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 발표’를 통해 문화예술노동자 전체 요구 및 각 문화예술 현장의 요구를 드러냈습니다. 그 중 영화, 음악, 방송작가, 게임, 웹툰, 공연, 예술강사 들의 노동 현실과 구체적 요구를 연속기고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편집자 주

2021년 5월.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사건이 있다.

지난 5월, 아시아문화원이 주관하는 전시회에서 작품의 특정 문구를 삭제하는 문화예술 검열사건이 또 발생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특별전시에서 아시아문화원은 하성읍 작가의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이라는 작품에 있는 그림속 시민군이 타고있는 차량 앞 현수막 글씨인 ‘전두환을 찢...’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채 전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아시아문화원은 바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담당자의 실수’로 책임을 떠넘겼다.

기시감이 있는 사건. 너무 익숙한 일상이라고 하면 과하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익숙하다’가 ‘괜찮다’와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연예술인노조의 요구안을 쓰기위해 한동안 모니터를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과연 이렇게 글을 쓴다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작은 변화의 작은 씨앗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까?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를 다룬 하성읍 작가의 작품 ‘광주의 입, 투사회보를 만들다’ 원본(왼쪽)과 아시아문화원의 홍보 포스터. 트럭 앞 문구 ‘전두환을 찢’이 삭제됐다. 사진=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정상화시민연대 제공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를 다룬 하성읍 작가의 작품 ‘광주의 입, 투사회보를 만들다’ 원본(왼쪽)과 아시아문화원의 홍보 포스터. 트럭 앞 문구 ‘전두환을 찢’이 삭제됐다. 사진=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정상화시민연대

바로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조급증 때문이 아니다. 예술인들은 그렇게 천진난만하지는 않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예술가들이 권력에 의해 좌우지된다는 뒷골목에서나 수근댈 이야기를 명확한 현실로 드러낸 사건이고, 이것으로 예술계는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예술계는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다른 시민들처럼.

끝나지 않은 블랙리스트, 마무리되지 않은 촛불


지금의 정부는 2016년 촛불항쟁으로 탄생했다. 그 촛불항쟁의 한복판에 환한 불을 밝히고 무대 위를 수놓았던 수많은 시민들 속에 예술가들도 있었다. 때로는 시민의 이름으로, 때로는 공연단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출연진이라는 이름으로 예술가들도 그 촛불항쟁 한복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그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촛불정부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바뀌고 5년, 집권여당의 의석수가 180석을 차지하고 2년째 되는 지금도 예술인들의 목소리는 요구도, 요청도, 청원도 아닌, 시혜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 분노한다.

▲‘댄스시어터 틱’이 2019년 11월4일 ‘블랙리스트 이후 블랙리스트 운동’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앞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댄스시어터 틱’이 2019년 11월4일 ‘블랙리스트 이후 블랙리스트 운동’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앞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공연예술인노조는 연극인을 비롯해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예술행위를 포함한 창작을 하는 공연예술인들의 노동조합으로 2017년 봄, 공연예술인들의 뜻을 모아 결성됐다.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뿐 아니라 오랜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공연예술계의 수많은 문제들이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에 뜻을 같이 했고, 이것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예술인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어있다. 그러나 예술인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경로는 사실상 숨은 그림 찾기처럼 어렵다. 우리가 공연예술인노조를 설립한 것은 2017년 3월이지만 우리는 한 번도 교섭을 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노동조합을 설립해도 막상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대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연예술계는 자본이 적고 동료적 입장에서 함께 창작하고 만들어내는 형태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대형 기획사나 정부기관이 관장하는 공연이나 행사가 아닌 경우 노사를 구분하기 대단히 어렵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이미 존재하는 노동자, 즉 예술노동자들이 있는데 그 노동이 생산해내는 재부도 엄연히 있고 그것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어째서 예술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가 없을까?

▲2018년 11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제대로된 처벌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2018년 11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제대로된 처벌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예술은 그 자체로 태생부터 특정한 부류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 즉 우리사회가 누리는 사회적 재부가 된다. 예술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생산물, 즉 예술활동과 예술작품은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역할로 하여 실질적으로 사회적 생산물이다. 이러한 연유로 예술인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국가기관과 정부가 직접 나서주어야만 한다.

이렇게 인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예술가들은 세금도 못내는 2등 시민이고 돈도 못 버는 무능한 국민이며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베짱이들로만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예술가들이 없는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인가? 공연예술이 없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그런 사회가 있지도 않겠지만.

안전한 창작환경 위한 법제정이 시작이다


예술가들은 매일 노동을 한다. 그가 창작하는 작품뿐 아니라, 그가 하는 창작행위나 예술활동이 예술노동자들의 생산물이다. 그리고, 그 생산물들은 우리사회 곳곳에, 국민들의 삶속 곳곳에 스며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요구한다. 예술인들도 노동자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 예술노동자인 우리의 요구에 대해 책임 있는 답을 하라!

예술노동자인 우리는 두 가지를 요구한다. 하나는 안전한 창작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법제정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 인식 개선과 최저 생계 보장을 위한 정부기관와의 협의체 구성이다.

안전한 창작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법 제정의 내용은 제대로 된 예술인 권리보장법 통과, 그리고 예술인에 대한 선별적, 차별적 고용보험적용이 아닌 전면적 고용보험 시행령 개정과 예술현장의 안전을 위해 제대로 된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마지막으로 예술인의 안전한 저작권 보호를 위한 저작권 보호법 제정이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 페이스북 갈무리
▲공연예술인노동조합 페이스북 갈무리

특히,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경우 예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우리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점하는 지위에 관한 법률이 될 것이기에 반드시 제정돼야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 표현의 자유’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에 대해 법으로 명시함으로써, 예술인에 대한 권리 침해 행위를 처벌할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명백한 범죄인데도 적절한 처벌 조항이 없어 직권남용죄로 기소했으나, 직권남용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처벌은 미미했고,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 조치도 없었다. 블랙리스트를 실제로 행했던 공무원노동자는 법률에 의해 보호됐으나 피해당사자인 예술노동자는 또다시 내팽개쳐졌다. 그러니, 아시아문화원 사례 같은 경우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언제 또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아야한다. 예술인들 역시 사회구성원의 한 영역으로 예술인에 대한 사회의 규정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마땅히 제정되어야할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정당간의 당리당략에 따라 지난 몇 년간 계류와 폐기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입법과정만 보더라도 이 사회에서 예술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올해에는 반드시 제대로 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른 실질적이고 책임있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마찬가지 선상에서 예술인 고용보험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현행 예술인 고용보험은 가입기간과 실업급여 수급액도 문제지만 전국민 고용보험으로 가기 위해서는 특례가 아닌 일반 고용보험으로 바뀌어야 하며 가입조건 완화와 대상자 제한을 풀어야 한다.

또한 공연예술현장의 안전은 생계와 목숨에 직결되는 문제다. 일례로 2018년도 경북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조연출이 무대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을 때 이 사고를 누가 책임졌는가? 엄연히 김천문화예술회관과 문화예술위원회의 주최주관으로 이뤄진 행사지만 현장 책임자 몇몇이 책임을 졌고, 주최주관기관은 빗겨갔고, 박송희씨를 고용했던 오페라단에게 벌금 700만원이 고작이었다.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과 책임도 이렇지는 않다.

공연의 일주체로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지위가 보장되기 위해서도 공연예술현장의 안전장치에 대한 기준과 보완이 시급하다. 애초에 기준이 없기 때문임에도 이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는 예술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예술인도 노동자입니다.” 이를 인정했기 때문에 예술인고용보험도 시행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예술현장의 안전에 대해서도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책이 마련하라는 예술노동자들의 요구가 과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책 세우는 정부기관, 예술노동자와 직접 협상해야


공연예술인노조 요구, 두 번째는 사회 인식 개선과 최저 생계 보장을 위한 정부기관와의 협의체 구성이다.

정부가 문화예술정책을 세울 때 문화예술계를 대상으로 의견을 듣는 방법으로 공청회를 연다. 그러나 공청회는 의견을 듣는 것일뿐이며, 그것조차 형식적일 때가 많다.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위해서, 현장의 목소리는 왜 듣는가? 들었다는 요식행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질적인 대안을 세울 때 일주체로 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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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bank

문화예술계는 지금 바로 바꾸고 해결해야할 수많은 문제가 있다. 천차만별인 공연예술가들의 보수 기준 수립, 현행 선별간접적인 공모지원 방식을 바꾸는 문제, 그리고 공모사업 금액의 현실화 등 공모사업의 개선, 위기상황 예술가 지원금 확대와 지원기간 확대와 공연장 거리두기에 따른 손실금에 대한 보전뿐 아니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방도로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 캠페인과 예술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등 공연예술계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할 현안은 산적해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인지원정책의 문제점들을 떠올려본다면 문제해결의 해법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기관뿐 아니라 예술가지원과 공모사업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정기적이고 실제권한이 있는 협의의 장이 있어야하지 않은가?

예술인과 예술계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예술인들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국가정책에 의견을 내고 그것을 관철할 권리가 있다. 문화예술정책을 세울 때 문화예술을 직접 담당하는 예술인들의 의견을 담아야하며, 그 의견을 책임 있게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문화예술계의 오랜 요구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사회에 예술의 출현은 필연이고, 예술은 인류사회를 발전시키는 제 역할을 피해간 적이 없었다. 그 예술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들은 바로 예술노동자들이다. 이에 대해 인정한다면, 우리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책임 있는 답을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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