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시즌4 자막에 ‘먹스라이팅’, ‘SNS충’ 등 부적절한 신조어와 줄임말이 사용됐다는 시청자위원회 비판이 제기됐다. 공영방송이 범죄 행위를 사소화하는 표현의 사용을 조장하고, 특정 집단을 대상화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진행된 6월 시청자위원회에서 최진협 위원은 지난달 방영된 1박2일과 관련해 “‘먹스라이팅으로 5공 도전’, ‘진정한 먹스라이팅’, ‘틈새 먹스라이팅’ 등 ‘먹스라이팅’이라는 자막을 굉장히 수차례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1박2일’은 출연자인 라비씨가 많은 양의 음식을 먹도록 문세윤씨가 부추기거나 독려하는 장면에 라비씨를 가스라이팅 피해자로, 문씨를 가해자로 설정해 유머코드로 사용했다. 최 위원은 “‘먹다’와 ‘가스라이팅’을 합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먹스라이팅’은 ‘1박 2일’ 측에서 사용한 단어로 온라인상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1박 2일’이 먹스라이팅을 사용함으로써 관련한 기사와 SNS상에서의 사용 빈도가 눈에 띄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5월9일 방영된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갈무리
▲지난 5월9일 방영된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갈무리

최 위원은 “신조어와 줄임말 등을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말자는 뜻으로 의견을 드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잘 사용되지 않는 그리고 문제적인 언어를 KBS가 오히려 확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라며 비판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정서적 학대와 폭력으로 인하여 무력감 속에서 동의한 수많은 성폭력이 성폭력으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가해자의 정서적 학대 행위 자체를 명명함으로써 그 폭력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데 그 의미가 있다”며 “그러한 사회학적 의미를 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1박 2일’이 가스라이팅을 먹다와 합성하여 예능에서 희화화하고 사소화하는 것은 앞선 문제의식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뿐 아니라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폭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많은 목소리 역시 희화화되고 사소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 꼬집었다.

이 밖에 ‘1박2일-강원편’에서 음식 사진을 찍는 출연자에게 ‘SNS충’이라는 자막을 쓴 것을 두고도 최 위원은 “‘충’은 대부분 대상에 대한 비하와 경멸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상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문제적인 단어인데, 이는 존중과 협력하는 문화를 느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그것은 유머일 수도, 풍자일 수도 없는 그 자체로 출연자의 행위를 비하와 경멸의 의미로 쓰인 문제적인 표현”이라 지적했다.

‘제천편’의 경우 ‘의상 복불복’에서 남성 출연진이 여장을 하거나, 세신사를 벌칙 복장으로 묘사한 행위가 언급됐다. 최 위원은 “특정한 피부색을, 장애를, 가족 형태를, 성 정체성을, 연령대를, 지역을, 직업을 벌칙으로 재현한다면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그 재현을 보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유머와 예능이 아닌 그저 나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프로그램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누군가를 비하하고 대상화하지 않는 유머, 누구도 불편하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예능을 만들어내는 ‘1박 2일’ 제작진의 기획과 상상력을 기대하겠다”고 밝혔다.

▲5월23일 방영한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갈무리
▲5월23일 방영한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갈무리

이에 김호상 KBS 예능센터장은 “‘1박2일’이 10년 이상 되다 보니까 젊은 층의 트렌드라든지 요즘 20~49 시청층 외면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 제작진들은 조금 더 트렌드에 반영하고자 이런 것들을 일부 활용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전 가족 연령대가 시청할 수 있는 부분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정하겠다”며 “여성 캐릭터들을 비하하거나 이런 것들은 최근에 소재가 예능에서 굉장히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PD들이 굉장히 (웃음을 유발할) 장치를 만드는 데 제약이 있는 아쉬움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 센터장은 “하지만 여기에 담당 제작 메인 PD도 여자고 많은 스태프들이 여자 스태프들이다. 그래서 꼭 그렇게 남녀 구분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다”며 “예능의 장치를 더 하려다 보니까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불편함이 없도록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태선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은 “여성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여성이 하면 제대로 된 젠더의식이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며 “제작진들께서 토론을 해보시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권했다. 권 위원장은 “KBS가 우리말을 잘 지키겠다 하고, 아나운서실이 열심히 한다. 그런데 젊은 층에 영합하기 위해서 이런 단어들을 막 쓰는 것이 언어문화를 오염시킨다”며 “KBS가 본령을 지켜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0월9일 한글날만 우리말 잘 지키자 하고 나머지 364일은 마음대로 하면 되겠느냐”고 질책했다.

이런 지적에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은 “‘1박2일’ 연출자 등이 여성이어서 괜찮을 것이라는 것은 안일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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