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이상한 구조를 갖고 있다. 소비자 없는 기업은 존재하기 힘들지만, 언론은 독자가 없어도 돈을 번다. 독자라는 축은 있지만, 수익은 포털과 기업과의 관계에서 탄생하는 ‘양면 시장’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포털 트래픽을 통해 유인되는 광고, 영향력에 기반한 지면광고와 협찬이 중심이기에 수용자(독자)를 바라볼 이유도 동기도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두가 언론이 ‘끓는 물 속 개구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존 수익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소비자(독자)의 관심과 지지 없는 시장은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변화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판을 깨는 시도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포털이 언론의 고민을 앞당겼다. 네이버가 언론사 유료 구독서비스를 중심에 둔 ‘프리미엄 콘텐츠’를 공개했고 카카오도 조만간 언론이 참여하는 구독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유료 구독’ 포털이 던진 화두

네이버가 지난 13일 유료 콘텐츠 플랫폼 ‘프리미엄 콘텐츠’를 베타 오픈했다. 25개 채널 가운데 13곳이 언론사 또는 계열 채널이다. 

조선일보 계열(땅집고·프리미엄조선), 동아일보 계열(HBR에센셜·DBR·엣지리포트), 한국경제(경제야놀자), 경향신문(경향noon), 중앙일보(글로벌머니), 매일경제(취업스쿨), 머니투데이 계열(더벨스톡·부릿지·소소소설), 한겨레(코인데스크 프리미엄) 등이다. 소설을 선보이는 머니투데이 외에는 경제, 상식, 투자 등 실용 콘텐츠 중심이다.

이들 채널에선 네이버가 콘텐츠 편집, 결제와 관리, 데이터 분석, 프로모션 등 콘텐츠 판매에 필요한 고도화된 툴을 제공하는 한편 창작자(언론사)는 콘텐츠 주제와 내용, 형식뿐 아니라 상품 구성이나 가격 정책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앞서 지난해 네이버가 언론사들에 ‘유료 구독’을 제안하면서 언론사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포털 종속을 이유로 유료 구독에 발 들이지 못하던 차에 포털이 구독 모델까지 제안한 것이다.

이번 시도로 언론은 크고 작은 변화를 추진했다. 경향신문의 경우 편집국에서 자원을 받았다. 기자들에게 건당 원고료를 우선 지급한 뒤 구독료도 배분키로 하고, 기자 관심사에 따라 자유 주제를 정하도록 했다. 현재 야구와 조직 리더십, 에세이, 경제 해설 등을 연재하고 있다. 한겨레 계열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는 관련 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전문 소식을 다뤘지만, 프리미엄 콘텐츠에선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투자에 초점을 두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갈무리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갈무리

포털 유료 구독 참여사들도 ‘반신반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참여한 언론사들은 장기적으로 독자 유료 구독 모델을 선보이기에 앞서 포털의 플랫폼에 올라탄 ‘실험’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정근 경향신문 디지털편집장은 “(유료 구독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가야 할 방향이 독자의 직접 구독과 유료화인데 시도하긴 포털 종속 환경에서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네이버가 제공하는 네트워크와 규모를 이용해 우리 콘텐츠를 돈 주고 구독할 가능성을 부분 시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병철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은 “새 수익모델을 기대하는 한편, 규모를 등에 업은 네이버를 시작으로 유료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면서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기대가 크지 않고 하나의 시행착오 기회로 여기고 있다. 김병철 편집장은 “포털 중심 환경에서 뉴스 유료화 실험이 매우 어렵다. 네이버가 기존에 없던 규모로 이를 시도하기에, 만약 실패하면 ‘진짜 안 되는 거구나’라고 볼 수도 있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A언론사 관계자는 “팔자 고칠 생각이라기보단 참여하면서 조심스럽게 탐색을 해보는 단계다. 성공을 바란다기보다 ‘어떤 이들이 돈을 내는가’를 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B언론사 관계자도 “큰 기대는 없다. 발을 담그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참여하지 않은 언론사들은 내부 준비가 덜 됐다고 입을 모았고, ‘포털 종속’을 우려했다. 김주성 한국일보 디지털전략팀장은 “콘텐츠와 채널을 먼저 다양화하기보다 기반을 닦은 다음 우리가 채널을 검토해 선택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자칫 정작 필요한 플랫폼 강화에 내부 역량을 못 쓸까봐 그렇다”며 “우리도 유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굳이 네이버만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고 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gettyimagesbank
▲ 디자인=이우림 기자. ⓒ gettyimagesbank

입점을 하지 않기로 한 C언론사 미디어전략 담당자 역시 “20년 가까이 뉴스를 공짜로 접해온 소비습관을 ‘한 큐’에 바꾸기 어려운 환경에 당장 참여한다고 해서 ‘인풋 대비 아웃풋’을 얻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포털 밖에서 독자와 만날 접촉면, 자체 플랫폼을 강화하는 게 먼저”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본지 차원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참여를 보류했다. 류이근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은 “서두를 계획은 없다”며 “참여하는 언론사들도 네이버 유료구독 시스템엔 실험적 성격이 크고 확장성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실험, ‘10만구독’ ‘유료전환’ 목표

한겨레는 17일 ‘후원 회원제’를 시작해 언론계 관심을 받았다. 김현대 대표이사는 “포털의 공짜 뉴스가 선정적으로 유통되는 세상에서 좋은 저널리즘을 바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프레시안, 고발뉴스 등에서 후원 시스템을 선보인 바 있지만, 한겨레는 종합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전면에 후원을 내걸었다는 점과 장기적인 ‘전환’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한겨레 후원회원제 홍보 이미지
▲ 한겨레 후원회원제 홍보 이미지

한겨레의 ‘후원 회원제’는 3단계 청사진의 출발점이다. 후원 회원제 도입에 이어 ‘이용자 분석 시스템 고도화 및 디지털 서비스 강화’를 2단계로 두고, 마지막 3단계로 ‘콘텐츠 유료화와 결합’하는 모델이다. 한겨레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연구해 지난해 말 내놓은 ‘언론사 후원모델 연구’에 따르면 한겨레 후원 회원은 월 1만 원을 내는 회원 5만 명을 1차 목표로 하고, 10만 명(월 10억 원)이 최종 목표다. 이 연구서는 “후원액이 광고와 구독에 이은 3대 매출원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핵심은 ‘독자 기반 수익이 궁극적으로 광고매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밝힌다.

류이근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은 “후원 회원제로 먼저 출범하고, 자체 플랫폼에 유입하는 디지털 구독자가 늘고 충성도가 높아지면 유료화를 결합할 생각”이라며 “유료 구독과 후원제가 대척점에 있는 개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페이 포인트, 어떻게 잡아야 할까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2019년 29개국 디지털 종사자를 대상으로 ‘저널리즘 주 수익원으로 관심 둘 분야’를 조사한 결과 52%가 ‘구독과 멤버십’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디스플레이 광고’(27%), ‘네이티브 광고’(7%)보다 매우 높은 지표다. 

세계적으로 관심은 높지만 국내에서 성공 사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뉴스’에 돈을 지불하기 쉽지 않은 데다 영어권이 아니라 독자층이 폭넓지 않고, 포털 중심의 무료 뉴스 유통 환경이 지불 장벽을 높이는 요소로 꼽힌다. 언론사의 전략 부족도 실패 요인 가운데 하나다.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언론도 있다. ‘아웃스탠딩’은 2016년 유료화를 시작해 가장 까다로운 전면 유료 구독 모델(하드 페이월)을 안착시켰고, 더피알은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2018년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해 이어가고 있다.

아웃스탠딩은 스타트업 분야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취재해온 기자들이 만드는 콘텐츠가 ‘차별성’과 ‘경쟁력’이 됐다. 최용식 아웃스탠딩 대표는 “IT벤처 분야를 쉬지 않고 10년 취재한 기자는 거의 없다. 높은 전문성과 남다른 취재원 풀,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나오는 질 높은 콘텐츠가 결제를 하게 만들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 디자인= 권범철 만평작가
▲ 디자인= 권범철 만평작가

강미혜 더피알 편집장은 “독자들이 정보성 콘텐츠에 확실히 돈을 많이 지불하는 것 같다. 저널리즘 차원에서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글이 아니라 수업과 공부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 현업에서 실무에 필요한 내용, 부가가치에 도움 되는 내용의 기사들을 선호한다”며 “1~2년 전 기사인데 지금 봐도 유효한 기사들이 인기 있다. 사회공헌, CSR, 위기관리 등 이슈 기사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강미혜 편집장은 유료구독모델의 성공을 위해 ‘대체 가능성이 없는 뉴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언론의 뉴스는 관점은 달라도 내용은 비슷하다. 이렇게 대체 가능성이 큰 것이 뉴스의 약점이다. 더구나 플레이어는 너무 많고 생산량도 수요에 비해 훨씬 많다”고 했다. “덩치 있는 언론사들이 의미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마케팅이나 세일즈를 못하는 면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독자’부터 알아야… 장기 전략도 필요 

미디어 전문가인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장기적으로 언론사 자체 구독 모델 성공을 위해 △제작 관행 개선 △독자 분석 △조직과 업무 개편이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기자는 “구독 모델은 독자가 찾는 모델이다. 기존 제작 관행을 유지해서 독자를 만족시킬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다”며 “천편일률적인 출입처 기반 기사를 갖고 독자가 충족할 만한 내용이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작구조와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 다음으로 독자가 누구인지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홈페이지에 로그인 기반 시스템을 통해 독자가 누구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 데이터를 학습하는 게 순서”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로그인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선보인 바 있고, 중앙일보는 오는 8월 홈페이지에 특정 기사를 묶어두거나, 비로그인 상태로 볼 수 있는 기사 횟수를 제한하는 식으로 로그인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계힉으로 알려졌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구독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하고,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선호하고, 어떨 때 구독이나 후원을 중단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수용자 수익모델로 전환하고 꾸준히 지표를 관리해야 한다. 역량을 충분히 키우지 않으면 초기에 주목받더라도 특정 시기가 되면 성장이 멈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용식 아웃스탠딩 대표는 “사활을 걸면 된다는 점이 해외에서 증명됐다”며 “한국에서 유료 모델이 안 되는 이유로 거론되는 요소들이 있지만 우리나라라고 외국과 크게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언론사들은 사활을 걸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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