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디마는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의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섰다. 공책 한 장을 찢어 그린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서다. 빈 공간엔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해방을) 구호를 썼다. 언니와 나란히 국기 그림을 들고 선 디마는 “친구들이 죽고, 죽어가고 있어요” “침략은 불공평해요”라고 말했다. 디마는 요르단 출신의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이날 디마의 네 자매는 모두 대사관 앞에 나왔다. 19일 오후 2시 예정된 평화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부처님 오신 날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자’고 누군가 꺼낸 제안이 교민 사회, 페이스북 등 SNS에 널리 퍼지며 참가자 60여명이 모였다. 한국, 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시리아, 요르단,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등 국적을 불문하고 모였다.

아빠를 따라나온 7살 미리암도 직접 쓴 피켓을 들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영어로 썼다. 미리암도 팔레스타인인이다. 미리암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인을 죽이지 마세요. 제발 멈춰주세요” “이스라엘은 사람들의 집과 땅과 삶을 다 빼앗고,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지난 19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 1인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 디마(왼쪽). 사진=손가영 기자
▲ 지난 19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 1인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 디마(왼쪽). 사진=손가영 기자
▲ 19일 열린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 규탄 1인 시위 참가자들은 시위를 마치며 청계광장을 짧게 행진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피켓을 들고 함께 걸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19일 열린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 규탄 1인 시위 참가자들은 시위를 마치며 청계광장을 짧게 행진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피켓을 들고 함께 걸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사망한 아동은 19일까지 확인된 수만 64명이다. 전체 사망 확인자 227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여성 38명, 노인 17명 등도 사망했다. 부상자는 1620명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1일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하고 있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선 1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급격히 늘어나는 사상자에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19일 국제사회에 의료지원까지 호소했다. 가자지구의 핵심 보건·병원시설이 공습으로 파괴됐고 의료진 사망, 부상도 늘고 있다. 보건부에 따르면 파괴된 도로 때문에 골든 타임을 놓치는 피해자도 속출한다. 이스라엘군이 인구밀집도가 높은 주거지를 표적 공습하면서 5만여명이 임시보호소로 갔다. 과밀된 보호소는 그대로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놓였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나왔습니다.” 40대 한국인 주아무개씨는 아무 연고 없이 시위 소식만 듣고 나왔다며 “자식을 둔 엄마로 팔레스타인 부모들의 심정을 가늠하기 어렵다. 가자지구는 수십 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봉쇄로 이미 감옥과 같다. 이들을 테러집단으로 몰며 공습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과 언론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 도로에 10m 이상 간격으로 피켓을 들고 섰다. 대학생 허아무개씨(22)는 모잠비크, 시리아 유학생 친구와 함께 나왔다. 세 명 모두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특히 시리아 출신 A씨는 “인종청소”라는 피켓을 들었다. “언론엔 역사와 맥락이 다 삭제돼있다. 이 사태는 충돌, 분쟁이 아니라 학살, 인종청소이고, 전쟁이 아니라 침략, 군사 점령, 공습이다”라고 말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언론 보도를 불신했다. 70여년 이어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역사를 보지 않고 당장의 군사적 충돌만 부각하는 보도가 지배적이란 비판이다. 이번 시위를 처음 제안한 팔레스타인인 키리아씨(27)는 충돌, 분쟁 등의 단어는 두 국가의 권력을 대등하게 만드는 왜곡이라고도 강조했다. 주요 주류 외신과 한국 언론보다 팔레스타인 현지 작가·기자가 올리는 트위터를 보고 있다는 참가자들이 적지 않았다. 

▲ 19일 참가자들이 피켓을 든 모습 모음. 사진=손가영 기자
▲ 19일 참가자들이 피켓을 든 모습 모음. 사진=손가영 기자

 

언론에 당부 “분쟁 아닌 식민 통치 정부-식민지 민중의 관계”

키리아씨는 “이-팔 관계는 분쟁 관계가 아니라 식민통치정부와 식민지 민중,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다. 또한 지금 공습은 학살에 가까운 반인권적 범죄이자 전쟁범죄다. 전쟁범죄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언론 탄압에 대해서도 “(팔레스타인 취재) 기자도 총에 맞았고, 보도를 막으려고 가자지구의 언론사들 입주 건물까지 폭격했으며,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는 인권운동가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정지·삭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전쟁 범죄 논란은 수십년 쌓인 문제다. 196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정착촌 확장은 갈등의 가장 큰 씨앗이다. 이번 군사적 충돌도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셰이크 자라’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퇴거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추방 대상인 40여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1956년에 이 지역에 정착해 토지 계약도 체결했다. 그런데 이후 1967년 동예루살렘 등이 이스라엘에 점령되면서, 이스라엘은 이 계약이 취소됐으며 이들이 재산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셰이크 자라 주민들이 강제 퇴거 위기에 처하자 분노가 높아지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이 끝나는 지난 8일 알-아크사 사원에 모인 순례자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이스라엘 경찰은 즉각 8일부터 사원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고무 탄환, 금속 탄환, 최루탄, 연막탄 등이 무차별적으로 발사돼 최소 90명이 부상을 입었다. 

▲ 19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한 팔레스타인 시민. 사진=손가영 기자
▲ 19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한 팔레스타인 시민. 사진=손가영 기자
▲ 19일 오전 11시 기준 팔레스타인 사상자 통계. 사진=팔레스타인 보건부
▲ 19일 오전 11시 기준 팔레스타인 사상자 통계. 사진=팔레스타인 보건부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정부의 묵인과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정착촌을 만들고 있다. 2016년 UN안전보장이사회가 불법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결의까지 했으나 변화는 없다. 2019년 1월 기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내 유대인 정착민 수는 62만명으로 집계된다. 서안지구 내에서만 7000개 넘는 건물이 철거되거나 파괴됐고 1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18년 팔레스타인 영토 내 전쟁범죄 관련 예비조사 보고서에서 강제 재산 몰수, 강제 추방, 인종차별 범죄 등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밖에 2014년 7~8월 이스라엘이 51일 간 가자 지구를 미사일 등으로 맹폭한 사태도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요원 등을 소탕하기 위한 군사 작전이라고 밝혔으나 정확한 증거 없이 민간시설을 폭격했고 하마스 요원이 사는 집이란 이유만으로 가정집을 폭격하는 등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2018년 가자국경에서 난민들이 귀환한 행진 시위가 열린 때,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을 무차별 사격해 4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200명이 사망했다. 기자, 의료진도 포함됐다. 

팔레스타인 출신 유학생 아람(25)씨는 “한국 사회도 식민 통치 피지배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 더 우리 심경을 잘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의 겪었던 악몽은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현재”라며 한국 사회 관심을 촉구했다. 

대학생 송아무개씨(23)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2개월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충돌이 시작됐던) 알-아크사 사원은 팔레스타인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3대 성지 중 하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종교적 규율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이스라엘 군경이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진압해 들어왔다”며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알-아크사 사원의 경찰 병력 철수를 요구하다 묵살되자 10일 로켓포를 쐈고, 이스라엘이 즉각 공습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송씨는 “사태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 가자 지구는 봉쇄정책으로 물자 수급조차 힘든 감옥같은 곳이고 주민들은 평생을 불안하게 산다”며 “팔레스타인은 언론이 필요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잘 전달해야 하는 문제다. ‘하마스가 먼저’, ‘충돌·분쟁’ 등의 수식어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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