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작진 대부분의 임금·대금을 체불해 논란이 됐던 드라마 ‘마성의 기쁨’ 촬영감독이 법원에서 “체불 임금을 받아야 할 노동자”라는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01단독 최상열 판사는 지난달 20일 제작사 골든썸에 드라마 ‘마성의 기쁨’ 촬영감독 A씨에게 체불 임금 2280만원과 2018년 10월30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 비율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제작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형식상 업무위탁 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제작사의 업무 지휘·감독을 받은 노동자였다고 주장했다. 제작사는 A씨가 프리랜서로 회차당 대금을 받았을 뿐이라며 임금 청구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이 제작사 주장을 기각하고 A씨 손을 들어준 것. 

▲2018년 MBN과 드라맥스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마성의 기쁨'. 제작사는 골든썸픽쳐스, 제작을 맡긴 채널은 IHQ다.
▲2018년 MBN과 드라맥스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마성의 기쁨'. 제작사는 골든썸픽쳐스, 제작을 맡긴 채널은 IHQ다.

통상 소송가액이 3000만원 이하인 ‘소액 사건’ 경우 소액사건심판법 11조에 따라 판사가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최 판사는 판결 이유를 남겨 A씨가 “제작사의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최 판사는 “A씨는 제작사가 지정한 촬영 일정에 따라 근무 시간과 장소가 지정됐고, A씨는 자기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를 했지만 이는 업무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지 실질적인 일의 수행에 필요한 지휘·감독 권한은 제작자에게 유보돼 있다”고 판시했다. 

최 판사는 이어 “A씨가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작사가 제공하고, 계약 기간 동안 제작사 A씨 업무를 (제3자에) 대체할 수 없도록 하는 사실 등에 비춰 보면, A씨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제작사에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라고 밝혔다. 

드라마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다룬 이번 판결은 2019년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보다 진일보했다. 당시 4개 드라마 현장을 감독한 고용노동부는 감독급 스태프를 제외한 팀원급 스태프의 노동자성만 인정했다. 감독 스태프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 책임 아래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였다. 

▲A씨 승소 사건 판결문의 판결 이유 부분 갈무리.
▲A씨 승소 사건 판결문의 판결 이유 부분 갈무리.

같은 사건을 조사한 고용노동청의 판단과도 다르다. A씨는 이미 2018년 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임금 체불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다음 해 7월 “귀하는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4대 보험 가입 없이, 제작사와 월 고정 기본급 없이 회차당 원천세 포함해 대금을 받기로 하고, 본인 전문 분야 업무를 수행했기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법 위반 사항이 없어 사건을 종결한다”고 통보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감독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이 인정돼야 할 이유로 이들이 “각 팀 내에서 재량권을 가질 뿐 전체 제작 상황에서 독립성을 가질 수 없다”며 "감독, 팀원 구분없이 근무시간, 장소, 휴게시간, 제작 현장에서의 협업 체계는 동일하고, 제작사 요구와 지시에 따라 전체 스태프들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일반 회사의 과장, 부장 등이 업무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아닌 이유와 같다”고도 비유했다. 

2018년 9~10월 MBN·드라맥스에서 방영된 마성의 기쁨은 임금 체불 드라마로 악명 높았다. 연출·촬영·조명·미술팀 등의 스태프부터 배우, 작가까지 60명이 넘는 제작진이 받아야 할 대금을 다 받지 못했다. 피해 규모는 1인당 수백만원에서 억대 규모의 체불까지 다양하다. 총 금액만 4~5억원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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