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웅장해진다는 말. 아마도 이럴 때 쓰는 걸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쏜다!” 집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에게 연락해 양손 가득 간식을 담아가는 넉넉함,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던 책을 동네 서점으로 사러 가는 발걸음, ‘최저가’가 아니어도 당장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쿨함 까지!

밋밋했던 일상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설렘으로 지냈던 2020년. 내겐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이 있었다. 물질적 풍요로 말미암은 정신적 풍요랄까? 함께 청년기본소득을 받았던 한 친구는 “있다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며 “취준생은 책 값 달라고 하기도 눈치 보인다. 기본소득이 있어서 맘 놓고 취준할 수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년기본소득이 누구에게나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다 우리 세금”이라며 정책에 대한 실효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청년들도 있었다. 어떤 정치인은 “청년기본소득을 주면 청년들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질 것” 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요즘 ‘퍼주기 복지’, ‘공짜 돈’ 등 기본소득에 대한 갑론을박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는 청년기본소득을 받으며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작년 한 해를 돌아봤다. 이 글은 내가 청년기본소득을 통해 발견한 것들을 담은 글이다.

▲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홈페이지 갈무리
▲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홈페이지 갈무리

#야너두 받을 수 있어 #모두의 #청년기본소득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경기도 거주 만24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원씩 1년간 총 1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3년 이상 경기도에 주민등록을 두고 계속 거주하거나 전체 합산 10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경우라면 ‘누구든’ 받을 수 있다.

누구든 준다고? 분명 까다로운 조건이 있겠지

사실 내게 ‘청년’ 정책은 불신의 대상이었다. 이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청년주택, 국가장학금, 취업 장려금을 신청 하려 했다가 포기하거나 반려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장학금의 소득분위 산정 기준이 모호한 탓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친척집으로 주소를 이전하거나 차가 3대나 있는 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어떤 청년 정책에는 ‘비진학’ 청년들은 고려되지 않아, 정책이 비진학 청년을 사회에서 배제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거주 사실만 입증되면 누구에게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처음으로 언론으로만 접했던 기본소득의 의미와 이점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청년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좋았다. 통합접수시스템을 통해 쉽게 신청할 수 있었고 최초 정보를 등록해 두면 2,3,4분기에는 간단한 절차만 밟으면 됐다. 코로나19를 고려해 4분기 신청을 앞당겨 지급하기도 했다. 신청의 간소화와 정책의 융통성 있음이 왠지 모르게 소통하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했다.

프랜차이즈 키즈의 고민 “뭘 해야 잘 썼다고 소문날까?”

처음 1분기 청년기본소득을 받고선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동시에 ‘멘붕’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큰 고민이었다. 결국, 난 ‘프랜차이즈 키즈’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고 자란 부천 중동 신도시에는 홈플러스, 이마트, 킴스클럽,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이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스세권’(도보로 스타벅스를 이용할 수 있는 위치를 뜻함), ‘편세권’(편의점), ‘섭세권’(서브웨이)인 그야말로 ‘소비의 메카’였다. 난 값이 비싸도 좋으니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셨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있는 기분을 맘껏 누렸다. 가끔은 내 방 같은 안정감과 편안함, 아늑함을 느끼기도 했다. 프랜차이즈는 내 삶의 비싸고 확실한 행복이었다.

청년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지역화폐 ‘부천페이’는 이 곳 중 어느 곳에서도 사용이 불가했다. 새벽배송으로 주문했던 생필품이나 책도 청년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순 없었다. 아쉬웠다. 부천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부천페이가 사용 가능한 곳들을 하나 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청년기본소득 받으면 바쁘다 바빠! 26년 살고 처음으로 ‘나도 이 지역 주민’ 이라는 생각 들어

성인이 되고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는 내가 동네에 애착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 동네를 놀이터 삼아 휘젓고 다녔던 말괄량이 소녀도 이젠 없다. 이 동네에 ‘산다’기 보다 대신 잠만 자고 ‘떠나는’ 곳으로 느끼고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동네 카페로, 대형 마트에서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고 어디가 맛있는지 나만의 지도를 그렸다. 처음 걸어보는 길, 골목길, 가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26년을 살아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동네에서 ‘카카오맵’도 켰다. 중심지에 살다보면 모든 것을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일정 구역을 벗어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자주 찾는 단골 가게들이 생기면서 가게 주인이자 동네 이웃들과 눈인사를 하고, 대화하는 시간도 생겼다. 내가 이 지역 주민의 일원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동네 사람들과 거듭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느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기도 했다. 마주침과 반가움, 또 다른 우연을 기다리는 마음.

동네에서 소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평면적이었던 지역을 생동감 있고 리듬감 넘치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소비가 지역 경제에 밀알만큼의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당근마켓이 큰 인기를 얻은 것처럼 동네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건 낯설지만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나의 소비 습관 돌아보기, 할인 혜택 ‘영끌’ 대신 내 ‘영혼’을 위한 소비 도전!

중학교 때 친구들과 나란히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등교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친구들과 똑같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부터 내겐 부끄러운 소비습관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소비,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소비를 즐기게 됐다는 점이다. 얼마 전엔 ‘힙’한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며 용돈과 아르바이트 수입을 모아 국내외 브랜드의 비싼 옷과 가방을 샀다. 이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소비요정인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책’ 앞에서였다. 나는 늘 사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사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사는 게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마음의 양식을 쌓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옷이나 가방을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가진 돈은 한정 되어 있고 최고의 효율을 내서 내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어쨌든 반드시 책을 사야할 일이 있을 땐 중고 서점과 중고 장터를 전전했다. 카드 할인 혜택을 온통 끌어와 최저가에 결제 하고선 그제야 만족했다.

청년기본소득 사용이 가능한 곳 중 하나가 동네 서점이었다. 큰 맘 먹고 손끝에 잡히는 책을 열권이나 샀다. 중,고등학교 때 대량으로 문제집을 산 이후로 처음이었다. 평소 읽어보고 싶었던 문학잡지도 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베스트셀러 두 권을 선물했다.

소비 습관을 돌아본다는 것은 당장에 카드 지출 내역을 살피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내 삶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나는 내 영혼을 위한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청년기본소득이 준 건 100만원만이 아니었다

100명의 청년이 있다면 각자의 인생이 다를 테니 청년기본소득 받은 청년들의 마음은 100가지 모양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100개의 꿈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 말이다.

평생을 철저한 결과 중심 사회에서 살았던 나는 청년기본소득을 받으며 아무 조건 없이 응원 받고 지원 받는 기분이 들어 짜릿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론 ‘이렇게 안정적인 수입이 있다면 평생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직업적 선택의 폭을 넓히는 개념이 아닌 나만의 리듬과 색깔로 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설레발이었다.

요즘도 ‘워라밸’, ‘스라밸’ 등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청년들은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청년기본소득이 존재한다면 무언가 포기 하면서 겪는 좌절이나 우울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술가와 회사원 사이, 비진학 청년과 진학 청년 사이, 지역 청년과 서울 청년 사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서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들이다.

청년기본소득 받으며 웅장해졌던 내 마음. 경기도 아닌 다른 지역 친구들도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길게 썼지만 사실은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닌, 단지 청년이라서 가능한 청년기본소득으로서 말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경험하고 부딪히고 겪어내는 청년들이 많다. 평가에 지치고 경쟁에 지친 청년 마음 한 켠, 청년기본소득이 ‘믿는 구석’ 되어줬으면 좋겠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곁에 있어주면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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