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중에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 국내 4대그룹 대표가 동행해 미국 현지에 44조원 어치의 공장 설비 투자로 백신의 성과를 얻었으니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대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해줘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이 나온다.

오히려 국민의힘과 보수 매체는 ‘기업이 44조나 투자해줬는데 우리가 얻은 백신성과가 미흡하다’고 비난했다. 이 주장의 맥락엔 마치 기업의 해외투자가 우리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시민사회에서는 해외 투자가 이재용 부회장 사면으로 이어질 경우 또다른 형태의 국정농단 사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신공급-반도체공장 투자 44조가 한미정상회담의 거래였나’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한미정상회담 성과를 홍보하자 야당과 보수언론은 삼성 등 4대 그룹이 44조원 투자 계획 발표로 지원했는데도 백신성과는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우리 기업들이 44조 원 대미직접 계획 발표했지만 손잡히는 결과 없었다는점에서 백신은 언제 이행될지 모르는 약속 어음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김미애 의원도 “44조원 대규모 투자에 비하면 기대했던 mRNA 기술이전 합의가 되지 않았고, 화이자 조기 공급이나 모더나 얀센 등 2분기 도입을 위한 협상 없었던 점은 아쉽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24일자 사설에서 “삼성 등 4대 그룹도 총 44조원어치의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대통령의 백신 외교를 측면 지원했다”며 “그런데 문 대통령은 겨우 백신 55만명분을 받고 ‘생큐’를 연발하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나”고 비난했다.

이 같은 주장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외교를 돕기 위해 4대 재벌이 손해를 보거나 적어도 투자이익이 별로 없는데 거액의 투자를 했다는 논리가 전제돼 있다. 김현정 CBS PD조차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이 같은 논리의 질문을 던졌다. 김 PD는 “우리가 미국에 준 건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44조원 투자계약으로 똑 떨어지는데 우리가 얻은 백신 협력이나 북한 관련 부분들은 좀 당장 손에 잡히는 게 아니고 향후를 기약해야 하는 추상적인 내용들이니 ‘우리가 밑지는 장사한 거 아니야’라는 얘기도 있다”고 질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22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22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 때 삼성, 현대차, SK, LG 기업인들을 깜짝 초대해 일으켜 세우고, 호명한 뒤 ‘땡큐’를 연발한 점을 들어 “우리 기업은 미래기술력에 대해서 미국이 인정하고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며 이밖에도 △최고기술이 있는 세계 시장 선점 △많은 중소기업도 동반 진출 효과 및 국내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의 이익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우리 기업 투자는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박상인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정책 전공)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마치 이번 회담을 재벌의 투자와 백신 확보라는 ‘기브 앤 테이크’ 구도를 짰거나 적어도 국민이 그렇게 인식하게 만든 청와대와 정부 책임도 있다”며 “미국 스스로 그런 거래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짜기 위해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을 압박해 정상회담과 무관하게 그런 압박 탓에 해당 기업들은 투자는 불가피했을 것”이라며 “단지 한미정상회담에서 투자를 같이 얘기함으로써 정부의 면을 세워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그는 “다만 기업들이 그렇게 해주면 추후 정부로부터 편익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같이 따라 가서 한미 정상과 이벤트를 연출한 것아니냐는 의심은 들지만, 이것을 백신과 연계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가 급증 하는 다른 국가들도 많은데, 우리에만 백신을 특별히 더 공급하기는 쉽지 않은 탓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19조 미국 투자발표로 백신 성과, 이재용 사면으로 보답하라?
“이렇게 사면하는건 또다른 박근혜식 국정농단의 재판”

무엇보다 한미정상회담 때 재벌 기업 총수 등이 동행해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 이를 근거로 정부에 어떤 특혜나 대가를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일부 매체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미국 투자 발표로 백신 공동생산과 같은 성과를 얻었으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으로 화답하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25일자 5면 톱 ‘‘동맹 회복’ 다리 놓은 재계…이제는 정부가 화답할 때’에서 “4대 그룹이 꺼낸 총 44조원의 투자 선물이 한미 정상회담의 백미로 꼽힌 가운데 기업의 대내외 투자 활력을 되살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국내외 경제계에선 한미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썼다.

스카이데일리라는 매체는 24일 ‘文 백신외교 결과는 삼성의 성과다’라는 글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총 170억달러(한화 약 19조원)를 투자가 4대그룹 투자액의 절반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 정부는 이번 백신 파트너십 구축을 정부와 정부가 아닌 정부와 기업의 파트너십 구축임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아닌 삼성과의 동행을 기정사실화했다”며 “삼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미국 정부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가히 업적”이라고 썼다. 이 매체는 “삼성이 백신 협력이라는 성과를 낸 이상 정부 역시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 한다”며 “성과에 대한 보답과 약속 이행을 위한 지원의 시작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방미중 백신기업 대표들과 파트너십 행사에 참석해 업체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방미중 백신기업 대표들과 파트너십 행사에서 참석자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에 박상인 교수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정경유착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주장”이라며 “이들 주장대로면 이재용 사면이라는 이재용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삼성전자라는 법인이 희생하게 했다는 것이고, 이는 전형적인 배임”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재용이 사면돼야 반도체 전쟁 과정에서 역할을 하고, 백신에서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재계와 보수언론의 주장이었지만, 이재용 사면과 무관하게 반도체 투자 결정과 백신 공동생산 양해각서 체결 등이 이뤄졌다면서 “반도체 역할론, 백신 역할론 모두 사면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그랬더니 이젠 사면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언론에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라며 “국익과 삼성의 이익 보다 이재용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성과 과시를 위해 사면이 이어진다면 법치의 틀을 깨는 국정농단에 다름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무리한 투자로 대통령의 면을 세워준 대가로 이재용의 사면을 주장하는 논리에 문 대통령이 유혹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25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번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을 하고 정부와 함께 같이 손잡고 이런 저런 대미 외교를 해 냈으니 재계가 요청해온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사면도 일각에서 나온다’는 질의에 “경제계나 종교계, 외국인 투자기업으로부터 그런 건의서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어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그 국민적인 정서라든지 공감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별도 고려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실장은 “제가 사면 문제를 이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 전망을 가지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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