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유튜브 ‘한겨레TV’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섭외했다가 내부 토론 끝에 취소했다. 프로그램 ‘공덕포차 시즌2’는 오는 10일 저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을 고정 패널로 내세워 첫 방송한다.

한겨레 디지털·영상국은 지난달 한겨레TV 공덕포차 시즌2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출연진으로 섭외하고 5월13~14일 방영을 목표로 티저광고까지 찍었다. 그러나 일부 구성원이 이 전 최고위원 고정 출연 결정을 접한 뒤 문제 제기했고, 한겨레는 젠더데스크 의견취합과 국·실장 회의, 저널리즘 책무위원회 회의를 열고 토론 끝에 최종 철회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지난달 12일 이 전 최고위원의 공덕포차 섭외 소식과 관련해 구성원 의견을 취합한 의견서를 임석규 한겨레 편집국장에게 제출했다. 이 전 최고위원 출연에 대한 일부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를 접하고서다. 한겨레 노보에 따르면 젠더데스크는 의견서에 이 전 최고위원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정치적 자원으로 동원해 한겨레의 성평등 기조와 배치되는 인물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한겨레 유튜브채널 ‘한겨레TV’의 ‘공덕포차’ 시즌2 갈무리.
▲유튜브채널 ‘한겨레TV’의 ‘공덕포차’ 시즌2 티저영상 캡쳐.

한 한겨레 구성원은 “(이 전 위원 출연으로) 한겨레가 겨우 쌓은 성평등 기조에 대한 신뢰는 깨질 것이고, 복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다른 구성원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더라도 꼭 이준석이어야 하나? 그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그것을 정치력으로 끌어다 쓰는 데 능숙한 사람이다. 마이크를 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구성원은 “성평등을 막아선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권과 언론이 백래시 가담자들의 확성기 구실을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는 지난해 4월 한겨레 보도를 직접인용했다. 

김현대 대표이사는 같은 날 오후 대표이사, 편집인, 편집국장, 영상국장, 논설실장, 저널리즘책무실장 등이 참석하는 대편집회의를 열고 논의 뒤 티저 송출 보류를 지시했다.

이에 공덕포차 제작진은 의사 결정 과정을 두고 문제 제기했다. 제작진을 포함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한 쪽의 문제 제기만으로 곧바로 출연진 하차가 결정된 점에 대해서다. 제작진은 사측에 저널리즘책무실 등에서 추가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이 전 위원을 하차시키지 않는 대신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여성 출연진 1명을 추가 섭외하는 등의 대안도 제시했다. 

제작진은 노보에서 “(제작진은 이 전 위원이) 대중의 ‘반페미’ 정서를 정치 자산화해 정치를 해왔단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사내 구성원 대부분이 인식할 내용이고, 섭외 당시부터 이준석에게도 이미 고지한 내용”이라며 “섭외 취지는 조회수를 좀 더 얻으려는 얄팍한 수나 젠더 감수성 부족이 아니다. 사건과 현상 앞에서 저널리즘이 취해야 할 태도는 기록, 관찰, 비평이지 회피, 외면, 배척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겨레 저널리즘 책무위원회는 지난 달 20일 위원 6명(사내 3명, 사외 3명)이 참석하는 온라인 회의를 열었다. 사외 위원 3명 중 2명이 한겨레의 가치 기조와 이 전 위원의 출연이 어긋나는 행태라는 의견을 냈다. 백기철 편집인이 24일 이를 바탕으로 대편집회의에서 이 전 위원 하차를 최종 결정했다.

▲유튜브채널 ‘한겨레TV’의 ‘공덕포차’ 시즌2 티저영상 캡쳐.
▲유튜브채널 ‘한겨레TV’의 ‘공덕포차’ 시즌2 티저영상 캡쳐.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는 뉴스레터 노보 ‘디지털 진보언론’을 통해 해당 사안이 진행된 과정과 의미, 조합원 의견을 다뤘다. 한겨레지부는 “이번 논란은 자세히 살펴볼 의미가 있다. 한겨레 안에 ‘성평등 콘텐츠 제작’이라는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선 구성원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노현웅 한겨레지부장은 8일 “젠더 이슈는 한겨레의 중요한 진보적 의제다. 관련 문제 제기가 있을 때 젠더데스크와 국실장 회의, 저널리즘책무실,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내 제도들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 생각이 일치에 이르진 못하고 아쉬움도 남을 수 있지만, 구성원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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