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에 대해 군부를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식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얀마 내 민주 진영이 출범한 ‘국민통합정부’가 로힝야 등 소수민족을 시민권자로 명확히 인정하느냐가 앞으로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리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기독교행동’은 26일 오후 서울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발제에서 미얀마 내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던 시기에도 반민주‧반인권 문제가 상존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3년 8월8일 미얀마 양곤에서 열렸던 88항쟁 25주년 행사 현장 사진을 소개했다. 전년도부터 미얀마 서구 라카인주에선 소수민족 로힝야 학살이 벌어졌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기자가 26일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서울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기독교행동’ 유튜브 갈무리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기자가 26일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서울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기독교행동’ 유튜브 갈무리

이 기자는 “민주화 이행기에 한쪽에선 너무나 처절한 비극의 현장이 벌어지고, 다른 쪽은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다. 행사를 취재하면서도 그 공기가 굉장히 불편했지만, ‘절대군정’에서 민주화에 이르는 여정의 복합적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희망은 이젠 짓밟혔다”고 했다. 아웅산 수치와 학생 대표인 민 코코나잉을 비롯한 사진 속 참석자들은 현재 구금됐거나 수배 중이다.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들을 주축으로 임시정부 성격의 ‘국민통합정부(NUG‧National Unity Government)’가 지난 16일 출범하고 장‧차관 등 내각을 발표했다. 민주 진영은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통합 정부를 구성했지만, 이 기자는 신호가 여전히 이중적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장관 15명 중 6명, 차관 12명 중 6명이 소수민족 출신이란 비율을 볼 때, 또 연방업무국과 여성‧청년‧아동부와 장관을 뒀다는 점에서 강력한 출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면서도 “전형적인 반-로힝야 발언을 해온 복지부장관이나 로힝야를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제거를 주장해온 국방부 차관 등 문제 인사가 4명”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미얀마 내각을 인종주의 발언의 흑역사 없는 관료로 구성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며 “그럼에도 고무적인 것은 두 장관에 미얀마 청년세대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Z세대 활동가들은 장관직 조건으로 이들 장관에게 과거 발언에 대한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미얀마 정치에서 과거 불가능했던 절차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기자가 26일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서울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기자가 26일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그는 소수민족의 시민권 이슈가 앞으로 미얀마 사태에서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봤다. 이 기자는 “1982년 개정된 미얀마 임시헌법(charter) 조항에 근거해 로힝야족이 시민권을 박탈 당했다”며 “문제는 NUG가 기존 악법을 폐기할지 명시하지 않았다는 거다. 로힝야 단체는 물론 청년 학생운동단체 활동가들은 NUG에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NUG가 미얀마 시민들의 군부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대변할지도 마찬가지다. NUG는 수차례 군부와 대화를 강조하는 등 시민들에 비해 온화한 입장이다. 이 기자는 “미얀마 시민들은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이 참석한) 아세안정상회의 성명 내용을 강하게 비판하는 등 매우 강고한 입장인 반면, NUG는 군부와 관계에서 ‘대화’란 단어를 주요 키워드로 사용해왔다. 다수 미얀마 시민들은 ‘처벌도 모자랄 판에 왜 대화란 단어가 나오지’라며 의아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NUG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최우선 현안인 상황. 이 기자는 “현재까지 NUG를 미얀마 정부로 인정하거나 미얀마 군을 정부로 불인정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국제기구나 정부는 한 곳도 없다”며 “한국 정부는 군부가 결성한 ‘국가행정평의회’에 대해 적어도 ‘정권을 찬탈한 반란세력을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자는 “한국 시민사회도 미얀마 군부와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이 26일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서울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이 26일 ‘미얀마 사태 핵심쟁점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미얀마 군부와 연계된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대응 방안을 논했다. 일례로 포스코인터내셔널과 가스공사는 미얀마 군부의 핵심 자금줄인 미얀마국영석유가스회사(MOGE)와 가스개발을 벌이는 등 합작 사업을 벌여와, 미얀마와 한국 시민사회는 사업 철수를 요구해왔다. 

나 국장은 “한국 정부가 외교정책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어디까지 우선순위로 배치할지를 둘러싼 질문”이라며 “이를 계기로 한국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할 때 미얀마뿐 아니라 다른 독재정권에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압박할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나 국장은 “사기업 투자에도 정부가 개입할 법적 근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는 이미 법적 정비가 완료된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미얀마 군부는 NLD의 승리로 끝난 지난해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며 지난 2월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시민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 집계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26일(현지시간)까지 753명이 숨졌으며 4484명이 체포·기소되거나 구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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