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저는 상관 없지만 제가 혹시 당대표가 된다면 한겨레에서 언급한 성평등 기조를 버리고 사내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여성혐오자로 낙인 찍은 저를 취재할지는 궁금해지네요.”(6월9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이 이상 폭력적일 수 없다. 이준석이 나와서 ‘이거 봐라, 독재 아니냐’고 하면 한겨레가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6월10일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

한겨레가 유튜브 프로그램 ‘공덕포차 시즌2’에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를 고정출연자로 섭외했다 취소한 결정에 대한 당사자 이 대표와 공덕포차 출연자의 발언이다. 한겨레 결정이 이 대표를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일이자, 그의 발언을 취재해 보도해온 행위와 충돌한다는 취지다.

▲지난 9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페이스북
▲지난 9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페이스북

이 대표 고정출연 결정과 그의 발언을 기사화하는 것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이 대표 고정출연 여부를 논의했던 저널리즘 책무위원회는 지난달 20일 “고정출연과 기사화는 서로 다르다”는 공통된 판단 아래 이 대표 섭외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 책무실장은 15일 통화에서 “한겨레의 결정은 한 인사를 한겨레TV에 고정패널로 출연시키는 것이 지면에 고정칼럼을 주는 것과 버금가는 중요성을 부여하는 일이라는 전제에서 이뤄졌다”며 “한겨레엔 온라인과 오프라인, 일간지와 주간지, 영상 등 여러 경로가 있고 영상 가운데서도 고정출연은 시키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저널리즘 책무위원회 사외위원인 김영욱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도 “언론사가 한 인사를 인터뷰해 기사 쓰는 것, 그의 기고를 한 차례 독자 편지로 받는 것, 그를 고정필자로 초대해 모시는 것은 각각 다른 차원”이라며 “이준석 당시 후보를 고정패널로 모시는 건 이 중 세 번째다. 공적 인물의 활동을 취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한겨레 정치부도 이 대표 선출 뒤 인터뷰 일정을 잡았고, ‘이준석 현상’을 주제로 한 기획보도를 진행하는 등 변함없이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이주현 한겨레 정치부장은 “‘이준석 현상’이란 실체가 있기에 이 현상을 기사로 쓰는 것은 당연하다. 이 대표의 당선을 양날의 칼로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 정치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고 퇴행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한겨레는 이 대표 섭외 여부에 이른바 ‘가르마’를 탄 것이고, 이후 공덕포차 제작진은 유튜브의 콘셉트대로 이 대표의 하차 결정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한겨레 유튜브 ‘한겨레TV’가 첫방영한 ‘공덕포차 시즌 2’ 화면 갈무리
▲지난 10일 한겨레 유튜브 ‘한겨레TV’가 첫방영한 ‘공덕포차 시즌 2’ 화면 갈무리

결국 한겨레 구성원들은 이 대표의 고정 섭외가 한겨레 가치 기조의 영역 안에 있느냐를 두고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정연 젠더데스크는 “한겨레가 33년 넘는 시간 동안 성평등과 저널리즘의 접목을 위해 노력해온 매체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한겨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직장 내 성희롱, 호주제 폐지부터 최근의 권력형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를 주도적으로 보도해왔다. 이런 기준에 비추면 실존하는 성차별을 분명한 근거를 들지 않고 의도적으로 ‘없다’고 공개 발언한 정치인을 비판·비평하는 것이 한겨레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저널리즘 책무위 사외위원 3명 중 1명은 이 대표의 고정 섭외에 찬성 의견을, 2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찬성 위원은 “라이브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박될 수 있지 않나. 같이 토론하면 절대로 진중권이 밀리지 않을 텐데. (중략) 제작 자율성이란 면에서 자꾸 금기를 만들어가는 게 바른 방향일까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두 위원은 각각 “정치적인 의견의 다양성과 페미니즘은 다른 것”, “이준석 발언들을 보면, 사실에 근거해 다른 가치관을 주장하는 선을 살짝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공덕포차 제작진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고정출연이 언론사의 논조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면 위 저널리즘 논의를 영상 저널리즘에 일면적으로 대입한 결과라는 것이다. 공덕포차 제작진이자 진행을 맡고 있는 김완 기자는 “이를 테면 KBS에 전원책이 고정출연한다고 해서 KBS 논조가 전원책의 논조와 같아진다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내 바로잡을 진중권 전 교수 등 다른 패널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완 기자는 “한겨레가 이준석 대표를 하차시키는 과정에서 적용한 기준을 편집국 지면에는 적용하고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고경태 편집국 신문총괄이 독자에게 보낸 레터에서 이준석의 등장에 ‘신선하다’고 평한 점이나 ‘0선 30대의 파란, 정치판 흔들다’ ‘달라진 대구…정권교체 위해 ‘젊은 보수’ 밀었다’ 등 보도에서 이 대표 당선에 긍정적인 면을 위주로 그린 점을 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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