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의 본질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다. 문재인 정부는 이 부분에 있어서 단 한 발자국의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다. 약속을 지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130여곳의 언론·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언론개혁 촉구 시민사회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의 언론개혁 입법을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4단체는 △지속 가능한 지역 언론 지원 제도 수립 △실효성 있는 언론 피해보상 법안 제정 △신문의 편집권 독립 보장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언론개혁 4대 입법을 공동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날 비상시국선언 참여단체 일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조차 집권 이후 정치가 장악한 공영언론의 사장과 이사 선임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6월 국회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정권이 언론개혁 약속을 이행할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오는 8월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9월은 KBS와 EBS 이사진 교체 국면이어서 늦어도 6월에는 입법이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 

앞서 언론노조·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4~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KBS·MBC·EBS 사장 선출 시 시민평가단의 참여에 대해 응답자의 89.5%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0.2%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 시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것에도 ‘찬성한다’고 답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공영방송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실제 현실이 되었다”며 “아예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안을 입법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30여곳의 언론·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언론개혁 촉구 시민사회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철운 기자
▲130여곳의 언론·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언론개혁 촉구 시민사회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철운 기자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날 발언에서 “더불어민주당 모든 지도부가 언론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본질이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은평구 풀뿌리 신문이 어제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지역 언론에 대해 민주당 자치단체장이 온갖 언론탄압을 일삼고 있어서다”라고 운을 띄운 뒤 “4년 전 약속이 지켜지는지, 기만당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 위원장은 정부 여당의 언론개혁 주장을 가리켜 “(과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말하는 건지, 말 안 듣는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건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저널리즘 작동할 수 있게 해야”

이날 시국선언 참여단체 일동은 “무고한 시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는 언론에 대한 징벌은 수십 배 배상도 마땅하지만 배상의 권리가 오직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갈 수는 없다”며 “정부 여당은 언론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한 배상 법률을 만들라”고 요구했으며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당시 개악된 신문법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언론 정상화 조치”를 요구하며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신문법 개정과 지역 언론을 살릴 공적 재원 마련도 요구했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지금 방송법은 많은 사람이 방송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던 2000년에 만들어졌다. 그 이후 어마어마하게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고, 지금 사람들은 스마트폰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이 안에는 어떤 저널리즘이 작동하고 있나”라고 되물으며 “지금 당장 (입법변화를) 시작해도 이미 늦었다. 직무유기에 가까운 정도다. 단순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돈 많이 버는 한류 콘텐츠에만 (정부가) 신경 쓸 게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저널리즘이 작동할 수 있게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성재호 회장은 “과거 언론노조와 문재인 대선 후보가 만난 자리에서 (문 후보가) 줄탁동시(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팎에서 새끼와 어미 닭이 동시에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안과 밖이 시기를 맞춰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는 뜻)라는 표현을 썼다”며 “지금 상황은 내부 언론인들만의 노력으로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법·제도로 바꿔야 할 일이 많다”며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이날 정치권을 향해 “여야는 무슨 자격으로 공영언론의 후견인 노릇을 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뒤 “국민을 병들게 하고 언론을 황폐화시키는 기득권 언론의 극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 적폐를 정리하지 못하고 정권이 출범할 때 약속했던 바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현 정권에 대해 유감”이라며 ‘거침없는’ 개혁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논의할 ‘방송TF’에 합의해 지난 13일 TF 의결을 예고했으나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회의 불참으로 의결이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미디어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해 특위가 언론계의 ‘언론개혁’ 요구에 어떻게 반응해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 구성될 KBS·방문진·EBS 이사회의 임기가 3년이고 ‘180석’ 또한 향후 3년간은 유지할 수 있어서 내년에 설령 정권이 교체되면 그때 지배구조를 바꿔도 늦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공영방송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굉장히 나이브한 판단이다. 정권이 바뀌면 곧바로 민주당 추천 이사들의 ‘알박기’부터 정권 차원에서 솎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정권을 넘겨준 다음 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민주당은 ‘내로남불’ 비판을 감수해야 하며, 정략적 판단에 따른 입법이라는 비판과 함께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한국기자협회는 21일 성명에서 “야당 시절에는 언론개혁을 목청 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정권만 교체되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언론개혁에 대한 공약은 정권 교체의 밀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민의힘도 언론개혁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공영방송의 사장과 이사 선임 방식의 논의를 위한 방송 TF 구성에 나서고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제출도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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