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공식일정 첫날인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언론이 주목한 건 그가 남긴 방명록이었다. 글씨가 삐뚤빼뚤하다는 게 쏟아진 기사들의 핵심이다. 기사에는 ‘컴퓨터 세대라서 그렇다’는 내용이 나온다. 젊다는 말인가. 한국에 컴퓨터가 도입된지 한 세대가 훌쩍 지났고, 50~60대도 컴퓨터로 업무해 온 시대인데 ‘컴퓨터 세대’라니. ‘초딩 글씨’라는 표현이 나온 기사 제목도 있다. 나이 60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 대표보다 더 악필이다. 

이날 아침신문을 보면, 서울신문·중앙일보·한겨레 등은 1면에 이 대표가 전날 따릉이를 타고 국회에 가는 사진을 크게 실었다. 인터넷 포털에 따릉이 타는 모습 사진이 몇장 실린 것이야 그럴 수 있다. 독자들은 관심 없겠지만 1면사진은 편집국의 고심을 반영한다. 같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혁신태풍’, ‘젊은 보수’였다. 따릉이를 타는 게 보통의 정치인과 다른 모습일 순 있지만 그게 젊음이나 혁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세대교체를 말하며 정치권 쇄신을 요구하는 언론의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의아하다. 

▲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가 공식일정을 시작하는 14일 한겨레는 1면에서 이 대표 소식으로 도배한 반면 조선일보는 G7 소식을 전했다
▲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가 공식일정을 시작하는 14일 한겨레는 1면에서 이 대표 소식으로 도배한 반면 조선일보는 G7 소식을 전했다

지난 11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서 진행자 주진우 기자는 이 대표에게 느닷없이 “미혼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변에 “여자친구는 있는가”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명절 때 집안 어르신들과 2030의 장면같다. 주 기자는 이 대표가 킥보드를 탄 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말 언론인들은 ‘따릉이나 킥보드는 애들이나 타는 것’쯤으로 이해한 걸까. 나이가 어리면 사적인 영역을 쉽게 침범하거나 따릉이를 타는 것 따위에 호들갑을 떠는 ‘꼰대짓’을 해도 된다고 여겼을까. 

최고봉은 서울이코노미뉴스가 지난 4월28일 실은 “진중권한테도 얻어터진 국민의힘 이준석 너무 나댄다”란 칼럼이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보면 젖비린내가 난다”로 시작하는 칼럼은 “내용을 들어보면 애송이가 떠드는 것과 같다”, “그가 정치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공부를 더 했으면 한다”, “애송이가 하는 말을 그리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이준석이 까불면 안 된다” 등 주옥같은 문장들로 구성됐다.

그 외에도 이 대표가 줄임말을 한두개 쓰는 것에도 의미부여를 하며 젊음에 대한 다양한 강조를 비롯해 예시는 끝이 없다. 이쯤되면 과연 다수의 언론은 스스로 정체성을 몇살에 두고 있나 싶다. 

오랜만에 바람이 불었다. 

30대, 0선. ‘이준석 돌풍’을 가능케 한 숫자다. ‘헌정사 첫 30대 당수’, ‘초선도 아닌 0선’의 변주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가 30대이고 국회의원 한번 못한 0선이기에 제1야당 대표 당선이 주목받는 건 사실이지만 30대와 0선이라는 그의 일부 특성을 부각해 상징화한 건 언론이다. 30대가 기특하게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칭찬이든, 경험이 부족한 어린애라는 평가절하든 나이라는 특정 정체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반민주적이다. 

▲ 한겨레 12일자 기사
▲ 한겨레 12일자 기사

여의도에선 바람을 좋아한다. 특히 밑바닥에서 시작해 고난을 딛고 성장하는 드라마를 찾는다. 30대와 0선은 그가 ‘기득권이 아닌 신선한 인물’이라는 스토리를 만드는 기초 조건이다. 지역주의를 깨보겠다며 부산출마를 고집하다 낙선한 당내 비주류 바보 노무현. ‘영애’로 살다 비극으로 부모를 잃고 야인생활을 거쳐 결국 ‘선거의 여왕’으로 부활해 청와대에 재입성한 박근혜. 승자 스토리의 출발은 밑바닥이다. 네러티브엔 과장과 편집이 섞여 있지만 시대정신과 만나면 돌풍을 만든다. 

돌풍 앞엔 걸림돌이 없다. 그것이 비난이든 딴지든 네거티브든 바람 앞엔 쉽게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검증이 있어야 하지만 최근 언론은 대체로 ‘이준석 돌풍’에 올라탄 쪽에 가까웠다. 정치인의 드라마는 비주류, 즉 상대적 약자·소수자의 위치에서 시작해야 극적이다. 30대, 0선이 아닌 미국 명문대 출신에 ‘방송인’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스피커를 가졌으며 당시 박근혜라는 유력정치인에게 발탁돼 정치판에서 10년을 버틴 강자적 요소로만 그렸다면 어땠을까. 

▲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 사진=국민의힘
▲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 사진=국민의힘

경향신문에서 편집국장까지 지낸 ‘중년’의 김민아 선임기자가 쓴 “‘이준석 현상’과 ‘낡은 이준석’”은 30대와 0선을 강조하지 않고 그를 보수정당의 유력 당대표 후보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검증한 글 중 하나다. 물론 고질적인 정치보도의 문제인 따옴표 저널리즘과 사실확인 없는 속보 쏟아내기로 이러한 글이 포털에서 눈에 띄기란 쉽지 않다. 

이 대표는 중학교를 서울 목동에서 다녔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대부분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며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회상했다. 목동에서 학교를 다닌 것부터 다른 출발선이다. 과학고와 하버드대학에 갔으니 그의 노력과 실력을 부인할 순 없지만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은 성립하기 어렵다. 어린 시절 외국생활이나 대학생 시절 아버지와 고교와 대학 동문인 유승민 의원실 인턴 경험은 ‘공정한 경쟁’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김 선임기자는 이 대표의 대표적 주장 중 하나인 성별할당제 폐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이 대표는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며 “할당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남성은 더 많은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이다. 할당제는 ‘여성할당제’가 아니다. 특정 성별이 30% 미달이면 추가 합격시키는 제도로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수혜자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실상은 ‘남성할당제’다. 

물론 비슷한 지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언론의 관심은 사실관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4월 중순, 언론에서 김웅·김은혜·이준석 등의 정치인이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소식을 ‘당내에서 부정적이진 않다’는 정도의 분위기와 함께 전할 때 진중권 전 교수가 당시 이준석 후보와 여성혐오 이슈로 토론했다. 논쟁을 말싸움으로 치환하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소비됐다. 파이낸셜뉴스 4월28일자 ‘"공부해라" vs "헛소리" 진중권 이준석 또 싸웠다’가 대표적인 예시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이준석 당대표 후보의 토론을 말싸움으로 표현한 기사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이준석 당대표 후보의 토론을 싸움으로 그린 기사들

 

▲ 이준석 당시 당대표 후보 관련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
▲ 이준석 당시 당대표 후보 관련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

신성과 혐오는 닮았다. 사람은 성공한 방식대로 망한다. 정치인은 언론이 띄운 지점에서 추락할 수 있다. 안철수는 새 인물이라고 띄웠다가 새정치인지 모르겠다며 쇠락했고, 박근혜는 어렸을 때부터 영부인을 대신했다며 능력을 추켜세웠다가 권력자 특유의 폐쇄적 불통 등을 이유로 몰락했다. 이준석 체제가 혁신의 대명사인 듯 보도하지만 이준석 체제가 삐걱댈 때 언론은 다시 30대와 0선을 꺼내들어 그의 경험과 중량감 부족을 이유로 들 것이다. 바람은 금방 지나간다. 

전당대회는 끝났고, 국민의힘의 새 지도부는 출발했다. 여전히 다수 언론은 보수의 혁신을 분석하고 서사를 부여하고 있다. 언론이 30대와 0선을 강조하며 이준석을 개혁과 세대교체의 출발지점에 데려다 놓을수록 이준석 현상의 수혜자인 2030남성은 ‘불공정한 현실에서 피해를 받은 집단’으로 인정받을 뿐이다. 4·7재보선에서도 정치적 효능감을 발현했던 이들은 제1야당에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요구할 것이고 최종 승자는 ‘공정한 기준’을 설계할 이 대표다. 

보수언론 한 귀퉁이에는 이 대표의 속내가 조금씩 드러나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2일자 이 대표 책에서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경영 효율성이 높아져 결국엔 사회에 이득이 될 것”이라며 “해고는 쉽게 하고 사회 안전망은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논쟁과 검증이 치열하게 있어야 할 이슈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김종인식 경제민주화’에 대해 “그 부분은 저와 생각이 다르다”며 “분배를 담당하는 주체는 시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사설 “‘경제민주화 허상’ 지적한 이준석, 합리적 대안 기대한다”에서 이를 재차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14일 ‘“김종인식 규제 동의 안한다” 기업 들썩인 ‘이준석 돌직구’’에서 한국경제 인터뷰 발언을 인용하며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대한 재계입장 반영을 요구했다. 

이 대표의 여성혐오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언론이자, 15일 사설에서 산재 사망에 대한 ‘국가적 조사기구’ 설치를 제안한 한겨레는 14~15일 ‘탈바꿈하는 보수’란 주제로 ‘세대교체’, ‘2030 세력화’, ‘젊은 보수’ 등의 열쇳말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30대’와 ‘0선’을 지우면 1940년생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보다 더 반서민적이고 반여성적이며 강경한 보수정당 대표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30대’ 당대표가 아니라 ‘당대표’다. 

▲ 한겨레 12일자 사설
▲ 한겨레 12일자 사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