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방송작가들을 들썩이게 한 입소문이 있었다. 한 JTBC 방송작가가 고용노동부로부터 퇴직금 지급 결정을 받아냈단 것이다. “뭐? 작가가 퇴직금을?” “가짜뉴스지?” “우리 얘길 들어준 근로감독관이 있다고?” 설왕설래가 이어졌지만 사실이 확인되자 혼란은 작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노동자로 인정받다니, 세상이 조금은 변했다”는 기대감이다.

지난 3월 MBC 보도국 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는 방송작가 근로자 지위를 법적으로 처음 확인했다며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보다 7개월 전 이미 “작가도 방송사 노동자”라는 판단이 나왔다. JTBC 아침뉴스 프로그램 ‘아침&’에서 일한 김지영(31·가명) 작가가 당사자다. 

▲자료사진.ⓒpixabay.
▲ⓒpixabay.

매일 새벽 사무실 출근, 주차증·출연료 관리도

“JTBC는 근로자인 김지영 작가에게 퇴직금을 줘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의 시정지시는 지난해 8월 떨어졌다. 김 작가가 그해 4월 '퇴직금 지급' 진정서를 낸 지 4개월 후였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김 작가를 꼼꼼히 조사했다.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업무는 누가 정하고 감독했는지, 언제 출근해 어디서 일했는지 등을 물었다. 

“작가가 왜 그런 일까지 하죠?” 조사관은 김 작가의 업무를 듣다 놀라 되물었다. 작가가 취재·원고 작성을 넘어 출연료·주차증 관리, 생방송 속기 같은 ‘자잘한’ 실무를 기준없이 맡아서다. 작가에겐 익숙하다. ‘누군가 이 일을 해야겠는데?’ 말이 나오면 작가에게 떨어질 때가 많다. 인터뷰 속기, 주차증 관리가 대표적이다. 출연료 정산처럼 원래 PD가 맡았지만 어느 순간 작가 담당이 된 업무도 여러 가지다. 

김 작가는 2분30초 가량 국제 뉴스 3~4꼭지를 전하는 ‘해외 이모저모’ 코너를 전담했다. 2018년 7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일했다. 1년 반 동안 매일 새벽 3시30분 JTBC 5층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침 7시30분 시작하는 생방송 뉴스에 맞추려면 그 시각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 원고를 송고할 땐 JTBC 직원이 쓰는 전용 프로그램을 써야 해 사무실 출근은 의무와 같았다.

▲지난해 1월31일 김지영 작가가 맡았던 코너 보도 갈무리.
▲지난해 1월31일 김지영 작가가 맡았던 코너 보도 갈무리.

뉴스 작가의 일은 정형화돼있다. 김 작가도 출근 후 4시까지 5~10개 정도 아이템을 찾고 내용을 정리해 PD에게 보고한 후, 소위 ‘그림’이라 불리는 뉴스용 영상 자료를 뒤졌다. 이후 2시간 가량 PD와 함께 방송에 낼 아이템 3~4개를 선별하면서 기사 내용 팩트체크와 영상 검색을 병행했고, 리포터가 읽을 원고를 마감했다. PD가 원고를 검수할 땐 편집자가 영상 파일을 신속히 쓸 수 있게 시스템에 자료를 등록했다. 최종 원고가 완성되는 대로 편집구성안을 작성하면서 편집팀과 긴밀히 협업했다. 7시30분께 영상 최종본이 나오면 담당 리포터와 원고를 맞춰보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8시 코너가 시작됐다. 

코너가 끝나도 바로 퇴근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대담이나 인터뷰 코너의 속기를 맡았다. 코너가 끝난 직후 보도된 내용을 뉴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 총무 부서를 들러 내일 스튜디오에 나올 출연진의 주차증도 미리 받아 놨다. 출연료 정산 업무도 맡아 출연진 계좌번호, 연락처, 생년월일 등도 조사해놨다. ‘특보 대기’ 명목으로 오전 11시까지 대기도 했다. 원래 긴급한 사건·사고 발생에 대비해 정규직원들만 하던 일이었다. 

“김지영은 JTBC와 대등한 관계에서 자기 책임하에 사업을 영위한 자유소득자로 보기 어렵다. JTBC와 종속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인다.” 

서울서부지청 판단에 작가들은 놀랐다. 작가의 업무 과정을 이해하고 법 해석에 적극 반영한 근로감독관을 본 적이 드물어서다. 서울서부지청은 김 작가가 △근무 시간·장소에 구속을 받았고 △원고 작성 등 업무의 최종 결정권은 PD에게 있었으며 △주차권 배부, 출연진 정리, 코너 인터넷 기사화 작업, 특보 대기, 다른 코너 출연진 섭외 등 부가 업무까지 병행했다며 “종속관계가 아니라면 할 필요 없는 일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서울서부지청이 JTBC의 사용자성을 조사하기 위해 확인한 업무 지시 카톡 내용을 재구성. 서울서부지청은 PD가 직접 업무 지시를 했고 최종 결정권도 가졌다고 봤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서울서부지청이 JTBC의 사용자성을 조사하기 위해 확인한 업무 지시 카톡 내용을 재구성. 서울서부지청은 PD가 직접 업무 지시를 했고 최종 결정권도 가졌다고 봤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김 작가는 프리랜서’라는 JTBC 주장엔 김 작가의 급여가 JTBC 내부 제작비 기준표상 실제 프리랜서가 받는 대본료 기준과 달랐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하루 10여만원으로 책정된 용역비를 한 달 단위로 한번에 받았다. 근로감독관은 “이 금액은 월 230만원을 21일 기준으로 나눈 금액”이라거나 “작가의 기여 여부에 따라 금액이 변하지 않는 고정급”이라고 봤다. 특히 JTBC로부터 받는 수입이 소득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전속성도 인정했다. 

 

당연히 프리랜서인 직종은 없다

김 작가가 퇴직금 진정서를 쓰게 된 이유기도 하다. 7년 차 작가인 그는 시사·교양, 드라마, 보도국까지 각 분야 작가를 두루 거쳤다. “작가를 시작할 땐 나도 그랬다. ‘4대 보험이라도 되는 일자리를 구해라’는 엄마에게 ‘여긴 원래 그래. 작가는 원래 그렇다고’라며 화를 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당연한 건 세상에 없다. 작가는 원래, 당연히 프리랜서가 아니다.” 그가 말했다. 

1년 반 뉴스 작가 생활 동안 느낀 설움도 한몫했다. 다른 업계의 비정규직 문제엔 민감한 언론인들이 정작 자기 내부 문제엔 둔감한 모습을 보며 모순을 느꼈다. 하루는 김 작가가 담당 부장에게 ‘직계가족이 상을 당한 날 유급휴가로 배려해 줄 순 없느냐’ ‘왜 우린 계약서를 쓰지 않느냐’고 묻자 부장은 “프리랜서는 회사 소속도 아니고 의무나 책임이 없잖아. 딴 데 가서 일해도 뭐라 안하잖아? 지영씨가 투잡, 쓰리잡 뛰어도 뭐라 안해”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게 프리랜서”라거나 “회사에 없는 규정을 배려해주면 배임·횡령”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JTBC 퇴사와 함께 작가 일을 쉬면서 속상함에 엉엉 울었다. 일은 직원처럼 하는데 처우만 프리랜서인 점, 부당하다고 말하면 ‘그게 프리랜서’란 답이 돌아오는 현실에 속상했다. 김 작가는 “고되게 일했던 지난 7년 작가 생활을 돌아보며 ‘도대체 나는 무슨 일을 어디서 한 걸까’란 생각이 들더니 울음이 나오더라”며 “방송계는 작가를 언제든 바꿔 끼우는 볼트, 너트처럼 보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작가들은 취재·원고 작성 외에도 다양한 실무를 맡는다. 서울서부지청은 김지영 작가가 주차증, 출연료 관리 등 실무를 맡은 사실을 업무지시 메신저 대화 등으로 확인했다. 사진은 PD와의 SNS 대화 내용 재구성. 디자인=안혜나 기자.
▲작가들은 취재·원고 작성 외에도 다양한 실무를 맡는다. 서울서부지청은 김지영 작가가 주차증, 출연료 관리 등 실무를 맡은 사실을 업무지시 메신저 대화 등으로 확인했다. 사진은 PD와의 SNS 대화 내용 재구성. 디자인=안혜나 기자.

‘솜방망이’ 검찰 “퇴직금 일부러 안 준 건 아냐”

김 작가는 아직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노동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은 JTBC의 퇴직금 미지급에 고의성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냈다. 노동청이 계산한 김 작가의 퇴직금은 330여만원이었다. 노동청은 JTBC가 지급 명령에 불응하자 지난해 11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보냈다. 

“김지영 작가는 JTBC 근로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JTBC가 고의로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고 볼 수 없어 불기소 처분한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3월31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JTBC에 무혐의 처분을 냈다. “JTBC가 김 작가를 프리랜서로 인식해 퇴직금을 주지 않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퇴직금 체불에 고의가 없다는 요지다. 방송계가 통상 작가를 프리랜서로 고용하고 JTBC는 정규직과 작가를 구분해 인사 규정을 달리한 데다, JTBC가 이 사안을 법률 전문가에게 의뢰해 ‘노동자성이 약하다’는 판단을 받은 점, 그리고 방송작가들이 JTBC를 퇴직금 체불로 신고한 선례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검찰은 김 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JTBC 입장에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JTBC가 지난해 8월 노동청의 시정지시에 불응한 사실도 적극 반영하지 않았다. 퇴직금을 주지 않고 있는 지난 7개월 동안의 고의성은 아예 고려치 않은 것. 김 작가는 “노동청 시정 지시를 받은 때 JTBC가 노동자성을 인지했고, 퇴직금을 줘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검찰 논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동료 작가들에게 “목소리를 더 내달라”고 밝혔다. 그는 “나에게 ‘용기있다’고 말한 작가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매우 쉬운 일이다. 노동청 사이트에 가입해 출퇴근 시간, 업무내용 등 5줄만 쓰면 10분 안에 진정할 수 있다”며 “구성작가 처우가 놀라우리만치, 수십 년 동안 그대로인 이유는 그만큼 이의제기를 하는 작가들이 없었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누가 해주길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창작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작가를 프리랜서로 쓴다’는 통념에 “정규직은 창의적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일을 하느냐.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실상 작가를 빼면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는다. (작가 노동자성 등의) 처우 문제는 시기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바뀐다”고 덧붙였다. 

한편 JTBC는 이번 사건에 “프리랜서와 근로자를 구분해 업무 방식·근무시간의 재량권 정도, 담당 부서, 채용절차, 사규 적용 여부 등을 달리하고 있다. 프리랜서 근로자성 관련 이슈가 민감한 부분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이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며 “사건 발생 이후 객관적 의견을 받기 위해 노무법인 등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을 받았다”고 밝혔다. 

JTBC는 시정 지시 불응과 관련해 “노동청이 일차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노동청은 진행 중인 사건이라는 사유로 상세한 판단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조사관의 구두 설명 중엔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도 있었기에 좀 더 면밀히 추가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었다”며 “이와 별개로, 회사는 방송계 비정규직에 관한 중앙노동위 결정 및 노동청의 행정처분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 향후 개선 방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할 말 있는 방송노동자] ① “국장님이 프리랜서 해보셨어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