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계기로 ‘기자 질문력’이 또 화제다.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한국 남성 기자와 미국 여성 기자 2명이 질문한 후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 없나요?”라고 물었고 정적이 흘렀다. 대통령이 한 번 더 물었고 또 정적이 흐른 후 코리아헤럴드 여성 기자가 백신 관련 질문을 했다. 문 대통령이 ‘여성 기자’에게 질문하라고 지목한 것이 돌발 상황이란 것을 감안해도 ‘기자들이 질문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관련 기사: 文대통령 ‘여성 기자’ 발언 어떻게 봐야 하나]

이 비판은 2010년 G20 정상회담 때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개최국인 한국에게 감사를 표하며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하라고 했을 때 정적이 흐른 장면과 비교됐다. G20 정상회담과 이번 회담에서 질문 없는 기자들의 장면이 나란히 배치되고, 반대로 조국 전 장관 집 앞 자장면 배달원에게 ‘어떤 음식 먹었냐’는 질문을 하던 기자들 모습을 대비시킨 그림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비판이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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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당시와 이번 한미정상회담 당시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못한 것과 조국 전 장관 집 앞 자장면 배달원에게 질문한 기자들을 함께 배치한 그림. @카툰라이트 이정헌 작가.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논란과 관련해 “기자들은 독자들에게 사안의 본질을 바로 이해시킬 수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기자들도 사안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며 “기자들은 스스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질문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다수 수준이 낮거나 불필요하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질문을 하며 오히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썼다.

이어 “기자들은 국민 대다수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에만 관심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며 “국민의 관심을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정보에만 묶어두는 것이 바로 기자들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무식하고 나태해도 ‘엘리트’ 행세할 수 있는 상황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BS 다큐멘터리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5부. 지난 2010년 9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폐막 연설 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장면이다.

이처럼 대형 이벤트가 끝나면 꼭 한번 화제가 되는 것이 ‘기자 질문력’이다. 한미정상회담,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대통령 인터뷰, 정치인에 대한 고발 현장 등 생중계되는 미디어 대형 이벤트가 끝나면 어김없이 나오는 화두다. 기자들이 공개 석상에서 질문하고, 이 과정에서 비판을 받는 것은 기자의 일상이 됐다.

기자 초년생뿐 아니라 베테랑 기자라고 하더라도 거센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제1야당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가 주도해서 여당이 끌어가고, 야당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독재자,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2019년 5월9일 KBS 문 대통령 취임 2년 특집 대담 당시 송현정 KBS 기자가 물었고 이후 비판을 받았다. 송 기자는 현재 KBS 정치부장을 맡고 있으며 당시에도 연차가 높은 기자였어도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관련 기사: 대통령 인터뷰 이후, 왜 대담자에 분노하나]

“한미정상회담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된 인원이 풀단 구성…특수한 상황”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이 질문을 못한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해 ‘풀 기자’가 최소한으로 들어갔고, 그로 인해 실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던 특수상황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외교 사안을 전문으로 취재하는 한 기자는 “이번 ‘여성 기자’ 질문 사건으로 많이들 11년 전 G20 오바마 대통령에 질문을 못했던 한국 기자 사건과 비교하는데, 이번에는 질문을 한국어로 할 수 있었고 통역이 제공되는 등 다른 환경이기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며 “당시 취재 상황은 코로나19로 적은 수의 기자로 풀단을 구성해야 돼서 현장 기자들이 현장 스케치나 워딩을 하기에 매우 바빴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열리는 청와대 기자회견을 보고 있으면 질문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질문 시간이 부족하다”며 “기자들이 사안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질문이 없는 게 아니라 이번 상황이 특수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아울러 11년 전 오바마 대통령 질문 사건은 당시 영어로 질문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고 하지만, 현재는 젊은 기자들이 많이 수혈됐고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기자들이 많다. 취재 환경이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며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앞다퉈 영어로 서로 질문하려고 했다. 질문력과 함께 영어 실력도 뛰어난 기자들이 많았다”고 현장을 전했다.

다만 이 기자는 “한국에서의 취재 환경에서 기자들이 제한된 시간에 정확하고 냉철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며 “다양하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언론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질문 안 하는 기자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한미정상회담 당시 모습.
▲한미정상회담 당시 모습.

"차라리 따로 질문해 단독 기사 쓰는 게 낫다"

어쩌면 기자들은 자신의 질문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에 생각나는 질문을 바로 던지기 보다 ‘비판을 받지 않을’ 무난한 질문을 택하기도 한다.

김동환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 기자회견은 각각의 기자들에게 질문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최소 1주일 이상 주어진다. 반면 해외 정상과의 회담 후 바로 이어지는 기자회견에는 길면 1시간 정도 질문을 준비할 수 있다”며 “아주 뛰어난 기자가 아니면 좋은 질문을 하면서 기사까지 제시간에 쓰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평이한 질문을 하거나, 남이 하는 질문을 내 기사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기자의 기본 롤은 기사를 쓰는 것이니까”라고 썼다.

김 기자는 오히려 실무적으로 날카로운 질문이라면 공개석상에서 하는 것이 기사 쓰는데 불리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 기자는 “기자들이 공개적으로 질문을 잘 안하는 이유는 실무적인 입장에서, 나의 필살기를 모두 앞에서 구두로 노출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며 “누가 들어도 사안의 핵심을 짚는 통찰 넘치는 질문이라면 따로 조용히 물어보고 단독 기사를 쓰는 편이 현명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주요 종합 일간지 가운데 사수로부터 ‘다 같이 있는 곳에서 질문하지 마라’고 배우는 문화도 존재한다. 특히 정치부에서 매일 벌어지는 당 회의나 백브리핑 등 기자들이 많은 곳에서 질문을 하면 그 답이 모두에게 공개되고 질문에 대한 답도 우르르 기사로 나오게 된다. 이로 인해 기자들이 많은 곳에서 질문하는 게 아니라 공개현장이 끝난 후 따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단독’ 기사를 쓰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주요 현장에서 기자가 질문 않는 것은 직무유기”

이러한 ‘질문력 논란’은 ‘한국 기자’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을 차지했을 때 한 외신기자는 “왜 한국어로 영화를 만들었느냐”고 황당한 질문을 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에게 “브래드 피트의 냄새가 어땠으냐”고 질문한 기자도 있었다. 질문의 의도가 ‘브래트 피트를 만나 어땠느냐’라는 것이라 해도 무례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관련 기사: 아카데미 역사 새로 쓴 봉준호가 받은 황당 질문들 ]
[관련 기사: 윤여정 오스카 수상 후 백스테이지에서 나온 황당 질문 논란 ]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마지막 질문권을 얻은 폭스뉴스의 기자가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확인비행현상(UAP, 미군이 UFO 대신 쓰는 용어) 영상과 기록이 있는데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입장은?”이라고 물어봐 농담이라 할지라도 황당하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언론과 외신을 모두 경험한 전직 외신 기자는 “한국 언론은 외신에 환상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주장에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는 외신을 선택해 이용한다”며 “서구 언론도 옐로우 저널리즘을 하는 타블로이드 언론이 많다. 물론 전통 있는 언론들에서는 수준 높은 질문을 하지만 외신이라고 다 뛰어난 것은 아니며, 한국 언론이든 외신이든 비판을 받는 기자가 있는 것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특히 가벼운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이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것은 한국이든 외신이든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9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폐막 연설 직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장면이다.
▲2020년 2월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을 차지한 가운데, 봉 감독이 외신 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외신 기자들의 질문 중에는 "왜 영화를 한국어로 만들었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는 “물론 외신이든 한국 언론이든 질문 내용으로 비판을 받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라며 “다만 외국 기자들의 경우 아주 날카로운 질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질문을 편안하게 계속해서 물어보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그러나 기자가 중요한 취재 현장에서 속보를 치거나 풀 워딩을 치느라 정신이 없다고 질문을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중요한 현장에 질문을 여러 개 준비해가는 것은 기본이고 질문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던져야 한다. 바보 같은 질문을 해 기자가 비판받더라도 그 질문으로 인해 주요 인사에게 재미있는 답을 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본질인 직업인데 질문을 준비하지 않거나 기자회견 때 질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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