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7년, 한국 언론이 ‘남긴 것’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7년, 한국 언론이 ‘남긴 것’
소소한 ‘존댓말’ 기사부터 영상·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실험, “조직 문화 여전해” 지적도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표지.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표지.

2014년 5월,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유출되며 한국 언론에 ‘혁신’이란 화두를 던졌다. 이후 언론사에선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가 난무했다. 이때부터 주요 언론사 사장 신년사에 ‘디지털’과 ‘혁신’이 등장했고 언론사들은 ‘혁신 보고서’를 마련했다. 

지난 7년 동안 한국 언론의 실험은 무엇을 남겼을까. 유의미한 실험이 성공을 거두거나 안착한 경우도 있고 선언에 그치거나 일회성으로 끝나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여전히 ‘조직’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거론된다. 지난 7년 간 이뤄진 다양한 실험을 돌아봤다.

* 기사 속 언급된 언론 브랜드, 콘텐츠 이름을 클릭하면 해당 브랜드, 콘텐츠로 연결됩니다. (미디어오늘 홈페이지 기준)

스낵컬쳐와 뉴스와 만남

미디어오늘이 2021년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들에게 ‘뉴스’를 소재로 마인드맵을 그리게 하고 분석했더니 언론사 뉴미디어 브랜드 가운데 ‘스브스뉴스’를 언급한 학생들이 있었다. 기성언론의 뉴스를 잘 챙겨보지 않는 초등학생들이 ‘스브스뉴스’라는 브랜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경우였다.

카드뉴스 형태의 가벼운 콘텐츠를 내세운 피키캐스트가 붐을 일으키면서 언론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많았다. 이 가운데 스브스뉴스는 가장 성공한 브랜드로 꼽힌다.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조정하고, 이용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상으로 포맷을 바꿔 급변하는 플랫폼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도 했다. 지난해 스브스뉴스와 비디오머그는 SBS 자회사로 분사하며 지속가능성을 증명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스브스뉴스와 비디오머그는 좀 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췄고, 오리지널 방송의 소셜 채널보다 영향력이 커졌다. 이후 수 많은 아류모델이 나오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 SBS 디지털뉴스랩 스브스뉴스 사무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SBS 디지털뉴스랩 스브스뉴스 사무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라이브’ 통한 뉴스의 확장

디지털 혁신이 정작 뉴스 ‘본판’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시절 등장한 ‘소셜라이브’는 방송 뉴스와 연계되는 뉴미디어 뉴스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인 뉴스가 끝나자마자 온라인을 통해 뉴스 뒷얘기를 하는 소셜라이브 코너는 기자들이 시간 제약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데다 댓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와 관련 손석희 전 JTBC 보도담당 사장은 2017년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변화는 디지털과 취재부서가 한 몸으로 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디지털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디어였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현장감을 살리면서 뉴스에선 다루기 어려웠던 감성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2017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키노트 발표하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7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키노트 발표하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CBS ‘김현정의 뉴스쇼’도 프로그램과 연계한 라이브 성공 사례로 꼽힌다. 댓꿀쇼는 방송에 나오지 못한 뒷얘기를 다루고 청취자와 소통하는 콘셉트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채널 구독자만 38만 명에 달한다.

지역 언론에서는 ‘재난방송 라이브’가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지난해 9월 경상도에 연달아 태풍이 상륙해 피해가 이어졌으나 공영방송의 소극적인 재난방송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MBC는 두 차례 라이브를 통해 지역 독자들과 재난 상황을 공유하며 소통했고 각각 32만, 47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무서운데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많았다. 가경욱 부산MBC MCN스튜디오 담당 부장은 “혼자 밤을 지새면서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1인 가구가 많아진 건 알았지만 재난 상황에서 1인 가구가 느끼는 불안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데이터의 가치를 일깨우다

데이터 분석은 취재 과정에서 활용되는 정도였으나 KBS, SBS,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이 조직을 꾸리고 지속적으로 기사를 제작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이 활성화되면서 데이터 저널리즘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을 깨는 기사들도 등장했다. SBS ‘마부작침’은 방송 뉴스, 온라인 기사, 뉴스레터 등 전방위적으로 플랫폼을 확장하면서 저변을 넓혔고, ‘뉴스레터’를 통해 탐정 사무소 콘셉트로 친근하게 다가갔다.

중앙일보 ‘우리 동네 의회살림’은 자신이 속한 지역을 클릭했을 때 해당 지역 의원들이 주로 가는 식당, 조례 제정 내역, 활동비 사용 내역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독자들이 자신의 지역구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퍼 날랐고 이례적으로 관련 기사 종합 1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 기사는 2018년 한국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에서 64편의 응모작 가운데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데이터 저널리즘 기사인 중앙일보 '우리동네 의회살림'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인 한국일보 '쪽방촌' 2부작 기사.
▲ 데이터 저널리즘 기사인 중앙일보 '우리동네 의회살림'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인 한국일보 '쪽방촌' 2부작 기사.

탄탄한 취재,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 

2013년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사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한 분량을 글로 전달하지 않고 모션 그래픽을 가미해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 이후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최소 한번씩은 스노우폴류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를 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창기때는 비주얼에 포인트를 뒀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풍부한 취재를 최적화된 방식으로 녹여내는 식으로 변화한 점이 특징이다. 최락선 온라인편집기자협회장은 2019년 한국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한국일보 ‘쪽방촌 2부작’ 기사를 언급하며 “시각화로 놀라운 경험을 주는 것보다 탄탄한 취재를 디지털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점에 의미를 뒀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의 ‘증발’, 시사IN의 ‘빈집’ 등도 기술적인 구현보다는 풍부한 취재를 바탕으로 보조적으로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사례다.

경향신문이 제작한 ‘랭면의 취향’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못지 않게 지면을 ‘굿즈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온라인 기사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육수, 면발, 염도 등을 선택하면 취향에 맞는 평양냉면을 안내해주는 기사인데, 지면을 통해 평양냉면 도감 형식의 인포그래픽 기사를 선보여 이례적으로 지면이 SNS를 통해 회자됐다.

▲ 경향신문 '랭면의 취향'
▲ 경향신문 '랭면의 취향'

달라진 기사 문법

거창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아니더라도 세세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과거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서 시작된 기사 문법의 변화를 보면서 ‘한국은 시도를 할 수 있을까’하는 분위기였는데 조금씩 시도되고 있는 점들이 보였다”며 “전형적인 역삼각형 스트레이트 구조에서 탈피하려는 기사가 많았다. 이 외에도 경어체 기사가 늘었고, 독자를 고려해 중간 제목을 넣는 변화도 있다.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중앙일보 등은 기사의 ‘중간 제목’ 활용에 적극적이다. ‘중간 제목’을 통해 기사의 가독성을 높이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을 수 있다. 국제신문의 ‘뭐라노’는 ‘1. 부산시 최초로 2. 모항(출발지=도착지) 테마 크루즈선 유치 3. 국제관광도시 호재로 작용할 전망’처럼 뉴스를 세 줄 요약해 선보이기도 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기사 문체와 문법에 변화를 준 매체들도 있다. IT전문지 아웃스탠딩은 기사 형식을 버린 언론사다. 기자들을 캐릭터로 형상화하고, 다양한 상황에 맞는 ‘짤’을 만들고, 글은 ‘블로그’와 같은 구어체로 선보였다. 중앙일보 ‘썰리’(썰로 푸는 이슈 정리)는 카카오톡 대화를 하는 것과 같은 대화형 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맥락 담은 해설로 친절해진 뉴스

스트레이트 기사에 못 담은 내용을 맥락과 함께 전하며 친절하게 이슈를 해설하는 온라인 기사도 많아졌다. 한겨레는 2014년 ‘뉴스AS’를, 경향신문은 2015년 ‘정리뉴스’를 선보였다. 두 신문의 뉴스 해설 연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슈를 쉽게 해설하는 뉴스는 페이스북·유튜브 등의 동영상 실험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CBS 씨리얼은 복잡한 뉴스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를 인물 중심으로 해설하는 영상을 선보여 유튜브에서 95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닷페이스는 개헌 등 시사 이슈를 슬라임을 통해 전달해 인기를 끌었다.

▲ '헤이뉴스'의 '1분 보카'. 기자를 찾아가 담당 분야 현안 시사 이슈의 의미를 묻고 1분 만에 답변하게 하는 콘텐츠. 기자들은 못다한 말을 댓글을 통해 남기기도 했다.
▲ '헤이뉴스'의 '1분 보카'. 기자를 찾아가 담당 분야 현안 시사 이슈의 의미를 묻고 1분 만에 답변하게 하는 콘텐츠. 기자들은 못다한 말을 댓글을 통해 남기기도 했다.

중앙미디어그룹의 ‘헤이뉴스’는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이슈를 해설하는 뉴스를 선보이고 있다. 브리핑 형식의 해설 코너에 이어 최근에는 기자에게 예고 없이 1분 만에 시사 용어에 대한 의미를 답하게 하는 ‘1분보카’ 코너를 만들었다. 정치부 기자에게 다가가 ‘전당대회’의 의미를 묻자 당황하면서도 “학급 회의랑 비슷해요”라며 설명을 이어간다. 급하게 설명하게 하면서 최대한 쉽고 단순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포인트다. 

언론 밖 저널리즘의 확산

뉴스를 선보인 미디어 스타트업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닷페이스(.face)는 기성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는 담론에 주목했다. ‘H.I.M 프로젝트’를 통해 10대 성매수 문제를 다루며 관련 펀딩에 법 개정 청원 등 입법 운동으로 이어갔다. 취재 대상과 거리를 두는 전통적인 언론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회를 바꿔내는 모습이다.

고슴도치 캐릭터, 이모지(일종의 그림문자), 그리고 친절하고 쉬운 설명. 뉴닉은 뉴스레터 붐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반향이 큰 뉴스 서비스였다. 기존 언론사의 뉴스를 큐레이팅하면서도 ‘일상어’를 통해 전하며 취업 준비생을 중심으로 많은 구독자를 모았다. 특히 유튜브가 주제면 유튜브 화면 속에서 뷰티 콘텐츠를 찍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이슈가 주제면 분식집 사장님처럼 옷을 입고 등장하는 고슴이 캐릭터가 눈길을 끌면서 ‘고슴이 덕질한다’는 독자가 많았다.

최근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에 새로운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정혜승 작가(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가 관여하고 있는 새 미디어 프로젝트가 기자들을 영입하며 주목을 받았고, 지식 크리에이터들이 디지털 유료 구독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 기반 미디어 스타트업 ‘미디어스피어’(대표 이성규)도 출범했다.

포털의 저널리즘 고민, 뉴스펀딩

지금은 사라진 다음의 뉴스펀딩은 포털 사업자가 ‘뉴스 혁신’에 기여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14년 9월, 카카오와 합병하기 전 다음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취재를 후원하는 ‘뉴스펀딩’ 서비스를 시작했다. 취재비용 후원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이용자가 의견을 주고 받게 돕겠다는 취지였다. 

2017년 당시 담당자였던 김귀현 카카오 스토리펀딩 파트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좋은 기사의 생명력이 정말 짧았다. 품을 많이 들인 기획기사지만 2시간만 지나면 관심이 떨어져 다른 기사로 교체해야 했다”며 “펀딩을 통해 10년이 지나도 가치 있게 읽힐 수 있는 기사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 박상규 기자의 '피플펀딩' 화면.
▲ 박상규 기자의 '피플펀딩' 화면. 박상규 기자는 펀딩 참여 이후 탐사보도 전문매체 셜록을 창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스토리펀딩은 944일 만에 펀딩액 100억 원을 돌파했다. 당시 기준 후원자는 29만6512명에 달하며 하루 1060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영화 ‘귀향’이 펀딩을 통해 제작됐고 박상규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사표를 낸 후 ‘펀딩’을 기반으로 탐사보도를 하게 됐다. 그의 ‘재심’ 프로젝트는 후원액 5억6797만8000원이라는 기록적인 규모를 달성하기도 한다. 이 서비스는 2015년 뉴스 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에 펀딩하는 ‘스토리펀딩’으로 개편됐고, 2018년 폐지됐다.

언론 체질 개선 못 해

다양한 혁신 실험이 이어졌으나, ‘근본적인 언론 지형’을 바꾸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말로는 디지털 퍼스트를 말하지만 조직 자체가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벽에 부닥친 것이다. 성과주의적인 접근이 새 플랫폼에서도 ‘어뷰징’을 남발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진순 기자는 “심도 있는 진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혁신은 디지털 요소에 대한 투자이자 인식의 전환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데일리 기사를 만드는 건 똑같고, 업무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 투자가 일관되게 일어나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이고, 선언적이었다. 한국에서 혁신이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은 중앙일보 정도”라고 지적했다.

최진순 기자는 “디지털 전문가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조직을 찾기 힘들었다. 1세대 기획자들은 포털, 게임업계로 떠났다. 언론에선 개발자들이 채용돼도 금방 다시 채용공고가 난다. 이들에게 충분한 처우를 보장하지도 못하고 기자 조직에서 갖는 차별 요소도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중심의 채용 구조도 한계로 꼽힌다.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인력을 정규직으로 뽑는 조직을 찾기 힘들고, 정규직으로 뽑아도 대부분 기존 기자·PD들과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정규직 전환이 되더라도 조직 내에서 소수이기에 하나의 직군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한 언론사 뉴미디어 관계자는 “뉴미디어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기에 충분한 처우를 보장해줄 수 없다는 말이 반복되는데, 기존 뉴스 조직에게 이런 요구는 하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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