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0건. 한강에서 실종된 대학생 손정민씨가 발견된 지난달 30일부터 5월10일 오후 6시까지 포털 다음에 송고된 관련 기사의 수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고,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다면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관심을 갖고 집중 보도하는 일은 의미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무엇을 위한 보도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관련 기사를 언론사별로 나눠보면 ‘경제신문’들이 눈에 띈다. 머니투데이는 해당 기간 관련 기사를 107건 썼고, 이데일리는 99건을 썼다. 이는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61건) 보도량을 압도한다. 경제신문들이 ‘사회면’에 실릴 사건 기사를 일간지는 물론 뉴스통신사보다도 많이 써낸 것이다. 전공이 아닌 분야에 힘을 쏟는 이유는 이들 신문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에 적극적으로 기사를 쏟아내온 것과 관련이 있다. 별도의 온라인 이슈 대응 기사를 잘 쓰지 않는 한겨레의 관련 기사는 같은 기간 4건에 그쳤다.

▲ 손정민씨 사건 관련 청와대 청원을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 손정민씨 사건 관련 청와대 청원을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쏟아진 기사의 면면을 보면 ‘필요한 뉴스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머니투데이는 청와대 청원 기사만 5건을 썼다. 3만, 19만, 20만, 30만 등 청원인이 늘어날 때마다 중계하듯 보도한 것이다. 

물론 언론이 화제가 되는 사안에 기사를 쏟아내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가십으로 다룰 이슈가 아닌데, 사건의 미스터리함에 초점을 맞추며 흥미 유발 기사를 써내고, 그 결과 친구를 범인으로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언론은 유가족의 의심을 전하며 친구의 사라진 핸드폰과 신발을 버린 사실 등을 연일 조명하고 그의 ‘수상함’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CCTV 영상을 토대로 네티즌 수사대의 ‘추측’을 전한 보도는 억측만 확산시켰다. 언론인권센터는 10일 논평을 통해 이들 기사를 문제로 지적했다.

“‘한강 실종 대학생’ 인근 CCTV, 의문의 남성들…그들은 왜 달렸나”(머니투데이)
“‘한강 실종 대학생' 주변 CCTV 속 남성들, 왜 전력 질주했을까”(파이낸셜뉴스)

현장 CCTV 영상에 세 명의 남성이 한강변 도로를 따라 뛰어가는 장면이 담겼다. 누리꾼들은 이를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추정했고, 언론은 이를 전하며 ‘의혹’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CCTV에 등장한 이들은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로 드러났다. 

이어 다른 누리꾼은 세 명 중 한 명이 손씨 친구와 인상착의가 같고, 손씨로 추정되는 사람을 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 단서였던 CCTV 영상 분석한 누리꾼들이 새롭게 내놓은 주장”(인사이트) “故 손정민 씨 업고 가는 친구? CCTV 보고 의혹 제기한 누리꾼”(머니투데이) 등 기사가 이어졌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이 경찰보다 앞서 나가며 오보를 내기도 했다. 뉴스1은 4일 “‘친구 휴대폰 찾았다’…실종 대학생 발견 구조사가 물속서 건져” 기사를 냈다. 이어 위키트리가 “한강 의대생 시신 찾았던 민간구조사, 이번엔 친구가 잃었다는 아이폰 찾았다”는 기사를 냈다. 여기에 주간조선은 “정민씨 친구 추정 휴대폰 발견… 유심칩 빠져 있었다” 기사를 통해 “유심칩이 없다면 누군가가 고의로 뺐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 = 1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고(故) 손정민 씨 친구의 휴대폰을 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고(故) 손정민 씨 친구의 휴대폰을 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 기사를 종합하면 친구의 핸드폰을 찾았고, 친구가 의심스럽게도 유심칩을 뺀 다음 휴대폰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들 기사는 ‘오보’였다. 핸드폰은 실종 대학생의 친구 것이 아니었다. 경찰은 한 번도 이 핸드폰이 친구의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없었다. 

이번 사건을 취재했던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는 “최소한의 자정조차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 기자는 “검증되지 않은 보도가 지나치게 많다. 한쪽(손정민씨 유족)의 주장에 보도 가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어느 한 대상(친구 A씨)을 범죄자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면 검증을 하고 가려서 써야하는 게 맞다”며 “큰 따옴표만 단다고 기사가 되는 게 아닌데 열광하고 음모론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조회수가 폭발하니 언론사들이 달려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언론의 책임과 더불어 경찰의 문제도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 6일이 돼서야 최초 백브리핑을 했다. 이미 억측과 음모론이 쏟아지고 며칠 지난 시점이다. 이 기자는 “6일 백브리핑이 너무 늦었다. 더 빨리해서 끊었어야 하는데 기관이 늦게 나서니 계속 음모론이 커진 것이다. 경찰들 사이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 파이낸셜뉴스 기사 갈무리
▲ 파이낸셜뉴스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는 ‘지평선’ 칼럼 “위험천만한 한강 대학생 보도”를 통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언론 보도의 행태를 짚으며 “지금은 수사 결과를 기다릴 때”라고 했다. 당시 언론은 선장과 비슷한 사람이 도주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을 토대로 온갖 추측을 쏟아내며 ‘비겁한 선장’을 조명했다. 하지만 선장은 선내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물론, 이번 사건은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와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취재 없이 행해진 일방적 추측 보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저널리즘 교과서격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사실확인의 원칙’을 강조하며 이를 저널리즘이 연예 오락이나 선전 선동, 소설 등과 구분되는 중요한 특성으로 꼽았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 보도 행태를 지적하며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기자들은 자의적 판단을 멈추고 기자의 본분인 ‘취재’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언론 시민단체가 기자들에게 취재를 ‘잘 하라’고 지적한 게 아니라 취재를 ‘하라’고 지적한 대목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취재 없는 기사는 누군가의 삶을 파멸시킬 수 있는 소설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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