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먼 특사, ‘북한 금창리 지하시설 핵 관련 증거있다”(동아일보, 1998년 11월19일).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 북한 핵 개발 증거있다고 밝혀”(KBS, 1998년 11월 19일).

이 두 기사는 모두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정리됐지만 제대로 된 정정 보도는 없었다. 사흘 뒤인 11월22일, 카트먼 특사가 “이 지하시설이 핵관련 용도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핵시설인지에 관한 확증은 없다”고 밝히면서 ‘치고 빠지기’로 끝났다. 11월24일에는 한국일보는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카트먼 특사의 발언은 최근 들어 부쩍 대북 강경기조를 보이고 있는 미 의회를 의식한 미국 ‘국내용’”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은 정정 보도를 요구하지 않은 편리한 취재원이다. 북한 관련 오보는 셀 수 없이 많았고 여전히 많다. 북한이 위조 지폐를 뿌리고 있다는 2006년 보도, 리설주가 처형됐다는 2013년 보도, 김정은이 뇌사 상태라는 2020년 보도 등등. 주요 인사들의 망명설과 처형설, 건강 이상설은 해묵은 레퍼토리면서 일상적인 오보의 소재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정정도 해명도 찾아보기 어렵다.

21일 저널리즘학연구소 주최로 제주도 4·3평화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 보도에서 익명 취재원의 비율은 37%, 이 가운데 “익명의 정부 소식통”이 66%에 육박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실명 취재원 가운데서도 미국 정부 관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 북한 관련 오보의 주제별 익명 취재원 비율.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북한 관련 오보의 주제별 익명 취재원 비율.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북한 관련 오보의 정권별 취재원 분포.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북한 관련 오보의 언론사별 취재원 분포.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대북 제재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김 교수는 “북한 관련 오보가 단순한 실수가 아닌 체계적인 개입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북한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 정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보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 “언론은 단순 의혹이면 의혹이라는 것을 밝히고, 최초 정보원이 누구인가도 밝히는 방식을 택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해 교수 연구팀이 북한 관련 오보의 정보원 분포를 집계한 결과 정부 관계자가 24.8%를 차지했고 국가정보원이 17.2%를 차지했다. 미국 언론과 일본 언론이 각각 15.4%와 7.8%를 차지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중국 언론과 러시아 언론을 인용한 보도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 북한 관련 오보의 정보원 분포.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북한 관련 오보의 정보원 분포.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오보가 크게 늘어난 것도 눈길을 끈다. 6개 일간신문을 대상으로 1993년 3월부터 2021년 4월까지 28년 동안 연구팀이 집계한 오보는 모두 666건, 이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189건, 문재인 정부에서 201건의 오보가 발생했다. 연구팀은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발 처형설과 망명설 등이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오보를 주제별로 분류한 결과 인권 탄압과 북한의 체제 불안, 불량 국가 관련 오보가 68%를 차지했다. 연구팀은 “미국의 개입을 추정할 수 있는 인권 탄압 관련 오보가 노무현 정부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저널리즘학연구소 세미나.
▲ 북한 관련 오보의 주제별 분포.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 교수는 “북한 오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체계적인 개입의 결과일 수 있다”면서 “북한을 악마화하겠다는 지향점이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오보에 개입하는 주요 세력이 미국 정부와 네오콘이라는 분석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김 교수는 “탈북자와 정치범 수용소 등에 대한 오보가 쏟아진 게 하필이면 미국의 의회와 정부에서 북한 인권을 공격할 때와 일치한다”면서 “북미 대화를 비롯해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공론장이 반공 복합체 또는 냉전 복합체로 불릴 수 있는 집단의 심리전 무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2019년 5월 김혁철 처형설의 경우 익명의 정보원이 VOA와 RFA를 거쳐 조선일보로 전달되고, 이 뉴스가 다시 보수언론을 타고 확산됐다.

▲ 저널리즘학연구소 세미나.
▲ 북한 관련 오보의 정권별 주요 이슈.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연구팀은 북한 관련 오보가 쏟아지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고 북한이 항의해도 주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모른 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틀렸다는 게 밝혀져도 사과를 하거나 정정을 하지 않는다. 둘째,  명백한 오보라도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북한에 대한 오보는 용서되지만, 진실을 밝혀 행여 북한을 이롭게 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셋째, 정보가 통제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핑계도 가능하다. 북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국가정보원과 탈북자 등이 전부다. 정보의 정확성이 낮고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넷째,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상대라서 설령 오보가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의혹을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많다.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돌발 사태를 맞닥뜨리기 보다는 과장되거나 틀린 정보라 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 저널리즘학연구소 세미나.
▲ 북한 관련 보도의 주요 실명 취재원.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 교수는 “미국에 대한 정보 의존성이 심각한 상황에서 한국 언론은 싫든 좋든 미국 정부와 언론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진보 진영에 속하는 언론이 머뭇거리면서 북한 오보를 전달하는 것과 달리 보수언론은 이를 적극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차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보수 언론의 반복되는 의도된 오보에 대해 “북한을 악마로 만들수만 있다면 저널리즘의 원칙 정도는 얼마든지 버려도 좋다는 자세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 21일 저널리즘학연구소 주최로 제주도 4·3평화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대북 제재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세미나.
▲ 21일 저널리즘학연구소 주최로 제주도 4·3평화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대북 제재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세미나.

 

최종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18년 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주요 언론의 대북 제재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할 때까지 ~할 수 없다”는 논조의 보도가 많은 반면 한겨레는 “~한다면 ~할 수 있다”는 논조의 보도가 많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조선일보가 “구체적 비핵화 조치가 나올 때까지 미국은 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4월18일)이라고 보도한 반면 한겨레가 “우리가 비핵화를 얻으면 제재 완화 이상이 있을 것”(5월15일)이라고 보도한 것도 비교된다.

최 교수는 “대북 제재 이슈는 고도의 전문성과 국제정치적 분석이 필요한 사안인데도 전체 기사의 절반 이상을 단순 사실을 전하거나 정치적 공방을 인용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로 채웠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언론의 주체적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한국 언론은 대북 제재 그 자체에 머물러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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