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KBS가 시민이 참여하는 토론에 앞서, 전문가 공청회를 진행했다. 공청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의 공적책무 강화를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 주로 공감했으나, KBS가 내놓은 공적책무 계획이나 혁신 방향에 대해선 여러 아쉬움을 지적했다. 28일 서울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공청회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됐다.

KBS 경영진은 지난 1월 이사회에 월 2500원의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1340원 높이는 안을 보고했다. KBS는 공적 책무 확대에 필요한 예산 1조8000억원, 향후 5년(2025년까지) 예상되는 누적 재정적자 3300억원에 더해 경영효율화·자구노력으로 예상되는 추정치 등으로 금액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임병걸 KBS 부사장은 이날 이런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손익분기점에 이를 수 있는 수준으로 수신료 인상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공적책무 확대 방안으론 ‘5대 목표, 12대 과제, 57개 공적책무’를 약속했다. 12개 과제는 △국가재난방송 중추역할 확립 △독보적 저널리즘 신뢰 구축 △고품격 공영 콘텐츠 제작 확대 △새로운 한류 점화 △UHD 방송 선도 △차세대 미디어 서비스 역량 확대 △디지털 콘텐츠 확대 및 개방 △지역방송·서비스 강화 △한민족 평화·공존 기여 △미디어 다양성·상생 지원 △시청자에 의한 시청자의 KBS △시청자 주권과 설명책임 강화 △소수자 포용과 다양성 확대 등이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온라인 생중계 갈무리
▲2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온라인 생중계 갈무리

양승동 KBS 사장은 이날 “KBS의 공적책무 확대계획과 수신료 조정안을 KBS 이사회에 상정하면서 많이 고심하고 망설였다. 수신료 조정은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심적 부담을 드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역설적으로 코로나와 각종 재난재해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공적 정보 전달체계가 중요하고, 그것을 올바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공영방송이라는 인식도 분명하게 갖게 됐다”고 밝혔다.

양 사장은 이어 “거대 상업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미디어기업들의 시장 지배 속에서 미디어 이용 양태가 개인화, 파편화, 극단화로 치닫게 되면서 민주적 공론장 역할과 민족의 정체성 유지, 공동체 통합, 소수자 배려 같은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이 절실하다”며 “지금이야말로 급격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는 KBS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미래의 공영방송 모델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공청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느냐에 대해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KBS가 스스로 강조해온 ‘가장 많이 이용하는 언론사 1위’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1위’ 조사 결과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KBS가 다른 언론사에 비해 신뢰도 면에서 월등히 앞서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제시된 언론사에서 1등 했다는 거지, 언론사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라며 “절대적인 정보량은 늘어났고 이용 가능한 영상 콘텐츠는 많다”고 말했다.

재난방송 강화를 이야기하면서 ‘속보’에만 치중돼선 안 된다는 우려도 전했다. 속도 면에서는 오히려 양대 보도전문 채널이 앞설 수 있고,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속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 교수는 “‘어느 곳에 홍수가 났다’가 아니라, 어떻게 대피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재난상황이 끝나면 전체적인 극복과정에서 KBS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며 “KBS는 이런 기능을 유지하고 상시화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온라인 생중계 갈무리
▲2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온라인 생중계 갈무리

수신료를 인상해 공영방송다운 재원 구조를 만들겠다는 KBS가 광고 감축 방안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원 인천가톨릭대 교수는 “(공영방송 광고를 줄이면) 광고 수익이 다른 데로 흘러갈 수 있고 전체적으로 재원 구조가 바뀌는 효과가 있다. 공영방송도 광고 없이 본연의 책무에 충실할 수 있다”며 “광고를 그대로 안고 가면서 공영방송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신료를 징수하고 배분하는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수신료는 한국전력공사가 위탁징수하고 있는데,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몫으로 돌아가는 수신료 비율(3%)보다 한전이 가져가는 수수료 비율이 높은 구조는 비정상적이란 지적이다. 

심영섭 교수는 “현재 한전은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징수를 대행하고 있다. 시행령은 한전이 최대 15% 수수료를 받도록 하고 있고, 지금 한전이 받는 건 6.15%”라며 “초창기 (수신료 위탁징수 체계) 구축 비용을 감안한 시행령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위탁징수로 인한 수수료를 줄이고, 그만큼의 비용을 EBS에 지원하자는 취지다. 박성우 우송대 교수도 “위탁징수의 장단점이 분명한데 6%면 EBS 몫의 두 배 넘는 비용을 한전에 지불하는 것”이라며 “수신료 관련 대표기구에서 개선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수신료를 왜 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양 변호사는 “수신료 인상안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KBS 시각에 너무 갇혀있는 게 아닌가”라며 “최근에 갑자기 미디어 환경이 바뀐 건 아니다. 10년 전, 15년 전에도 예상이 됐고 많은 학자들이나 방송계에서 우려나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KBS는 왜 변화에 실패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수신료 인상을 해야 한다면 500원을 올린 뒤 성과를 보여줄 경우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식이 낫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이어 “돈이 없어서 공영성, 공공성 확보하기에 부족했다? 공익성은 돈이 없어서 달성이 안 됐다? 안이하고 편의적인 평가다. 프로그램 경쟁력이 왜 약화된 건지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으며 “KBS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비가 늘어나서 큰 문제가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작비가 늘어난 이유를 뭉뚱그려 설명하면 KBS가 상업방송 경쟁에서 뒤처진 부분을 시청자에게 책임 전가하는 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온라인 생중계 갈무리
▲2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진행된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온라인 생중계 갈무리

 

KBS 내부 구성원의 윤리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심미선 순천향대 교수는 “2019년 강원도 고성산불 재난 보도 시 산불 현장에 가지 않고 강릉에서 보도한 사례가 있었다. 미디어 전공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신료 인상 관련해서도 내부 직원이 국민을 조롱하는 듯한 댓글로 문제가 됐는데 회사 차원 제재가 약하지 않았나. 이런 부분에 대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뒷전으로 미뤄왔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박성우 교수는 “수신료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최종 심급은 주류 정치세력이었다. 수신료 제도는 이들 결정에 의해 KBS가 준조세 성격의 돈을 받는 단순한 시스템일 뿐이고, 수신료 결정 과정은 권력주체들이 국민에 대한 자신들의 권위와 힘을 확인하는 절차였다”고 비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정윤식 강원대 교수는 토론회를 정리하면서 수신료 제도에 대한 정치권 역할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민주당은 야당일 때 특별다수제라는, 사장을 선출할 때 여야 합의를 하는 제도를 주장했다. 집권하고 나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당 시절 수신료 인상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수신료는 어차피 국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정당들이 타협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오는 5월22일과 23일 양일간 200명의 ‘시민참여단’이 참여하는 숙의 토론 조사를 거쳐 수신료 조정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현재 시민참여단 선정을 위한 표본 2500명을 대상으로 KBS에 대한 필요성 및 인식도를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 조정안이 의결되고 방송통신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국회가 이를 최종 판단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