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시간

요즘 정치동향을 보면 한마디로 ‘더불어민주당의 시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부동산문제로 성난 민심에 직면했던 일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이다.

최근 발표된 OECD의 정부신뢰도에서 한국 45%로 37개국 중 20위를 차지했다. 상위 국가들 대부분이 유럽의 작은 국가들이고 일본,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이 한국보다 순위가 아래인 것을 보면 매우 높은 정부신뢰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능력평가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더 잘 드러난다. 지난 7월10~12일에 진행한 한길리서치의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능력평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가 48.6%(같은 기관의 직전 조사 대비 13.8%p 증가, 부정평가는 12.7%p 감소한 48.7%)로 나타났다. 이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평가가 25% 내외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긍정평가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정당지지도 역시 많이 올라가고 있다. 리얼미터의 7월 2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은 6월 4주 차 대비 8.6%p 상승하며 37.4%를 기록한 반면 국민의힘은 6.3%p 하락하며 35.3%로 떨어지면서 오차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2.1%p 민주당이 앞섰다. 불과 6월 중순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12.8%p 민주당을 앞섰던 것을 고려하면 급격한 변화이다. 이렇게 민주당 지지도가 급증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민주당 대통령예비경선이라는 것이 정치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 상승은 여야 대통령 후보군에 대한 선호도에도 반영되고 있다. 같은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경선후보 6명 (이재명·이낙연·추미애·정세균·심상정·박용진·김두관)의 선호도 총합은 이전 조사대비 8.5%p 상승해 50.9%를 기록한 반면, 국민의힘 대선 주자군(홍준표·유승민·윤희숙·원희룡·황교안·하태경)과 윤석열, 최재형, 안철수를 포함한 범보수·야권 주자군의 선호도 총합은 5.2%p 빠진 44.3%로 나타났다. 보수측 후보군이 2명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총합에서 범진보·여권이 6.6%p 앞선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 역시 이전 조사대비 민주당측이 범보수측을 역전한 결과이다.

▲ 7월1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경선 후보로 선출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 7월1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경선 후보로 선출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이와 같은 결과는 뉴스와 여론 빅데이터 전문조사기관 스피치로그의 분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6월1일부터 27일까지 키워드 지수(뉴스, SNS,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키워드를 종합분석한 점수로 높을수록 언론과 여론의 관심도와 영향력이 높음)에서 민주당은 3.1에서 민주당 대선예비경선후보등록이 시작된 6월28일부터 7월14일까지 민주당에 대한 키워드 지수는 4.2로 급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민의 힘은 2에서 1.2로 40% 감소했다.

길은 기재부와 홍남기가 낸다

‘민주당의 시간’ 속에서 유독 도드라진 인물이 있다. 바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다. 1차 재난지원금에서부터 민주당과 홍남기 부총리의 이견은 시작했다. 민주당은 보편적 접근으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홍남기 부총리는 선택적 접근으로 소득 하위 50% 지급을 주장했다. 민주당의 거센 공격에 홍남기 부총리가 물러섰지만 4차 재난지원금에서는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5차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을 놓고는 작심하고 민주당의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맞서 소득 하위 80%에 대한 선별적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와 기재부의 주장에 밀린 민주당은 지난 6월29일 당정협의에서 5차 재난지원금 대상을 소득 하위 80%에 합의하자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화들짝 놀란 민주당은 7월13일 최고위원회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방침을 수정하고 추경 심의에 들어갔으나 홍남기 부총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와 기재부가 선별적 접근을 고수함으로써 ‘민의 통제’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당성과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정작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은 민주당 스스로 야기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지난 6월1일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 대책 회의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포함하는 추경안의 편성과 처리가 시급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다음날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미 연초에 대통령이 코로나가 일정하게 안정되면 전국민 재난위로금을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지급하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며 “이제 전국민 재난위로금 등도 고민해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윤호중 대표는 6월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다시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며 “지난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해서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내수가 살아나는 선순환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 이번 상반기의 세수 증가도 바로 이런 확장적 제정정책이 낳은 재정의 선순환 효과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며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효과까지 말했다. 그러나 6월29일 당정협의 결과는 이런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는 달리 소득 하위 80%에 한해서 지원하자는 기재부의 선별적 입장으로 정리가 됐다.

민주당의 입장변화에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혼란의 더 큰 원인은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의 입장선회에 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지난 2월1일 당시 이낙연 당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했던 안이기도 했고, 정세균 전 총리는 5월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경제가 안 좋을 땐 소비가 미덕으로, 소비해야 생산으로 연결돼 선순환된다”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예비경선에서는 80% 지급을 찬성했다. 같은 당의 우원식 의원은 “길은 정치가 내고 정부는 낸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며 홍남기 부총리를 비판했는데, 당정협의와 그 이후 민주당의 모습은 “길은 기재부가 내고 민주당은 낸 길을 따라가는 것”이었던 것이다.

정책비판에서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선별적 지급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비판은 정책에 대한 비판보다 압도적인 의석을 가진 민주당과 높은 지지율의 문재인 대통령이 왜 관료를 통제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의문과 비판에 있다.

뉴스와 여론 빅데이터 전문조사기관 스피치로그를 통해 최근 일주일 ‘홍남기’와 관련한 SNS 발언검색을 해보니 “이쯤 되면 문통은 허수아비”, “언제 홍남기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체제가 됐나?”, “‘고소득자들에겐 25만원 대신 자부심을 드린다.(김부겸 총리)’니 건강보험료 많이 내는 고소득자들에겐 보험금 지급도 끊읍시다. 자비로 치료하면서 자부심 갖게”와 같이 정책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나 분석보다는 관료를 통제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 나타나고 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가운데)이 7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가운데)이 7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위 스피치로그의 발언검색에서는 권력에 대한 실망과 비판과 함께 “송영길과 친이재명계들이 홍남기해임 건의안을 냈습니다. 문프 강제레임덕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송영길  탄핵할  방법 없나요?”, “대통령님 지지율이 48%를 육박하는 마당에 홍남기 해임건의를 또 슬며시 꺼내드는 머저리 같은 민주당. 아무래도 당이 없어지고 싶은 모양” 등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 갈라치기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보편과 선택 논란은 지난 2010년 ‘진보-보편 대 보수-선별’로 진행된 무상급식논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번 논쟁은 민주당 대통령예비경선과 맞물리면서 갈등의 축이 민주당과 여권 내부에서부터 형성되었다. 특히 이 논란이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들의 가치관과 신념에 기초한 정책과 노선의 차이라기보다는 경선과정에서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분노와 비판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이 상황을 당에게만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선별지급으로 결론을 낸 당정협의가 있은 직후인 7월1일부터 이를 번복한 7월13일 최고위원회 직후인 14일까지 스피치로그를 통해 ‘재난지원금’ 관련 발언자를 보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367건의 기사가, 이준석 대표는 308건, 송영길 대표는 296건의 기사가 나왔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기사는 30건, 청와대 관련 인사들의 기사는 37건에 불과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의 선택과 치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갈등의 선택과 치환의 힘이 권력이라고도 했다.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 출발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논란은 기재부와 홍남기 부총리가 만든 ‘선별’에 거의 당론으로 유지해온 ‘보편’적 접근을 내던지고 이전투구로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와 기재부가 진정한 권력자 아닌가’ 하는 세간의 이야기가 가볍지 않은 이유다.

청와대가 나서야할 때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사안을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서 처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당정의 이견이 국민 앞에 혼란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청와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재난지원금을 놓고 당과 기재부가 충돌하기 이전에 청와대가 충분히 사전에 조율하는 과정을 만들고 충실한 ‘당청’협의와 ‘당정청’협의가 있었다면 지금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청와대가 여야와 함께 코로나 극복과 민생을 위한 토론의 자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파기되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지만 송영길 대표와 이준석 대표가 만나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합의했던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청와대가 나서서 정당 대표들과 민생을 위한 토론의 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주도하길 기대한다.

▲ 7월12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7월12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끝으로 청와대가 지방정부와 함께 코로나 극복과 민생을 위한 테이블을 넓혀야할 것이다. 이때 일반지자체뿐만 아니라 교육청과의 협력도 모색해야 한다. 실제로 시도교육청은 내국세의 20.79%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받게 되어 있는데 이번 추경에서 교육청의 교부금은 약 6조3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교육청마다 사정이 있고 부채도 갚아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인해 매우 높게 쌓인 학부모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을 지원하는 차원으로 학생 1인당 일정한 금액의 교육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례로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추경으로 약 7300억원이 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울교육청이 초중고생 1인당 10만원의 교육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할 경우 약 800억원 정도 소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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