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연일 원전 관련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5일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을 비판해 온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해당 학과 학생들을 만났고, 6일 KAIST를 찾아 원자핵공학 전공자들을 만났다. 이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윤석열 대안론’으로 언론이 적극 띄우고 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한 견제라고 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은 주 교수와 만난 이후 기자들과 질의에서 “검찰총장직을 그만둔 것은 월성원전 관련 사건 처리와 직접 관련이 있다”며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으로 대전지검에 전면 압수수색을 지시하자마자 감찰 징계 청구가 들어왔고, 사건 처리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4일 총장직을 내려놓으며 검찰의 수사권 박탈에 대한 인터뷰와 관련 발언을 이어갔고, 당시 언론에서도 사퇴의 계기를 이 사안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이날 원전 수사가 검찰의 수사권 박탈 전 단계이자 총장직을 그만둔 직접적 계기라고 밝힌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정치참여는 월성원전 사건과 무관하지 않고 정부 탈원전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도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계기로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최재형 전 원장이 정치에 참여할지 모르겠지만 원장직을 그만둔 것 역시 월성 원전 사건과 관계가 있다”며 최 전 원장을 함께 거론했다. 

▲ 윤석열(가운데)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대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온 주한규(오른쪽)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윤석열(가운데)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대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온 주한규(오른쪽)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최 전 원장은 정권에 맞서 원전 감사에서 ‘경제성 조작’을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최 전 원장의 상징 이슈에도 적극 연관성을 제기해 최 전 원장의 존재감을 떨어뜨릴 의도로 보인다. 지난 5일부터 최 전 원장 출마를 촉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에 나선 지지모임 ‘별을품은 사람들’의 공동대표인 박춘희 변호사는 원자력살리기국민행동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즉 현 정부의 탈원전 비판세력이 최 전 원장의 핵심지지층 중 하나란 뜻이다. 

최근 보수언론에서도 윤 전 총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최 전 원장을 띄우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尹 바람 한계 입증됐다" 야권서 부상하는 '윤석열 대안론'”(중앙일보 2일)을 보면 제목부터 최 전 원장을 윤 전 총장의 대안으로 거론했고, “윤석열과 최재형 사이 TK 민심 엿보기”(주간조선 5일)에선 보수 표밭인 TK에서 최 전 원장이 윤 전 총장보다 더 어울린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2일 박정희 기념관 방문에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에 방문한 것 역시 비슷한 해석이 나온다. 한 정치부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무성 전 의원 등 최 전 원장 곁에 PK 인사들이 붙으면서 윤 전 총장이 YS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지난 5일 JTBC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김영삼 기념도서관을 찾아 차남 김현철씨에게 “김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해왔다”며 “사법고시에 일찍 합격했으면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YS 문하생'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PK 표심을 위한 직접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최 전 원장이 아직 정치선언을 하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시기에 보수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슈인 원전 문제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6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원전 관련 언행에 대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있었다면 사법적으로 다루면 될 일이고 검찰총장으로서 수사에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만 절차적 위법성이나 외압이 원전 예찬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에너지전환 과제는 단지 대선 갈라치기용으로 함부로 다루기엔 너무 절박한 시대 과제이고 정치의 책임이 무거운 주제”라고 비판했다. 

▲ 김영삼 기념도서관을 방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윤석열 캠프
▲ 김영삼 기념도서관을 방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윤석열 캠프

 

이날 윤 전 총장은 대전·충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어제 오늘 탈원전 반대 행보를 계속했는데 대전 도심에 원자력연구원이 있고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원전 폐기물이 쌓여있고 경주 방폐장으로 옮기는 문제도 쉽지 않은 것에 대한 대책’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윤 전 총장은 “핵폐기물 처리문제는 아마 원전 지하에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핵폐기장 처리에 대해선 외국에서도 안전한 기술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장래엔 큰 문제가 없지 않나”라며 “연구실에서 세슘유출 문제는 탈원전과 바로 연결하기에 관련성이 적다”고 답했다. 폐기물 처리나 주민 불안에 대한 당장의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 것이다. 

한편 윤 전 총장은 원전 행보에 더해 보수색을 덧씌우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원래 지난 5일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었는데 노컷뉴스 보도를 보면 5·18 단체의 거부로 광주방문이 무산됐다. 거부 이유는 “(윤 전 총장이) 진정성도 보이지 않고 내용도 없는데 그림을 만들기 위해 방문하는 것”을 들었다. 광주행이 무산되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점령군’ 관련 이념논쟁에 뛰어드는 등 중도 확장보다는 보수편향의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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