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온웹(Women on Web)’ 홈페이지 접속이 2018년 3월 차단됐다. 위민온웹은 여성 재생산권 옹호 활동을 하는 캐나다 비영리단체로, 임신중지나 피임 관련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고 임신중지약 배송 작업을 해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불법 의약품 판매를 이유로 통신심의에서 차단을 결정했다.

방통심의위의 통신 심의가 모호한 규정에 바탕해 사회 맥락을 외면하고 이뤄진 결과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을 포함한 건강권), 정보접근권을 침해하기 이른 맥락을 짚는 자리가 열렸다.

정보인권 활동가는 27일 위민온웹 차단해제 필요성과 함께 심의 규정을 명확히 하고 당사자 의견을 듣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성과 재생산권 활동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 차단 논의에서 국내 포괄적인 성과 재생산권 현실을 짚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여성의 SRHR(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과 정보접근권을 주제로 열린 웨비나에서다.

위민온웹은 2015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해 2016년 낙태죄 반대 시위(검은 시위) 이후 국내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통신 심의로 접속이 차단되던 2018년 즈음엔 임신중지약 요구량이 3000건에 달했다. 위민온웹은 차단 이후 우회 접속 홈페이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1~2월엔 한국 여성 400여명이 임신중지약을 신청했다. 세계에서 위민온웹 홈페이지가 차단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뿐이다.

미루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통신심의 규정부터 광범위하고 모호해 권리침해가 예견됐다고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통신심의 목적으로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과 ‘정보의 건전화’를 주요하게 명시한다. 미루 활동가는 “‘건전’이라는 단어부터 불투명하다. 더구나 국가가 나서서 건전한 통신윤리를 직접 차단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라고 했다.

▲접속차단 이전 위민온웹 사이트 캡쳐 모습
▲접속차단 이전 위민온웹 사이트 캡쳐 모습

정보통신망법 44조에선 심의 대상으로 “불법정보나 청소년 유해정보 등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정보”라고 밝혔다. 미루 활동가는 이를 두고 “사실상 모든 정보를 심의할 수 있다”고 했다. 44조 7항엔 “음란한” 정보를 배포, 판매, 공공연히 전시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권리침해 맥락이 없는 ‘음란성’이 심의 근거로 적절한지 의문일 뿐 아니라 자의적 적용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신 심의는 공공기관 부속 심의에 이르기 쉽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8년 위민온웹에 대해 약사법 위반 소지(불법의약품판매)를 이유로 통신심의위에 조치를 요청했다. 심의 과정에서 해외 사이트의 게시물 작성자나 홈페이지 운영자가 의견을 개진할 구조는 없었다. 

전문성 부족도 겹친다. 미루 활동가는 “방통심의위가 국가보안법 저촉 여부, 불법 여부, 불법의약품 해당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하는데 전문성이 없을뿐더러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며 “그럼에도 심의위는 행정기관 요청에 따라 모든 분야에 통신심의를 하면서, 거의 공공기관 요청을 기계적으로 승인하는 데 이른다”고 했다.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위민온웹을 차단하면서 해당 사이트와 관련해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의사가 개설한 사이트” “‘미프진’ 등 의약품을 판매하는 사이트” “불법사이트”라고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미루 활동가는 “내용 규제 면에서는 현행 규정을 개정해 통신 심의 대상을 명확히 하고 모호한 심의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판단이 어려운 경우엔 심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되도록 방통심의위 역할은 디지털성범죄물로 한정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심의 과정에선 “해외 사이트의 경우에도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민간 독립기구인 방통심의위엔 자율심의를 맡기고, 불법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오픈넷과 진보네트워크센터 주최로 여성의 SRHR(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과 정보접근권 웨비나가 27일 진행됐다. 오픈넷 유튜브
▲여성의 SRHR(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과 정보접근권을 주제로 한 웨비나가 27일 오픈넷과 진보네트워크센터 주최로 진행됐다. 오픈넷 유튜브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활동하는 류민희 변호사는 “위민온웹 차단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 권리와 관련해 쌓여 있던 권리 침해의 맥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면서 “위민온웹이 제공하는 정보와 행위는 국가가 공적으로 제공했어야 하는 것들이다. 국가는 여성 재생산권 관련 정보를 오랫동안 인구정책이나 가족계획 맥락에서만 단편적으로 제시하다, 사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자를 차단하기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 변호사는 “방통심의위 조치는 UN 사회권위원회가 핵심 의무사항으로 명시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정보 접근을 범죄하거나 저해하는 법과 정책, 관습을 폐지하거나 철폐할 것’이란 조항을 위반한다”며 차단을 해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세계보건기구 필수약물목록에 따라 임신중지약 등을 포함해 필수 의약품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셰어’ 기획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위민온웹 차단이 불법사이트 차단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여성들은 법적 상태나 비용, 프라이버시, 사회적 낙인을 이유로 위민온웹을 찾는다고 밝혔다”며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임신중지 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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