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 대변인을 맡았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열흘 만에 직을 내려놨다. 이동훈 전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서둘러 입장을 번복하면서 메시지 전달에 문제를 드러낸 바 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 전 대변인의 공보 및 소통 능력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대권주자의 메시지 전달 창구 역할에 불신이 싹트고 대언론 관계까지 삐걱거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일방 메시지를 내놓고 기자들은 받아적어 전달하라는데 그치면서 일명 ‘전언 정치’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과도 무관치 않다. 이동훈 전 대변인은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오히려 윤석열 대권행에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언론계는 이동훈 전 대변인 사퇴 배경을 다각적으로 분석 중이지만 정작 이 전 대변인이 현직에 있다 곧바로 대선 캠프에 들어간 행적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전 대변인이 기자 단체 채팅방에서 ‘후배’ 운운한 건 해프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캠프로 직행하면서 불과 며칠 전까지 현직 기자였던 ‘선배’가 후배 기자들을 일방 메시지 대상으로 보고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윤석열 전 총장을 논평하는 위치에 있었던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곧바로 ‘윤석열의 입’이 되어버린 문제, 즉 언론인의 정치권행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벗자마자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총장 당시 정치적 중립 여부가 의심을 받았듯이 이동훈 전 대변인 역시 그가 썼던 윤석열 관련 논평도 언론인으로서 행위였는지 아니면 캠프행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갈무리
▲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갈무리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언론계에서 이 같은 행보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외려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언론인이 줄을 잇고, 이에 ‘이게 뭐가 문제냐’는 반문이 나온다. 언론과 정치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원론적 비판에 머물면 정치를 견제 감시하는 우리 언론의 역할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 분야 취재기자와 부서장이 해당 직을 끝낸 후 6개월 이내 정치 활동을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이 왜 존재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결국 어떤 ‘유혹’으로부터도 엄격해야만 저널리즘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민주연합시민연합이 “선거 시기만 되면 어제까진 권력 감시자를 자처하다 오늘은 권력 대변자로 변신하는 일부 언론인들의 부적절한 처신은 언론 공신력을 크게 훼손해왔다”고 비판한 것은 다행이다.

2015년 6월28일 저널리스트 트레이시 튤리스는 ‘가장 외로운 코끼리’라는 뉴욕타임스 글을 통해 뉴욕 브롱코스 동물원에서 9년 동안 사육 중인 코끼리를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최고의 글이라며 추켜세웠다.

하지만 튤리스는 글을 쓰기 2개월 전 브롱코스 동물원의 코끼리를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온라인 청원에 서명한 것을 두고 “뉴스를 취재할 때 중립적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상당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뉴욕타임스 기자 지침서를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저널리즘 가치를 해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파적 보도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 분야를 보도하는 현직 기자가 곧바로 캠프행을 택하는 행위는 언론 불신을 앞당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강민석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사표를 낸지 사흘 만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고, 여현호 전 한겨레 논설위원 역시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직행했을 때만 해도 언론계가 비판하고, ‘권력을 감시하던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권력 핵심부로 갔다’는 소속 매체 구성원들의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이 전 대변인이 캠프로 직행했을 때 조선일보 구성원 입장을 엿볼 수 있는 노보에는 한줄 반응조차 없었다. 언론계에서 ‘폴리널리스트’ 비판이 사라질 정도로 현직 기자의 정치권행에 문제 의식이 무뎌진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언론 윤리를 지키는 게 저널리즘 기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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