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A와 대화를 할 때마다 내가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지난달 25일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숨진 네이버 직원이 과거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다. 네이버 노동조합이 직원의 사망 사고에 대한 실태조사 중간 결과 발표를 통해 수차례 문제제기에도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있는 임원에 대한 인사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노동조합은 7일 실태조사 중간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나친 업무지시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 ‘부당한 업무지시와 모욕적 언행 등 상급자 지위를 이용한 폭력적인 정신적 압박’ ‘임원A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수차례 요구에도 회사가 방조하고 묵인한 점’을 사고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 네이버 사옥. ⓒ 연합뉴스
▲ 네이버 사옥. ⓒ 연합뉴스

네이버 노조에 따르면 지난 3월 한성숙 네이버 대표, 이해진 GIO등 핵심 임원이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 임원A 인사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당시 인사담당 임원B는 경영 일선과 인사위원회 차원에서 검증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이때만 문제 제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임원A는 네이버에서 문제를 일으켜, 넷마블로 이직했고 이후 넷마블에서 네이버로 재입사를 했다. 네이버 노조에 따르면 그가 리더급으로 재입사를 한 직후인 2019년 1월 네이버 CTO와 임원A, 개발 인력 6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임원A의 과거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임원A는 “일부 사실”이라고 답변했고, 당시 경영진C는 “임원A에게 문제가 있으면 A에게 말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내게 직접 말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4개월 후 조직장 14명이 경영진C와 면담을 했다. 조직장들은 임원A의 강압적 의사소통과 조직체계를 무시한 업무지시, 회의중 물건을 던지는 등 행위, 설명을 듣지 않고 혼을 내려는 태도의 문제점을 토로했다. 경영진C는 고려해보겠다고 답했지만, 오히려 문제제기를 한 14명 중 4명이 팀장직에서 보직 해임됐다. 문제 제기한 이들 중 4명이 퇴사를 하기도 했다. 반면 임원A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 네이버 노동조합이 7일 네이버 본사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 결과 중간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 네이버 노동조합이 7일 네이버 본사 앞에서 고인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 중간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네이버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과도한 업무부담에 시달리는 가운데 임원A로 인한 스트레스도 호소했다. 2021년 5월 고인이 개발을 맡은 네비게이션 출시가 결정되면서 강도 높은 개발 업무가 이뤄졌고, 개발 이후에도 여러 수정사항이 나오면서  과도한 업무가 이어졌다. 고인이 서비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가와 밤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한 기록도 있다. 하지만 고인의 조직이 개편되면서 일은 늘었지만 인력은 줄었고 충원이 되지도 않았다. 주변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문제는 임원A로 인해 상황이 악화됐다는 데 있다. 고인은 한 인턴 사원에게 정규직 전환을 제의했으니 임원A의 질책이 심하다며 입사를 거부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오세윤 네이버 노동조합 지회장은 “진상 조사를 진행하며 고인의 생전 행적을 되짚는 내내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과도한 업무량, 부당한 업무지시, 모욕적인 언행, 무리한 업무 지시 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직원들의 문제제기를 사측이 제대로 살펴보기라도 했다면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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