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장충기 문자’가 언론에 공개됐을 때 시민들은 분노했다.

누군가는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언론인을 보며 개탄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혈맹”을 운운하며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 왔습니다”라거나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낯 뜨거운 문자에 절망했다. 거대 자본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언론 사명으로 믿었을 독자들로선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자연스레 ‘삼성 자본에 유착한 언론’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기자와 취재원이 지켜야 할 거리를 뜻하기도 하는 한자성어 ‘불가근불가원’.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부 장충기 문자들은 ‘언론 흑역사’로 남아있다. 장충기 문자에 등장하는 기자들이 삼성에 관한 칼럼을 쓸 때 독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자가 공개된 이상 내가 삼성을 다뤄도 좋을지 성찰이 그들에게 필요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이 뜨거운 이슈다. 특히 신문 지면에서 그렇다. 삼성 일가가 28일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산 가운데 60%를 상속세와 기부 등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히면서 이재용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례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는 29일 칼럼에서 “위대한 리더는 한 번의 결단으로 국민 가슴에 남는다. 문 대통령에겐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부디 진영을 넘어 나라를 구하시기 바란다”며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호소했다.

“역대급 사회환원 ‘사면론’에 힘 싣나”(국민일보 29일자)나 “‘이재용 공백, 삼성의 위기 아닌 한국경제의 위기’”(아시아투데이 29일자), “‘반도체 전쟁’ 지휘할 사령관이 감옥서 상속세 대출 상담 받는 나라”(조선일보 사설 29일자) 등 기사·사설도 신문 속내가 드러나 낯 뜨겁긴 마찬가지다.

▲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은 27일 “文대통령 이재용 특별사면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문 대통령이 이재용 특별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진=매일경제 기사 갈무리
▲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은 27일 “文대통령 이재용 특별사면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문 대통령이 이재용 특별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진=매일경제 기사 갈무리

이재용 사면에 힘을 싣는 여러 칼럼 가운데 ‘장충기 문자’에 이름을 올린 언론인 글도 있다.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은 27일 “文대통령 이재용 특별사면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특별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 고문은 “지난 21일 문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이 회동했을 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건의했는데 이때 이 부회장 특사 대화는 없었다고 한다”면서 “그런데 최근 필자와 통화한 한 참석자는 ‘8·15특사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더불어 이 부회장 특별사면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고문은 “재계에선 박 전 대통령만 풀어주고 이 전 대통령은 특사에서 제외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있었는데 그 경우 보수 갈등을 노렸다는 음모론으로 마이너스 효과가 날 것이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관측한다”면서 “8·15 때 이재용 부회장도 함께 사면한다면 적정한 타이밍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박근혜·이재용에게 적용된 판결 사유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승마 지원이 문제였으므로 동반 사면은 충분한 논거가 될 것”이라며 “백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 순방 일정을 맞추기 위해 5월 초 특사를 상정할 수 있었는데 좀 늦어지게 된 셈”이라고 했다.

그는 미·중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패권 전쟁을 언급하며 “그룹의 대규모 투자는 오너가 아니면 결행하기 힘들다는 말을 경제단체장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한다. 과거에는 재벌 총수가 수감돼 있어도 경영진이 면회를 가서 보고하면 ‘옥중경영’이 가능했는데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변호사와 가족 외에는 면회가 불허된다고 한다”면서 이재용 사면에 힘을 실었다.

▲ 2018년 4월 MBC가 공개한 ‘장충기 문자’를 보면,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은 2016년 9월 장충기 전 차장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 문자를 보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화면 갈무리
▲ 2018년 4월 MBC가 공개한 ‘장충기 문자’를 보면,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은 2016년 9월 장충기 전 차장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 문자를 보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화면 갈무리

그의 칼럼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은 장충기 문자에 있다. 2018년 4월 MBC가 공개한 ‘장충기 문자’를 보면, 김 고문은 2016년 9월 장충기 전 차장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 문자를 보냈다. 

“3일전 매경 1면 보도대로 저는 주필 자리에서 논설고문으로 발령 났습니다. 회장께서 몇 년 했냐고 저에게 묻더군요. 생각해보니 33년 1개월입니다. 참~신석기부터 인공지능시대까지 1000년은 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과분하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늘 생각하겠습니다. 김세형 올림”

단순한 감사 문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삼성에 우호적 칼럼을 썼다. 김 고문은 2017년 2월 “삼성 이재용 구속의 3가지 관점”이라는 칼럼에서 “법원이 이재용의 도주를 우려했다면 소가 웃을 일이고 일단 수사가 끝나고 재판에 넘겨 사법적 평가를 다투는 시간이 되면 풀어주고 재판을 받게 하는 게 공평하다. 구속 재판은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근혜·이재용의 독대가 사단으로 번진 빌미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문제가 제공했다. 물론 법을 지키는 게 재벌의 1차적 의무다. 현행 상속세율은 50%로 전 세계 최고다. 3, 4세로 경영권이 승계될 때쯤이면 지분율은 재벌해체 수준으로 떨어진다”며 “한국의 정치와 정서는 경영권 승계를 싸고 가장 불리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3, 4세가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 2017년 2월21일자 매일경제 김세형 칼럼.
▲ 2017년 2월21일자 매일경제 김세형 칼럼.

김세형 칼럼과 장충기 문자를 겹쳐 보면, 삼성이 베푼 은혜를 칼럼으로 갚는 건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김 고문과 삼성 핵심 인사의 친분을 알지 못하는 독자로선 불가근불가원 원칙 하에 칼럼이 작성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 고문에게 직접 물었다. “장충기 문자에 이름이 오른 적 있는데 (당신의) 삼성 관련 칼럼을 공정하게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장충기 문자’에 대한 입장만 밝히고 연락을 끊었다.

김 고문은 30일 통화에서 “사람 스타일 나름이다. 그때 주필로서 역할이 끝난 뒤 고문발령이 났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내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라며 “(삼성에 대한 인사 표현이) 굉장히 드라이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오버해 표현했더라.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홍보인인 장충기와) 인연이 길었다. 고맙다는 표현을 그렇게 전했던 것이다. 내가 그 양반(장충기)한테 돈 1원 얻어먹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게 전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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