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한다. 그런데 노동을 너무 심하게 하다 죽었다. 누구 책임일까. 노동자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에 따라 노동을 하니까 사측의 책임이 크다는 게 상식적이다. 얼마나 노동해야 과로인지, 과로가 죽음과 연관이 있는지, 보상은 어디서 받을지, 사용자의 책임은 어느 정도인지 누구도 조사하고 입증해주지 않는다. 사망한 이의 가족들 몫이다. 사람이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많은 가족들이 애도를 밀어둔 채 이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과로로 인한 죽음에는 과로사도 있고 과로자살도 있다. 과로로 뇌심혈관질환 등 신체가 급격히 망가져 세상을 떠나기도 하지만 과로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사망 이후 남겨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곤 한다. 죽음의 전조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 특히 배우자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냐는 주변의 비난 등이 슬퍼하기에도 벅찬 유족들에게 놓인 현실이다. 

유족 이수현씨는 멀리 떨어져 일하던 남편을 잃었다. 며칠 전 몸이 좋지 않다던 남편 전화를 끝으로 푹 쉬라는 생각에 하루정도 통화하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길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고 약을 챙겨 먹으라는 문자를 남겼다. 답은 없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의 사망소식이었다. 남편이 있는 거제도까지 운전할 정신이 없어 비행기를 탔다. 남편이 죽었는데 비행기 옆 노부부와 대화를 하고 승무원에게 미소를 짓는 자신을 경멸했다. 다음은 그의 이야기다.

“남편은 가끔 업무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었다. 자꾸만 그 생각이 나서 괴로웠다. 내가 나빴다. 그냥 빨리 일을 그만두라고 해야 했다. 돈 몇 푼에 남편을 팔아버린 것 같다. 마치 사악한 포주가 되어 남편을 사지로 몬 것 같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가 남편이 동료 직원 여럿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92쪽)

▲ 유족 이수현씨 그림. 사진=‘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갈무리
▲ 유족 이수현씨 그림. 사진=‘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갈무리

유족 김지현씨는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남편을 잃었다. 새벽 1시, 회사 당직실에서 전화로 남편 사망을 알렸다. 상대는 대기업, 장례도 치르기 전에 회사는 ‘상황정리’에 최선을 다했다. 경찰 역시 조사를 마치고 정해진 업무를 끝내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슬퍼할 겨를 없이 정신을 부여잡고 남편의 죽음이 회사의 압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입증하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김씨의 회상이다. 

“남편은 분명 회사에서 압박을 받았는데 이걸 증명할 객관적 자료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옆에 있는 시아버지는 소리치며 울고만 있고 이 경찰서에서 날 대변해줄 사람은 없다. 슬퍼하면 안 된다.”(98쪽) 

“억울한 마음에 노동부 근로감독관을 찾아갔다. 유족이 출퇴근 기록 자료를 넘겨받을 권리에 대해 물었는데 의무는 있지만 법에 따른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답변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태연하게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고, 처벌을 받지 않으니 이런 과로자살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101쪽)

▲ 유족 김지현씨 그림. 사진=‘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갈무리
▲ 유족 김지현씨 그림. 사진=‘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갈무리

한국사회에선 장시간 노동, 희망퇴직이나 성과압박,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고 익숙하다. 때문에 누가 야근으로 피곤해한다고, 직장에서 흔히들 겪는 일들로 힘들다고 갑자기 사람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과주의가 폭력적으로 변질한 사회와 이를 용인한 기업들에게 책임을 묻는 이는 많지 않다. 과로와 과로죽음 관련 보도가 크게 화제가 되지도 않을 만큼 사회전체가 고통에 꽤 무뎌졌다. 

유족 서주연씨는 동생을 잃었다. 인터넷 강의업체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동생은 입사 4일차부터 새벽 4시에 퇴근했다. 주말 이른 아침에 출근하기도 했다. 상사는 업무일지에 반성문 작성을 종용했고, 채식주의자인 동생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했으며, 야근이 한창인데 책을 읽어오라고 지시했다. 3년반이나 참던 동생이 이러한 문제를 서씨에게 털어놓았고 서씨는 노동지청에 회사를 신고했다. 노동지청은 올해 근로감독 일정이 끝났다고 답했다. 동생의 잘못을 찾을 수 없었다. 

과로죽음은 갑자기 발생한다. 죽음의 원인을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노동과 회사가 원인이었다는 걸 뒤늦게 느끼게 된다. 이를 깨달은 이들이 모였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은 말 그대로 과로죽음(과로사+과로자살)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모임이다. 지난 2017년 7월1일 첫 모임으로 시작으로 20여 가족이 함께 모이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이의 과로죽음을 마주했을 때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누군가 경험할 충격을 대비해 안내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는 과로죽음 유족들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썼다. 한쪽에선 실업으로 답답해하지만 다른 한쪽에서 과로로 사람이 죽어가는 사회현실, 누구는 주4일제를 말하지만 다른 누구는 주5일제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하는 노동환경에서 이 책은 유효하다.

▲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 나름북스 펴냄
▲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 나름북스 펴냄

책에는 언론의 역할을 돌아보게 하는 부분도 있다. 앞에 소개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을 잃은 유족 김씨는 남편 휴대폰에서 직장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던 문자 내용을 발견했다. 이를 남편 죽음 소식과 함께 언론사에 메일을 보냈다. 

“이제 사건이 제대로 보도될 거라는 기대는 내 착각이었다. 사건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기자에게 연락하니 윗선에서 편집을 요구한다고 했다. 상대가 언론사에 광고를 가장 많이 내는 대기업이라 자체 검열할 수밖에 없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해가 안 됐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언론사를 찾아 스무 곳 넘게 글을 보냈다. 8~9명의 기자가 취재해갔지만, 보도해준 곳은 적었다.”(144쪽)

이후 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관련 보도를 했다. 다만 문자메시지 관련자들이 누군지 알게 됐고 상사들이 문자 발신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법률 전문가와 상의를 하지 않고 성급히 언론 취재에 응한 것을 돌아봤다. “언론은 내 편이 아니라 이용해야 할 대상이고 너무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야 덜 상처받을 것이다.”(146쪽) 

유족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언론을 상대하는 팁도 전했다. 화제성 있는 사건, 근거가 충분한 사건을 기사화하기 때문에 이를 정리한 뒤 언론을 만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처를 받거나 명예훼손 등 소송에 연루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했다. 기사를 이어가기 위해 화제를 만들기 위해선 노조나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것도 방법이며 인터넷 공간에서 이슈를 시켜 공론화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취재시 언론 비공개 등 대응원칙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되며 기사화 이후 여론의 싸늘한 반응도 염두에 둘 것도 당부했다. 

과로죽음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 인정받으려면 노동법상 노동자여야 하고, 그 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됐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책에는 관련 법과 규정을 인용하며 어떤 경우 과로죽음에 해당할지 상세하게 제시했다. 과로 양상에 따라 급성과로와 단기과로, 만성과로를 구분해 각각을 설명하고 사망한 노동자의 여러 흔적을 통해 노동시간을 추적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과로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요건은 무엇이 있는지, 어떤 흔적들로 단서를 찾는지 등도 설명했다. 

책 뒷부분으로 가면서 저자들은 절박하게 노동시간을 줄이고 과로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간도 줄여야 하고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야근근무, 교대근무 최소화를 요구했다. 해결주체에는 당연히 기업과 정부도 포함했고, 노동자들도 스스로 깨어있길 주문했다. 유족들은 유족이 되기 전에는 노동자들의 권리, 노동법을 몰랐다. 밥줄이라고만 생각했던 노동이 자신을 옥죌 때 이를 거부할 권리는 최후의 보루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에는 유족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생각보다 읽어 나가는데 감정적으로 버겁지 않다. 그 말은, 최대한 감정표현을 자제했고 과로죽음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와 과로의 심각성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방점을 뒀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도 차츰 피해자들이 인권문제 해결의 주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열심히 일하다 죽을 수 있다. 우리가 증인이다”(271쪽) 이 책은 산 증인들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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