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언론계 종사자에 대한 위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소위 ‘기레기(기자+쓰레기) 담론’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도 시민들의 주체적인 미디어 소비와 언론을 위축시키는 행위는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와 내무부는 지난 3월 ‘언론인 안전을 위한 계획(National Action Plan for the Safety of Journalists)’을 밝혔다. 주된 목표는 △언론인 위협에 대한 이해 △언론인 대상 범죄에 대한 형사사법체계 개선 △언론인 안전을 위한 자원 구축 지원 △온라인 위협을 줄이기 위한 플랫폼 개선 △언론 가치에 대한 대중 인식 향상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미디어법조인협회가 언론인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언론노조·언론편집인협회·기자교육협의회·경찰 등이 언론인 대상 교육을 맡는다. 관련 부처(DCMS)는 ‘언론인 긴급 안전지원금’ 신설을 논의하는 한편, ‘온라인 안전 법안(Online Safety Bill)’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
▲영국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언론인 안전을 위한 계획' 5대 목표. 사진=영국 정부 통합사이트 갈무리

특히 당국은 “여성과 BAME(Black Asian and Minority Ethnic: 흑인·아시아인·소수인종 등) 기자들을 겨냥한 학대는 지속적인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칠링 이펙트’는 과도한 압력으로 사상·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정당한 권리 행사를 주저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같은 달 국경없는기자회(RSF)도 여성의날을 맞아 발행한 ‘성차별의 저널리즘에 대한 대가(Sexism’s Toll on Journalism)’ 보고서에서 온라인·뉴스룸에서의 젠더기반 폭력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20개국 150명의 언론인 65%가 ‘저널리스트 사진 이미지를 성적인 목적으로 악용한 행위’를 겪었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은 “많은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겪는 위험은 전통적인 취재 보도 현장과 인터넷과 디지털 영역뿐 아니라 그들이 보호받아야 할 곳, 바로 그들이 일하는 뉴스룸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48% 응답자가 ‘자기검열을 하고, 특정 분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위협을 들여다볼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는 ‘언론혐오 담론의 확산과 언론의 대응책’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신우열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국내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 특징으로 “정치화와 젠더화”를 꼽았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낸 “성차별의 저널리즘에 대한 대가(Sexism’s Toll on Journalism)” 보고서 페이지 갈무리
▲국경없는 기자회가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낸 '성차별의 저널리즘에 대한 대가(Sexism’s Toll on Journalism)' 보고서 페이지 갈무리

신 교수는 심층 인터뷰 사례들을 언급하며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신문사의 소속 기자는 아주 짧은 기간 극심한 비난을 두 진영으로부터 동시에 받았다. 공교롭게도 이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젠더 이슈는 더 복잡하다. 여성 기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기자에 대한 혐오(분노)가 중첩되어서 더 큰 공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비난이 △완벽주의 추구 △동료·시민에 대한 ‘감정적 벽’ △자기 검열로 이어지며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암묵적으로 ‘욕을 덜 먹을’ 기사들을 발행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유·무형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기자들의 독립권과 편집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기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괴롭힘을 ‘젠더 트롤링(불쾌감을 자극하는 의도적 행위)’으로 규정했다. 이런 양상이 “악성 댓글, 이메일을 통한 괴롭힘, 남성 커뮤니티 내의 성적 학대 및 개인정보 공개, 오프라인에서의 실질적인 폭행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악플 때문에 기사를 못 쓴다기보다는, 사내에서 ‘네가 젠더기사 써서 그렇지 않느냐’는 인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젠더·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평가절하적 태도들이 직업적 자존감과 의제설정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최근 많은 언론사가 독자와 접촉면을 늘리면서 기자들에게 SNS 활용을 권한다. 여성, 특히 젠더 이슈를 담당한 기자들은 유튜브나 TV방송에 나가기 두려워진다”며 직무수행 위축 가능성을 지적했다.

▲5월29일 한국언론정보학회 2021 봄철 학술대회 중 '기자에 대한 젠더화된 괴롭힘 그 현황과 과제'(최이숙, 장은미) 발표 갈무리
▲5월29일 한국언론정보학회 2021 봄철 학술대회 중 '기자에 대한 젠더화된 괴롭힘 그 현황과 과제'(최이숙, 장은미) 발표 갈무리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언론혐오 시대를 여성기자로 살아가기’(가제)란 주제의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각 조직에서 어떤 부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이 연구에 협력하는 한편 젠더균형보도에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지표개발을 논의 중이다. 김수진 성평등위원장은 통화에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성평등한 미디어를 만들 수 있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이날 “정말 문제적 언론은 제대로 된 비판도 정파적으로 치부한다. 정작 양심적 언론인들은 과도한 자기 검열, 위축 효과를 겪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시민단체들의 일부 언론 비평, 미디어 전문지, 언론학자들의 발언 등이 언론 혐오(불신) 확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학술대회에선 언론 비판을 ‘혐오’로 묶어선 안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혐오는 소수자 차별과 맞닿은 용어”라며 “‘혐오’는 여성 기자에 대한 것으로 국한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국사회 전반의 양상은 트롤링보다는 기레기담론에 기반한 군중검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리포트래시’ ‘기레기추적자’ 등 소위 ‘기레기 아카이빙’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시민들의 참여가 진화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군중검열을 부추겼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다만 소수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혐오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시민들의 비판에 격앙된 언론, 언론 불신을 재생산하는 일부 시민들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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