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가 방송작가 2인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복직을 MBC에 권고한 가운데,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서도 MBC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22일 서울 마포구 방문진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사회에서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MBC는 지난 20일 중노위로부터 판정서를 송달받아 내부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중노위는 MBC 보도국에서 일했던 두 명의 방송작가들을 원래 자리에 복직시키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일했을 경우 받아야 했던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MBC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판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안에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신인수 방문진 이사는 “MBC가 대승적으로 생각하셔야 할 것 같다”고 당부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인 신 이사는 과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법률대리인을 맡은 바 있다. 그는 “만약 이 사건에서 MBC가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1심까지 적어도 8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이렇게 이긴다 한들 누가 이긴 건가”라며 “회사에서 왜 비정규직 문제를 한 번에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지 맥락과 배경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더이상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땜질 처방하기엔 시대적 환경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신 이사는 이어 “지난번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지상파 재허가 공통 조건으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콕 집어 이야기했다”며 “더 이상 수세적으로 지노위, 중노위, 인권위 결정에 따라 접근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우리가 같이 근로조건 개선 고민하겠다’며 적극 문제를 해결하고 진취적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MBC 경영진을 향해 “노조가 반대하면 노조도 설득하고, 구성원들이 위화감이 느껴진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하면 구성원도 적극 설득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MBC 출신 이사진은 신 이사 제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MBC 경영진 출신의 김도인 이사는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건 단순한 비정규직 처우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이 사람(방송작가)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면 MBC가 작가들을 쓰는 방식, PD와 작가의 일 배분 등 모든 게 다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MBC가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대외적 명분 때문에 이 사람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MBC가 그동안 너무 무분별하게 작가를 많이 쓰고 일회용품처럼 함부로 소위 ‘자른다’고 했던 부분에 대해 굉장히 반성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근로자성을 인정한다는 것보다는 좀 더 정교하게 계약제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대전MBC 사장 출신의 유기철 이사도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말을 더했다. 유 이사는 지난해 대전MBC에서 불거진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사건을 이번 일에 빗대었다. 그는 “대전MBC 건은 남자 아나운서와 동일업무를 시키면서 여자만 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방송작가들은 겹치지 않는 독립적 일을 한 거다. 그런데 근로자처럼 대한 게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발목이 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별과 불공정 이슈는 아닌 거 같다”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나. 이런 식이면 각 방송사들이 방송작가 직종을 줄이거나 없애는 식으로 갈 것 같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는 “이번에 MBC에서 문제가 된 건 역설적으로 노동인권에 대해 친화적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는 분석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절차가 있는데 ‘(행정소송) 포기하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환경노동위원회)은 MBC가 작가들을 복직시켜야 한다며 “MBC가 비정규직 방송자들을 위하는 대표 방송사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지난달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지난달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이 같은 의견에 신인수 이사는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백화점이 딱 두 곳 있다. 하나가 학교 하나가 방송사”라고 지적하며 “가장 노동자를 존중하고 노동권을 존중해야 하는 학교와 방송사에서 가장 많은 비정규직을 연유 불문하고 사용하고 있다는 건 기막힌 아이러니이자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MBC ‘뉴스데스크’에선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에 문제가 있다, 플랫폼노동에 문제 있다고 보도하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공영방송이라면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을 법원과 노동위에 맡겨 판단할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과감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줬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른 이사진들도 MBC의 신중한 판단을 촉구했다. 최윤수 이사는 “개별적으로 근로자성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중노위 판정 수용 여부가) 미칠 영향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서 과연 법적 절차를 진행했을 때 가능성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상균 방문진 이사장은 “이 사안이 간단히 흑백 논리로 양단에서 해결할 사안 아니란 걸 이사회 분위기만 봐도 안다”며 “오랜 세월 방치하고 묵인되어온 것이 터졌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업무 관행이나 비정규직과의 협조 문제도 원점에서 재검토를 해봐야 한다. 소송에서 이긴다하더라도 그 관행을 바꾸지 않고서는 또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사항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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