에게 “유시민 제보를 하지 않으면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돼 이 전 대표와 가족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는 게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이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 전 기자가 지난해 이 전 대표에게 다섯 차례 보낸 서신, 이 전 대표 대리인 ‘제보자X’ 지아무개씨와 이 전 기자의 세 차례 만남 등에서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1심 “협박이 있었는지 의문”

결론적으로 홍 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동재)이 다섯 차례에 걸쳐 피해자(이철)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피해자에게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 해악의 고지’를 했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테면, 이 전 기자는 이 전 대표에게 지난해 2월 두 번째 서신을 통해 “남부지검의 신라젠 수사가 과도하게 이뤄질 것이고 이미 6명의 검사가 투입됐다. 검찰은 이철 대표의 재산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고, 가족의 재산까지 모두 몰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홍 판사는 “피고인(이동재)이 이 서신을 보낸 시기나 그 내용에 비춰보면, 서신을 통해 피해자(이철)에게 겁을 주거나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원하는 취재 정보를 얻고자 하는 피고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바 이런 행위는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며 “실제 피해자는 이 서신을 받고 나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 무렵부터 서신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두고 변호사 등과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한동훈 검사장이 지난해 1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보직 변경 관련 신고를 하고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한동훈 검사장이 지난해 1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보직 변경 관련 신고를 하고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홍 판사는 “서신에서 언급한 신라젠 수사 관련 소식은 대부분 언론에 보도됐거나 취재를 통해 알 수 있는 내용들이고, 가족이나 재산에 대한 강제수사 가능성 언급은 피해자(이철)에게 불안감을 안겨줄 수 있는 부정적 전망이기는 하나 그 자체로서 검찰과 연결돼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체적 정보라고 보기는 어려워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해자(이철)가 유시민 등에 관한 취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중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명시적, 묵시적 언동을 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 피해자에 대한 처벌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는 기자가 아니라 검찰이다. 법리적으로 해악을 고지하는 주체(기자)와 해악을 실현하는 주체(검찰)가 다를 경우, 강요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기자들이 신라젠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의 행위를 사실상 지배하거나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으로 믿게 하는 명시적·묵시적 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전 기자가 보낸 서신 내용을 “취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나와 연결돼 있는 검찰 관계자를 통해 당신이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지만 홍 판사는 그와 같은 해석이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확장 해석일 뿐 아니라 서신의 문언적 의미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보자X의 유도심문

이 전 대표와 대리인 지씨는 어떤 관계였을까. 판결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으나 이 전 대표의 법률대리인 A변호사가 과거 지씨의 형사 사건을 변호한 적 있고 지씨와 연락을 계속해온 사이였다.

지씨가 이 전 대표를 대신해 이 전 기자를 만나게 된 것도 A변호사 제안이었다. A변호사가 이 전 기자 서신을 사진으로 찍어 지씨에게 전달했다.

이 전 기자는 지씨와의 만남과 통화에서 “(나는) 검찰 측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했고, 검찰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이 전 기자의 발언은 ‘검언유착’ 프레임을 강화했다. 홍 판사는 이와 같은 이 전 기자 발언이 ‘지씨의 유도성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판단했다.

즉, 지씨가 “그러면 좀 어떻게 검찰하고 교감이 있어서 이렇게 하시는 건지. 그리고 왜냐하면 그래야 대표도 뭔가 저게 있어야 되잖아요”라는 식으로 이 전 기자가 진짜 검찰과 연결돼 있는지 여부 등을 먼저 물었다는 것이다. 이 전 기자 발언은 유도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점에서 강요죄 구성 요건인 ‘구체적인 해악(나쁜 것)의 고지’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전 기자가 단독 욕심에 지씨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것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한 대목이다.

▲ 제보자X 지씨는 지난해 9월 유튜브 채널 ‘제보자X의 제보공장’을 개설했다. 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 제보자X 지씨는 지난해 9월 유튜브 채널 ‘제보자X의 제보공장’을 개설했다. 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도심문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 전 대표의 진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번 신라젠 수사에 관련해 나는 더 처벌 받을 것이 없고 유시민 등 정관계 인사에 대한 금품제공 사실도 없어 제보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여야 정치인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도 없고 이를 입증할 장부도 없다”는 것이다.

홍 판사는 “지씨는 ‘피해자(이철)와 그 가족들이 신라젠 수사와 관련해 어떤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지, 피해자 등에 대한 향후의 강제수사 계획은 어떠한지, 피해자가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소환 요구를 받고 있는 구체적 이유가 무언인지’ 등은 특별히 묻지 않고, 피고인(이동재)이 검찰 관계자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선처 약속 등을 해준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정관계 인사에 대한 금품제공 장부나 송금자료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언동했다. 이러한 지씨의 태도는 피고인(이동재·백승우)들과의 2, 3차 만남에서도 계속됐다”고 판시했다.

지씨가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이라면, 이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계획이 가장 큰 관심사여야 하는데 정작 지씨는 존재하지 않는 정관계 인사 비리 자료를 빌미로 검찰 관계자와의 연결만 요구했다는 뜻이다.

이 전 기자와 지씨는 지난해 3월 두 번째 만남을 갖는다. 이날 이 전 기자는 지씨에게 ‘익명의 검찰 고위 간부’라고 언급하면서 준비해온 녹취록을 보여줬다. 지씨는 각종 언론에 ‘익명의 검찰 고위 간부’가 한동훈 검사장이라고 지목했다.

홍 판사는 이 녹취록에 대해서도 “설사 녹취록이 피해자(이철)로 하여금 피고인들(이동재·백승우)이 검찰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믿게 할 만한 자료라고 해도, 이는 지씨의 요구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선처를 약속하는 의미에서 한 언동이지 해악의 고지로서 한 언동이 아니기 때문에 강요죄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제보를 안 하면 처벌하겠다”는 협박의 의미로 내민 녹취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홍 판사 판단을 정리하면, 이 전 기자는 지씨로부터 검찰 고위층과 연결돼 있고 신라젠 수사에서 이 전 대표를 선처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빙할 검찰의 녹음파일을 요구받았다. 이에 이 전 기자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녹취록이 없으면 정계인사들의 비리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지씨 연락에 급히 녹취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철의 진의 왜곡한 제보자X

홍 판사는 “지씨는 마치 피해자(이철)와 상의한 것처럼 언동을 하면서 피고인들(이동재·백승우)과 2차 만남을 갖기에 이르렀으며 2차 만남에서도 마치 피해자에게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제공 장부나 송금자료가 있는 것처럼 언동해 피고인들이 녹취록을 보여주기에 이른 것”이라고 밝혔다. 홍 판사는 지씨가 이 전 대표의 진의를 왜곡한 채 이 전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봤다.

홍 판사는 이 전 기자가 지씨와의 만남을 통해 이 전 대표에게 전하려고 한 메시지가 실제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에게 전하려 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유시민 등 정관계 인사에 대한 비리 정보를 제공하면 신라젠 수사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를 통해 피해자(이철)가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7일 이동재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 검사장’을 협박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사진=연합뉴스.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7일 이동재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 검사장’을 협박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사진=연합뉴스. 

홍 판사는 “지씨는 피고인들(이동재·백승우)과의 통화나 대화 내용을 전부 녹취했으나 그 녹취록이나 녹음파일을 A변호사나 피해자(이철)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피해자는 세 번에 걸친 만남을 통해 피고인들과 지씨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 변호사도 법정에서 “2차 만남(2020년 3월13일)과 관련해 지씨로부터 전반적 취지만 들었는데 ‘어떤 녹취록을 본 것 같다. 그런데 그 녹취록 내용이 피해자(이철)와 관계된 사건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는 정도로 피해자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홍 판사는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이 전 대표가 이 전 기자가 전하려던 메시지를 “비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검찰 관계자를 통해 신라젠 수사와 관련해 더 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홍 판사는 이 전 대표가 이어진 검찰 조사로 “이동재 기자의 서신대로 신라젠 수사를 통해 다시 처벌 받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을 현실적으로 가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그러나 홍 판사는 “피고인들(이동재·백승우)의 메시지가 중간 전달자인 지씨 등을 통해 왜곡돼 피해자(이철)에게 전달된 결과에 따른 것이어서 결국 피고인들에게 강요미수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홍 판사는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형사적 엄벌주의만이 정의라고 외치는 시민사회가 귀담아들을 내용이기도 하다.

“언론사의 기자가 공적인 관심 사항에 관해 정보원에게 취재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설령 부적절하거나 취재윤리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고 해도 이를 형법상 강요죄로 의율함에 있어서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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