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해방직후 국내에 상륙한 미군이 점령군이냐 아니냐는 논쟁에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 역사적 사실에 의한 강한 반박에 직면했다.

미군이 스스로를 점령군이라 칭하고 조선 38도선 이남을 점령한다는 맥아더 포고령이 국가기록원 공식 문서에도 기재돼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4일 ‘대한민국은 친일세력들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다’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들어 “온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라며 “6.25 전쟁 당시 희생된 수 만 명의 미군과 UN군은 점령지를 지키기 위해 불의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냐”고 맹비난했다.

이에 이재명 지사는 “미군의 포고령에도 점령군임이 명시되어 있고, 이승만 대통령,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도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점령군임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미군이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실제 그런 표현이 나온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이다.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1945년 9월7일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 미육군최고지휘관의 포고령 제1호를 보면, 38선 이남을 점령할 것(will occupy)이라고 명백히 기술하고 있고, 스스로도 점령군(the occupying forces)이라 칭했다. 맥아더는 포고령에서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와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the following condition of the occupation)을 포고한다”고 밝혔다. 포고령 제3조를 보면, “점령군에 대한 모든 저항이나 공공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쓰여있다. 포고령은 국문(국한문혼용), 영문, 일문본 등 3종류로 돼 있다. 맥아더의 포고령 국문본에도 38도선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이라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단지 가치중립적인 점령의 의미였을까, 적국 또는 준적국에 항복을 받아낸 뒤 벌이는 적대적 조치의 의미였을까. 이 부분 역시 미군이 조선총독부 행정체제를 잔존시키고, 친일인사들을 등용했다는 점에서 후자에 가깝다는 연구가 많다.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 미육군총지휘관이 지난 1945년 9월7일 조선인에게 통보한 포고령 제1호. 사진=국가기록원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 미육군총지휘관이 지난 1945년 9월7일 조선인에게 통보한 포고령 제1호. 사진=국가기록원

 

미군 자료를 토대로 이 같은 분위기를 상세히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김자동 역, 1986)이다. 커밍스는 미군 진주의 의미를 두고 “한국은 패배당한 것인가 혹은 해방된 것인가, 한인들은 적인가 혹은 친우인가”라며 38도선 이남 군정 책임자인 24군단장 존 하지 중장이 한국을 미국의 적으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1945년 8월말까지만 해도 맥아더는 8월말 제24군단에 한인들을 ‘해방된 인민’으로 취급하라고 지시했으나 하지 중장은 9월4일 자신의 장교들에게 한국이 “미국의 적이며” 따라서 “항복의 조례와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라고 지시했다고 커밍스는 썼다. 커밍스는 “미 군정의 공식소식통이 후에 ‘정부와 그의 행동은 적국에서의 경험에 의하여 정해졌으며 적대국 내에 있는 군의 지시 및 훈련방침에 따르도록 되었다’라고 보고했다”며 “남한은 적국 영토에 진주한 승자의 적대적 점령하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이유를 두고 커밍스는 “오키나와에 있던 점령군 사령부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존 정책 보다도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각색된 설명에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며 “일본의 고즈기 요시오 중장은 9월1일 서울에서 ‘조선인들 중에 공산주의자와 독립 선동자들이 정세를 이용하여 이곳에서 평화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라디오 송신을 했고, 그가 ‘미군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고 썼다. 커밍스는 “놀랄 만한 사실은 일본을 위해 구상했던 ‘점령’의 대우를 오히려 한국이 받게 된 데 있다”며 “9월초 맥아더 등은 일본의 기존 행정체제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했다. 커밍스는 하지중장이 9월9일 항복식을 마친 뒤 모든 일인 및 한인에 의해 조선총독부의 기능을 그대로 존속되리라고 선포했다고 주한미군사(HUSAFIK)를 인용해 적었다.

한편, 윤석열 전 총장의 이번 발언을 두고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5일 중도로 확장하는 것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비판했다. 유 전 총장은 이날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점령군이라고 미군 스스로 그렇게 지칭을 했다”며 “점령군이라고 해도 그때는 2차 대전 끝나고 다 점령을 했다. 여기도 영토였으니까”라고 밝혔다. 유 전 총장은 “윤 전 총장이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압도적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중도와 탈진보까지 이렇게 엮겠다’는 표현을 써서 얼마나 중도로 나가느냐 했는데 지난번 정치 참여 선언 기자회견과 이번에 이걸로 인해 중원, 중도로 나아가기는 이제는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맥아더 태평양 미육군총지휘관(사령관)의 1945년 9월7일 포고령 제1호 국문본. 사진=국가기록원
▲맥아더 태평양 미육군총지휘관(사령관)의 1945년 9월7일 포고령 제1호 국문본. 사진=국가기록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