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정보 대응을 위해 선진국은 관련 입법을 한 상태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한 발언이다. 그는 선진국 입법 사례로 선거 기간 허위조작정보 게시글 삭제를 강제하는 프랑스의 ‘정보조작 투쟁법’을 언급했다. 

한국엔 ‘가짜뉴스 규제’가 없다는 인식이 있지만 오해에 가깝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엔 이미 프랑스의 법보다 더욱 강력한 제도가 있다. 중앙 및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때마다 ‘가짜뉴스’(허위정보)에 해당하는 허위사실 공표는 물론이고 기준이 모호한 비방, 비하 게시글까지 대거 삭제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오픈넷과 함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제출받은 선거관리위원회의 4·7 재보궐 선거 관련 게시글 삭제 내역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특정 후보에 대한 게시글에 선관위가 집중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사업자가 규제 사각지대라는 인식과 달리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대한 대대적인 삭제 조치도 이뤄지고 있었다.

선거 기간 3189건 삭제, 페이스북 가장 많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재보궐 선거 기간 삭제한 게시글(댓글 포함, 선관위 요청 건수 기준)은 3189건에 달했다. 선관위는 이 가운데 과도한 내용 9건에는 고발, 4건에는 수사 의뢰를 요청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게시글에 대응하는 허위사실공표(129건), 비방(961건), 지역·성별비하·모욕(75건) 세 항목으로 삭제한 게시글이 1165건에 달했다. 

여론조사를 언급하면서 표본과 오차범위 등 필수 고지 항목을 밝히지 않거나 비공식 여론조사를 공개하는 등 여론조사 공표 보도 금지 항목의 삭제가 1611건, 선거의 자유 방해 항목 삭제가 239건, 선거운동 금지자의 선거운동 항목의 삭제가 1건으로 나타났다. 

▲ 4·7 재보궐_선거 선관위의 게시글 및 댓글 삭제 사이트. 박형준 후보에 대한 건수가 많아 축약. 디자인=안혜나 기자.
▲ 4·7 재보궐 선거 선관위의 게시글 및 댓글 삭제 사이트. 페이스북 건수가 많아 축약. 디자인=안혜나 기자.

게시글 삭제 대상을 사업자별로 분석한 결과 페이스북(833건)에 가장 많은 삭제가 이뤄졌다. 이어 DC인사이드 449건, 네이버밴드 367건, 네이버뉴스(댓글) 292건, 트위터 272건, 유튜브 164건, 인스타그램 137건, 네이버카페 103건, 다음뉴스 98건, 네이버 블로그 67건, 다음카페 59건, 에펨코리아와 카카오스토리가 각각 53건 순으로 나타났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해외 사업자들도 선거관리위원회 게시글 삭제 요청에 협조하고 있었다. 구글의 경우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삭제 요청 대표 사례와 건수를 공개하고 있다.

박형준 ‘불륜설’에 적극 대응 이유는?

선관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게시글을 삭제했을까.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에 대응하는 3가지 항목(허위사실 공표, 비방, 지역·성별 비하·모욕)을 분석한 결과 1165건 가운데 976건이 박형준 후보 게시글에 대한 대응이었다. 다음으로 이언주 후보가 42건, 오세훈 후보 30건, 나경원 후보 27건, 우상호 후보 26, 박영선 후보 23건, 김영춘 후보 15건 순으로 나타났다. 

박형준 후보에 대한 부정적 게시글에만 삭제 건수가 몰려 있는데 세부 내역을 확인한 결과 대부분 ‘불륜설’에 대한 대응이었다. “박 후보가 불륜을 저질러 이혼을 하게 됐다”거나 “간통을 했다”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 4·7 재보궐 선거 후보자별 비방, 허위사실공표, 비하 등 3가지 항목의 삭제 건수 집계. 박형준 후보 건수가 많아 축약. 디자인=안혜나 기자.
▲ 4·7 재보궐 선거 후보자별 비방, 허위사실공표, 비하 등 3가지 항목의 삭제 건수 집계. 박형준 후보 건수가 많아 축약. 디자인=안혜나 기자.
▲ 선관위가 삭제한 박형준 후보 비방글. (제목 기준)
▲ 선관위가 삭제한 박형준 후보 비방글. (제목 기준)

선관위는 박형준 후보를 ‘MB 아바타’에 빗댄 트윗 7건도 대거 삭제했다. 해당 게시글은 박형준 후보에 대해 “명박이 아바타인 박형준. 이런 쓰레기를 뽑아준다면 부산시민들은 쓰레기들입니다. 친일매국노들의 본거지 개쌍도놈들을 더 이상 지원해서는 안됩니다”라고 썼다. ‘개쌍도’라는 표현이 지역 비하라 삭제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이 거칠긴 하지만 특정 후보에 대한 비난을 일일이 삭제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선관위는 이 외에도 박영선 후보 아들 병역 문제에 대한 허위 주장을 담은 글, 우상호 후보가 해외 원정 성매매를 한 듯한 허위 주장을 담은 글, 오세훈 후보가 성폭행 범죄를 은폐하고 있다는 식의 허위 글, 나경원 후보가 혼외자식을 낳았다는 허위 글 등에 허위사실유포·비방 항목을 적용해 삭제했다. 나경원, 박영선 등 여성 후보에 대한 글에는 성적인 욕설이 많았는데  선관위는 ‘성별 비하’ 항목을 적용해 삭제했다.

▲ 박형준 부산시장의 후보 시절 선거운동 모습. ⓒ연합뉴스
▲ 박형준 부산시장의 후보 시절 선거운동 모습.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박형준 후보에 대한 게시글 삭제가 많은 이유로 “후보자가 요청한 것은 없고 모두 자체 모니터를 통해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다른 후보보다 사생활 문제가 더 이슈가 돼 관련 댓글 등이 많았다. 관련 판례 등을 살펴보고 신중하게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2008년 총선 당시 박형준 후보의 상대 후보 측 선거운동원이 박 후보의 불륜 의혹을 제기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다. 

▲ 선관위의 게시글 삭제는 과거에도 논란이 됐다. 해당 게시글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선관위가 허위사실 공표를 이유로 삭제한 글. 뉴스타파 보도는 '딸 합격 후 해당 전형 합격자가 없었다'는 내용인데, 누리꾼은 '딸 합격 후 해당 전형이 사라졌다'고 일부 내용을 잘못 전달했다. 보도 전반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엽적인 착오임에도 선관위는 게시글을 삭제했다.
▲ 선관위의 게시글 삭제는 과거에도 논란이 됐다. 해당 게시글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선관위가 허위사실 공표를 이유로 삭제한 글. 뉴스타파 보도는 '딸 합격 후 해당 전형 합격자가 없었다'는 내용인데, 누리꾼은 '딸 합격 후 해당 전형이 사라졌다'고 일부 내용을 잘못 전달했다. 보도 전반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엽적인 착오임에도 선관위는 게시글을 삭제했다.
▲ 선관위의 게시글 삭제는 과거에도 논란이 됐다. 해당 게시글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선관위가 허위사실 공표를 이유로 삭제한 글. 누리꾼의 '의혹 제기'로 허위사실로 단정하기 어려움에도 삭제 조치했다.
▲ 선관위의 게시글 삭제는 과거에도 논란이 됐다. 해당 게시글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선관위가 허위사실 공표를 이유로 삭제한 글. 누리꾼의 '의혹 제기'로 허위사실로 단정하기 어려움에도 삭제 조치했다.

여론조사 항목 삭제 논란 소지, ‘선거 음모론’도 대거 삭제

후보자나 정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삭제된 게시글 가운데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우선 ‘여론조사 공표’ 관련 항목은 과도한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선관위가 재보궐 선거 기간 동안 삭제한 관련 게시글 1611건 중에는 ‘허경영 여론조사 1위’처럼 사실과 다른 여론조사를 날조하거나 미등록 여론조사를 공표해 삭제한 사례가 많지만, 일반 이용자가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를 인용하면서 공표 항목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다고 삭제한 경우도 있었다. 

여론조사 관련 항목을 적용한 삭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이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총선 기간 한 누리꾼은 언론사 기사에 등장한 여론조사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가 게시글이 삭제됐다. 이 누리꾼이 캡처한 부분에는 여론조사 공표 사항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 선관위가 '선거의 자유 방해' 명목으로 삭제한 게시글 제목.
▲ 선관위가 '선거의 자유 방해' 명목으로 삭제한 게시글 제목.

선관위는 ‘선거의 자유 방해’ 항목으로 239건의 게시글을 삭제했다. 이 항목을 통해 “이번 4월7일 재보선도 여권이 선거 조작한다” “전자개표기와 사전선거 투표용지 바꿔치기” 등 투표 및 개표 부정 음모론 글에 대한 삭제가 이뤄졌다. 이 역시 일종의 ‘가짜뉴스 대응’인 셈이다.

선관위 ‘임의 삭제’ 적절한지 따질 수 있어야

선관위가 신중하게 적용한다 해도 완벽하게 허위사실을 가려내기 쉽지 않고, 비방과 모욕 비하 등은 기준이 모호하다. 더구나 선관위 차원에서 별도로 구체적인 사안별 조치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에 부적절한 삭제가 이뤄진다 해도 견제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 선관위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답변한 내역. 해당 게시글 삭제에 대한 이의제기는 없었다.
▲ 선관위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답변한 내역. 해당 게시글 삭제에 대한 이의제기는 없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선거법 자체가 허위사실 공표뿐 아니라 후보자에 대한 비방, 나아가 후보자 관련 집단에 대한 비방까지 지나치게 과도하고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게시글 삭제 제도는 법에 명백히 위반되는지 사법부의 판단도 받기 전에 행정청인 선관위가 일방적으로 표현물을 금지·차단하는 권한을 갖게 하고 있다. 검증과 토론, 지지, 반대 의견 등의 교환이 자유롭고 폭넓게 이뤄져야 하는 선거 기간에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 때는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표현의자유특위 위원장)이 후보자비방죄를 폐지하고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 명령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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