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 발표’를 통해 문화예술노동자 전체 요구 및 각 문화예술 현장의 요구를 드러냈습니다. 그 중 영화, 음악, 방송작가, 게임, 웹툰, 공연, 예술강사들의 노동 현실과 구체적 요구를 연속기고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편집자 주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거니와, 인간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지식과 문화를 전수하며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전쟁 이후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큰 요인이 됐다. 그러나 암기와 주입식의 과도한 입시 위주의 교육은 창의성 말살 및 인간성 상실이라는 문제를 드러내게 되었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2000년대 초반에 ‘국악강사풀제’로 시작한 예술강사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20여년 동안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의 양적 성장과 질적 변화를 이끌었다.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은 벌써 20년 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강사’라는 명칭 자체를 모르거나, ‘방과후강사’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 사회에서 예술강사의 위상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2021년 현재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5000여명이 넘는 예술강사들이 활동하며, 학교 외에도 지역과 마을에서 다양한 예술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공교육과 현장의 예술가들을 연계하여 분야별 전문가가 학교를 직접 방문해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디자인 8개 분야에서 양질의 예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인포그래픽 갈무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인포그래픽 갈무리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은 학생들의 문화적 감수성 및 인성을 함양하고, 소통과 배려의 능력을 통해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더불어 예술인에게는 창작활동과 병행 가능한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이 주된 목적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해 예술강사 수업에 대한 학교와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첫 번째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 두 번째 목적은 어떠한가?

‘예술인을 위한, 창작활동과 병행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번째 목적은 안타깝게도 달성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예술강사의 강사료를 보자. 2021년 현재 예술강사의 강사료는 시수당 4만3000원이다. 20여 년 전, 처음 예술강사 제도가 시행됐을 때 강사료는 4만원이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예술강사의 강사료는 단 한번 인상됐다. 그것도 3000원. 물가상승률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숫자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대우이다. 

현재 예술강사는 초단시간 노동자로 분류된다. 이 말은 주 15시간 미만을 일하는 노동자라는 뜻이다. ‘초단시간 노동자’라는 제약이 있기에 예술강사는 4대보험 중 건강보험이 빠진 3대 보험만 가입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이 빠진 3대보험은 사실상 제대로 된 사회보험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 해도 건강보험 납부내역을 기준 삼는다. 경력도 건강보험 가입기간으로 산정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가치와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는데, 여전히 예술강사는 건강보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그렇다면 고용보험은 어떠한가? 가입은 하지만 실제 실업급여는 받기 힘들다. 주 14시간 미만을 일해서는 180일 동안 채워야 할 근무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맞출 수 없도록 해 놓고, 고용보험은 가입하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안정 지원금조차 받을 수 없었다. 매달 월급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긴 했어도 정작 실업급여는 받아본 적 없는 고용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술강사는 특수고용 직종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말, 3월 새학기 개학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침을 발표했다. 학교예술강사는 주 14시간, 월 59시간을 넘겨 수업할 수 없으며, 수업 전에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라는 교육현장 및 예술교육이라는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낳은 일방적인 지침이 아닐 수 없다. 학교마다 학사일정이 각기 다르며, 일정에 관여할 어떠한 권한도 없는 예술강사는 이 일정에 따라 수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단지 협의만으로 학교 일정을 조정하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하나 이상의 학교에 배치받은 예술강사가 학교 일정상 출강 요일이 겹칠 경우, 울며 겨자먹기로 수업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은 3월22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호소문과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사진=서비스연맹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은 3월22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호소문과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사진=서비스연맹

정규 교육과정상 기본교과, 창의적 체험활동의 동아리 활동이나 특별활동 시간에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예술강사들의 수업 시간은 보통 주1회이다. 그래야 주 14시간을 넘지 않게 일하게 된다. 예술강사사업을 설계할 때 초단시간 노동자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1회 수업으로, 과연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할까? 지금처럼 구색 맞추기 및 생색 내기의 예술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예술교육이 가능하려면 수업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런 당연한 요구에 대해 정부에서는 예산 문제를 이야기한다.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예술강사의 수업시간이 주 15시간을 넘어서 ‘초단시간 노동자’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면 건강보험과 주휴수당, 상여금과 퇴직금 등 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강사의 관리 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사전검열이라는 급작스런 지침을 발표하면서까지 예술강사의 시수를 제한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국의 예술강사들이 이 지침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전국적으로 1인 시위와 집회를 이어갔던 이유는 진흥원이 예술강사를 예술교육의 동반자가 아니라, 노무관리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20대의 젊고 의욕 넘치던 청년 예술강사들이 지금은 40~50대의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아이도 낳았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예술강사로서 활동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만 따져도 일반 회사라면 웬만한 경력직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강사의 경력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예술강사들은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그 해 학기가 끝나는 12월이 계약기간의 전부이다. 1년 중 10개월밖에 일하지 못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라는 굴레. 예술강사 지원사업 초창기부터 시작하여 10년 넘게, 20여년 가까이 일한 강사라도 1년차 신입 강사들과 똑같이 시수당 몇 만원의 강의료를 받는 1년 단위 불안정한 계약직일 뿐이다. 해마다 재고용되곤 있지만 연속고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년 단위로 10개월씩 일하는 계약직. 비정규직 일자리에서도 최악의 일자리가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3월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문화예술노동연대는 3월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문화예술교육의 양적·질적 성장의 중심에 예술강사의 활동이 있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더 이상 예술강사들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는 예술강사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는 교육에서 이루어지고, 교육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대 사회의 여러 병리적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제대로 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된 법률를 재정비하고, 관련 예산을 신속히 확충하기 바란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문화예술교육을 더욱 성장·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술교육은 후학양성을 위한 필수 예술활동이고, 예술강사는 예술가이면서 교육자이고, 또한 노동자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정체성 때문에 예술강사는 20여년 간 제대로 된 대우와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교육이 안정화되도록, 예술교육의 최첨단에 서 있는 예술강사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처우를 개선하길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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