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각국 정부는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단행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주요 선진국이 재정 정상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은 올해도 그렇고 내년에도 여전히 확장재정을 고수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정상화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 물가인상 속도나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금리인상도 빨라질 거라 예상되고, 그렇게 되면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불일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한쪽에선 통화 당국이 금리를 올려 시장에 풀린 돈을 회수하고, 다른 쪽에선 정부가 30조원 이상을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편성해 돈을 푸는 ‘엇박자 정책’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정지출, 줄여야 하나?

대부분 국가에서 작년과 올해 재정지출이 대폭 늘었고 내년부터 점차 줄여나가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작년과 올해 대규모 재정지출을 했고, 또 많은 국가가 내년부터는 적자 규모를 축소, 2030년을 전후로 재정중립을 유지하려고 하며 G7 국가 중 독일만 2025년까지 재정중립을 추구하고 있다.

▲ 표=안혜나 기자
▲ 표=안혜나 기자

이에 비해 한국은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지난해 -3.7%, 올해 -4.5%이고 내년 전망도 -4.5% 정도로 유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으로 재정지출을 상대적으로 많이 늘리지 않았고, 내년까지는 적자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까지 선진 5개국의 평균 재정적자는 -8.7%이고, 한국은 -4.2%로 절반도 안 된다. 주요 선진국, 기축통화국들은 지난해와 올해 이미 재정지출 적자 규모를 큰 폭으로 올려서 한국보다 2배, 3배 많은 적자 규모를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년부터 지출 감소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현재 재정상황에서 내년까지 적자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비기축통화국이나 신흥국과 비교해도 재정적자나 국가부채 규모가 크지 않다. 지난해 말에 나온 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비기축통화국의 평균 국가부채 비율은 47.8%였지만 우리나라는 40.9%로 훨씬 낮았다. 지난해의 경우 기축통화국의 부채비율은 95.77%지만, 비기축통화국 평균 부채비율은 53.27%이고 한국은 48.41%로 여전히 낮다. IMF(국제통화기금)의 2020년 정부 수지전망(지난해 수지 대비 예상치)에 따르면, 세계전체는 -11.8%, 선진국은 -13.3% 한국은 -3.1%로 안정적이다.

한편, 코로나 위기 시 부채 증가 양상을 보면,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의 상호 대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부채가 많은 국가의 가계부채는 상대적으로 작고 정부부채가 작은 국가의 가계부채는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부채로 가계 부채 증가를 억제하고 대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래프=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제공
▲ 그래프=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제공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전년 대비 6.43%P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같은 기간 미국은 18.91%P, 영국 18.42%P, 일본은 21.36%P 증가했다. OECD국가의 국가채무비율도 10%P 이상 늘었지만 한국의 국가채무비율 증가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에 반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03.8%로 전년대비 8.6%P 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OECD 37개국 중 6번째로 높은 수준이며, 2019년 이후 상승 폭은 노르웨이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가계부채 증가는 상당부분 주택대출 증가에 기인하고 있고 이 때문에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이 배후는 장기간 초저금리와 이로 인한 과잉 유동성 문제가 있는데, 유동성이 정부 보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을 통해 민간(가계와 기업)에 더 많이 공급되고 신용창조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부채 대신 가계부채 증가를 용인하면서 유동성 공급과 자산가격 급등이 진행돼 왔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그만큼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영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지출 축소보다는 증세와 세수 확대

많은 국가에서 지출을 대폭 줄이려는 노력보다는 세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을 짜고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하더라도 세출 개혁이나 소득세 인상과 같은 세수 확대로 적자가 더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미국 인프라 계획(American Jobs Plan), 미국 가족계획(American Families Plan) 등으로 6조 달러(7000조원)의 재정 지출 계획을 내놨지만 동시에 소득세, 자본이득세, 부유세 인상 같은 증세 방안을 제시해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한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21%에서 28%까지 끌어올리고, 양도소득세와 비슷한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의 경우 최고 세율을 20.0%에서 39.6%로 대폭 상향한다.

또한 영국 보리스 존슨 내각은 올 3월 법인세율을 현행 19%에서 2023년에 25%로 6%P 올리고, 소득세는 세율은 그대로 두지만 과세구간 인플레이션 연동을 멈추는 방식으로 증세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리고 지난 6월 콘월에서 열린 G7 회의 참가국들은 글로벌 최저세를 15%로 하겠다는 데 동의했다. 한편 탄소세는 일본, 캐나다, 스웨덴은 이미 도입했고, 유럽연합(EU)은 7월 탄소세 입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처럼 증세는 세계적 수준에서 확산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재난연대세와 같은 주로 한시적 증세 방안이 거론돼 왔다. 정부 차원에서는 부분적인 증세도 시작했다. 6월1일부터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율이 0.1~2.8%P, 2년 미만 보유 부동산 양도소득세율은 10~30%P 상승했다. 내년 1월1일부터는 암호화폐로 벌어들인 250만원 이상 수익에 대해 22%, 2023년부터는 주식으로 번 돈이 연 5000만원 이상이면 5000만원이 넘어간 수익에 대해 20%~25%의 세금을 낸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서울시장, 부산시장 등 야당 도지사가 들어서자 부동산 정책도 민간과 공공을 막론하고 공급 주도로 바뀌고,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인하 등 전반적인 감세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여당의 참패는 이도 저도 아닌 부동산 정책 속에 주택과 전셋값이 폭등했고, LH 비리와 특공 비리까지 겹치면서 정부 정책 신뢰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재보궐 선거 결과에다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책 실패와 신뢰 훼손을 감세와 각종 소득지원 정책으로 무마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어이없는 시도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18일 의원총회에서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을 현행 공시가격 ‘9억원 이상’에서 ‘상위 2%’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현행 공시가격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 사진은 6월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 사진은 6월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한편, 이런 정치적 분위기 외에도 현재 증세 논의를 가로막는 장벽 중의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추가세수’다. 단순하게 말하면,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히고 있는데 굳이 증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국세수입을 기준으로 2015년 2.2조원, 2016년 9.8조원, 2017년 14.3조원, 2018년에는 무려 25.4조원이 추가 세수로 더 걷혔다. 그러다 2019년 1.3조원 감소했지만,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해에도 다시 5.8조원이 더 걷혔고, 올해도 32~40조원정도 더 걷힐 전망이다.

정부가 예산 전망을 잘 못 짜는 것인지, 일부러 세수가 더 걷히게 세수 전망을 줄여서 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2014년과 2019년을 제외하고 지난 20여 년간 해마다 많게는 수십조원씩 예상보다 더 걷히고 있다. 본예산 짤 때 이걸 반영하지 않아 계속 추경(추가경정예산) 형태로 집행해서 논란을 만들고 있다.

‘돈 풀기’ 정책 공조의 현실

한국은행이 이르면 올해 두 차례 금리인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재정정책으로는 돈을 풀어내는데, 통화정책 상으로는 금리인상으로 시중 유동성을 다시 흡수해 두 정책이 서로 거꾸로 가 정책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올해 하반기 금리인상이 되면 5차 재난지원금 등으로 30조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게 되는데, 추경 효과를 크게 저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일반적으로 ‘돈을 푼다’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정박자로 공조해 왔다. 특히 대기업, 지주, 금융자본을 지원하는 방향으로는 완전히 일치했다. 하지만, ‘불평등 해소’라는 점에서는 이제까지도 언제나 ‘엇박자’였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엇박자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돈 풀기가 아니라 불평등 확산이다.

코로나19 펜데믹이 발생하자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대책은 ‘금융시장 안정’이다. 이때 정부와 한국은행은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을 구제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정부 코로나 대응 1차 대책을 밝혔는데 대부분 금융시장 안정 대책으로 채워져 있다. 금융시장 안정 대책에만 100조원+@-며칠 후 35조원을 더 추가해 135조원+@가 됐다-를 배정한다고 밝혔고, 이중 한국은행에서만 89조원 규모의 자금이 집행됐다. 대부분 회사채 매입과 채권 보증을 위한 대출 등으로 쓰였다. 애초 한국은행은 국채, 정부보증채, 통화안정증권, 주택금융공사 발행 MBS만 인수했지만, 규정을 바꿔 각종 금융채, 프라이머리 담보부채권(P-CBO), 여전채, 할부채 뿐만 아니라 투자최저등급 회사채까지 중앙은행의 인수대상 증권에 포함했다. 특히 증권사 및 채권시장 구제와 관련해서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언하고 나섰고 실제 37조원을 공급했다.

또한, 채권시장이 계속 불안정하고 증권회사 리스크가 커지자 한국은행은 더 많은 증권회사를 증권매매(RP매매) 대상기관에 대거 포함했다. 애초 17개 국내외 은행 이외에 5개 증권사가 매매 대상기관에 있었는데, 2020년 3월26일 11개 증권사를 추가시켰다. 이들 증권사에 대해 한국은행은 증권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우량 증권을 현금을 주고 사들일 수 있게 됐고 증권사는 부실한 채권까지 제값 주고 팔고 현금을 받게 돼 위험을 덜고 현금 보유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채권시장에 이어 주식시장까지 불안정해지니 일본 중앙은행처럼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도 주식시장 개입을 선언했다. 중앙은행이 부도 위험이 높은 채권까지 다 매입해주고 있고 리스크가 사라진 주식시장에 누가 주식투자를 주저하겠는가? 한국은행도 이들 선진국(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의 행태를 똑같이 반복했다. 넘쳐난 자금이 주식, 채권 등 금융시장과 부동산과 같은 실물 자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거래량은 더 증가했고 가격은 폭등했다. 투자 혹은 투기 실패를 막아주고 리스크를 떠안으며 반 토막도 못 건졌을 증권 수익을 온전히 보전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중앙은행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정박자의 공조 결과이다.

▲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직원이 은행으로 환수된 5만원권을 정리하는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직원이 은행으로 환수된 5만원권을 정리하는 모습. ⓒ 연합뉴스

‘돈 풀기’ 아니라 ‘불평등 해소’ 또는 ‘국민 생활 안정’

코로나 위기국면에서도 대다수 국가의 자산시장은 회복을 넘어 폭발적 성장을 했다. 이 때문에 자산가들의 자산 가격은 치솟았고 빈부격차와 불평등 지수도 역사적 고점을 형성했다. 양적완화와 같은 정책이 불평등을 확산시킨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미국 연준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은, 불평등 확산은 통화정책이 원인도 아니며, 이를 시정하는 것도 통화정책 영역이 아닌 정부 정책, 즉 재정정책 영역이거나 다른 정책수단으로 불평등을 완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이미 금리조정과 양적완화와 같은 통화정책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정정책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은행은 각 시장에 대한 다양한 공급경로와 채널, 정책수단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양적완화를 진행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더욱 많은 정책수단을 동원해 금융시장을 지원하고 있다. 소위 ‘핀셋 지원’도 가능하고 코로나19 대응기간 한국은행은 그렇게 지원을 했다.

그러면 그 역(逆)도 가능한데, 한국은행은 금리인상을 양적완화하듯 각 시장에 맞게 다양한 공급경로와 채널을 설정해서 진행할 수 있다. 주로 부동산과 금융투기로 들어간 자금과 불로소득은 회수하고 기업의 운영자금과 가계 생활비 등으로 지출된 자금에 대해서는 상당한 여유가 주어질 수 있도록 각 채권시장과 금융기관에 대해 별도 채널을 설정하고 금리인상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한편, 이것이 가능하더라도 한국은행은 정책목표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까지만 포함되기 때문에 고용안정이나 국민생활안정과 같은 정책 목표를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만약 한국은행법에 이런 정책목표가 명시되지 않아서 못한다면 이는 정책목표를 변경해야 할 문제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안정 단일 목표부터 금융안정이나 고용안정까지 다양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금융안정을 하위 목표로 설정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병렬적 목적으로 두거나 이 둘에 정부 정책 지원 등 하위 목표를 추가한 나라들은 일본, 스웨덴, 덴마크, 멕시코, 말레이시아, 영국, 대만, 아이슬란드, 태국 등이다. 물가안정, 금융안정, 균형발전, 기타 여러 목표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나라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이다. (중앙은행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하준경, 2018년 6월호, KDI)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고용안정과 국민 생활안정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게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정부 정책, 재정정책에만 맡겨두면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도 더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정책목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넘어 고용안정과 국민생활안정을 직접적 정책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지출이나 세수 축소논의를 하는 대신에 소득세, 보유세, 자본세 인상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재정적자 문제만이 아니라 코로나19 대응하면서 더 늘어난 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해서라도 불로소득으로 벌어들인 돈은 조세정책으로 흡수해야 한다. 재정적자를 해소하더라도 재정 보수주의에서 말하듯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늘려 적자를 메워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