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조선일보가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일러스트를 썼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들이 “잘못을 발견하고 걸러내지 못하는 허술한 시스템이 빚은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인원)은 최근 잘못 사용된 일러스트 논란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24일 노보를 발행했다. 잘못된 일러스트 사용에 대해 노조는 “조합원들은 담당 기자의 부주의를 책망하면서도 지난해 전면적 디지털 강화를 추진하면서 부실해진 온라인 데스킹 기능이 이번 사건 배경에 깔려있다고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의 A기자는 “다들 경악하면서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짐작하는 바가 있어 ‘터질 게 터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 21일자 조선일보 기사(왼쪽)는 조국 전 장관의 부녀 일러스트를 넣었다. 오른쪽 사진은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가 지난 2월27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이 글에 실린 일러스트가 지난 21일자 성매매 유인 강도 사건 관련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기사에 쓰이자 논란이 됐다.
▲지난 21일자 조선일보 기사(왼쪽)는 조국 전 장관의 부녀 일러스트를 넣었다. 오른쪽 사진은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가 지난 2월27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이 글에 실린 일러스트가 지난 21일자 성매매 유인 강도 사건 관련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기사에 쓰이자 논란이 됐다.
▲지난해 10월 조선일보가 쓴 기사인데, 문 대통령과 관련없는 내용의 기사에 문 대통령 일러스트를 넣어 논란이다. 지난 24일 오후 문 대통령 일러스트는 삭제됐다.
▲지난해 10월 조선일보가 쓴 기사인데, 문 대통령과 관련없는 내용의 기사에 문 대통령 일러스트를 넣어 논란이다. 지난 24일 오후 문 대통령 일러스트는 삭제됐다.

노조는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일러스트가 어떻게 기사에 첨부되게 됐는지 설명했다. 노보에 따르면 기사를 쓴 담당 기자는 문제가 된 해당 일러스트가 조 전 장관과 관련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고 단지 일러스트 구성이 기사와 일정 부분 연관 있어 보여 넣었다. 하지만 일러스트를 삽입해 출고하는 과정에서 문제 소지가 있었다면 걸러줄 데스킹조차 전무했다.

노조는 “이번 사건 파장은 매우 컸고, 일부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들이 가세하면서 우리 회사와 구성원을 향한 비판·비난이 잇따랐다”고 했다.

노조는 “문제는 입사 3년차의 담당 기자가 스스로 판단해 고른 일러스트를 기사에 삽입해 출고하는 과정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면 걸러줄 데스킹이 전무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뒤 “‘출고 전 데스킹 과정’에서가 아니라 ‘출고 후 독자와 함께’ 문제를 발견하면서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의 B기자는 “이번 사건에서 출고 전 최소 1~2명이라도 담당 기자 아닌 사람이 일러스트와 기사 내용을 살펴봤다면 문제 소지가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3일과 24일에 거쳐 사과문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3일과 24일에 거쳐 사과문을 게재했다.

노보는 또한 온라인 강화로 인해 상당수 온라인 기사가 데스킹 없이 출고되는 점을 지적했다. 노조는 “사진·일러스트뿐 아니라 상당수 온라인 기사가 데스킹 과정이 생략된 채 출고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인력은 그대로 둔 채 지면·온라인을 병행하다 보니 데스크들 소화 능력을 초과하는 수준의 온라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일보 차장급의 C기자는 “지면 기사에 온라인 기사까지 다 데스킹을 보려면 몸이 3개라도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의 D기자는 “사진도 그렇지만 특히 일러스트는 특정 목적에 맞춰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일러스트 하나를 여러 기사에 갖다 쓰게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나도 아차 하는 순간 비슷한 사고를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의 문제 요소를 잡아내고 고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만이 유일한 재발 방지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 측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선일보 차장급의 E기자는 “조 전 장관이 문제 삼기 전 선제 조치했거나, 문제 제기가 있은 직후 사고 발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었다면 회사를 향한 비난이 이렇게 커졌겠느냐”고 했다. 조선일보의 F기자는 “사과문이 올라온 뒤에도 주변에서 ‘정말 실수 맞느냐’는 의심 섞인 질문을 많이 하더라. 수습에 나섰을 때는 이미 다들 고의적이었다고 강한 심증을 가진 것 같아 답답하고 속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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