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저작권 있잖아. 그러니 자아 실현할 수 있는 거야.” 웹툰작가를 비롯한 문화예술미디어 노동자들이 흔히 듣는 말이다. ‘자율성’과 ‘자아실현’ 개념이 예술 미디어 산업을 설명할 때 대두되지만, 현실에선 기업이 노동자를 통제하고 착취 문제를 개인에 돌리는 데 활용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20일 ‘창작노동에 대한 권리보장’을 주제로 예술노동포럼을 진행했다.

조은별 노동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미디어산업 종사자는 ‘성공’하기 어렵고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놓이지만 보람을 느껴 계속 일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많은 연구가 ‘자아실현 가능성이 있다면 이 정도 불안정성은 개인 책임’이라는 관점의 결과에서 나아가기 어려웠다”며 “그러나 자율성을 강조할수록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착취를 지속하는 결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근 몇 년 충격적이었던 건 노동유연화가 고용관계가 사라질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는 플랫폼노동이 증가하기 훨씬 전부터 창의노동, 즉 미디어산업에선 너무 당연시돼왔다”며 “자율성과 자아실현 가능성이 노동유연화에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조 연구위원은 “창작자 자율성을 보장할수록 큰 성과를 거둔다는 얘길 흔히 하지만, 방송사 메인PD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차 그렇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고 했다. “이들은 창의적 자율성과 조직생활에서 인정, 상업적 압박 등 사이에서 자율성을 조정하고 있었다.” 기업이 특히 창작 자율성을 강조하는 프로젝트 작업은 어떨까. 조 위원은 “연구들에선 작업자들이 불안정한 노동형태에서 성과를 내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착취를 지속하는 결과로 나타난다”고 했다. 

조 연구위원은 “기업이 노동자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먼저기에 온전한 자율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자율성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통제를 동반하는 모순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며 “창의노동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자기착취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창의 노동에 따라붙는 ‘자율성’은 기업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모든 것을 노동자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이중사슬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실에서 저작권은 사용자가 노동자 권리를 제한하는 구실이다. 웹툰 기업들은 작가들의 고용보험 요구에 MG(미니멈 개런티), 즉 저작권 수익을 선지급한다는 이유로 이들이 용역도 아닌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독립PD와 동화작가, 번역작가의 경우 방송사나 출판사가 저작권을 가져가는 매절계약을 맺거나, 번역자 이름을 출판물에 표기하지 않는 등 저작인격권(크레딧권)을 무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2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창작노동에 대한 권리보장’을 주제로 예술노동포럼을 진행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페이스북
▲문화예술노동연대는 2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창작노동에 대한 권리보장’을 주제로 예술노동포럼을 진행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페이스북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사무국장은 “현행 법체계 아래 창작노동자는 자기 창작물이 거둔 수익 규모를 알 권리가 없다. 저작권을 양도받은 이가 제3자에 권리를 팔아도 그 계약내용도 알 수 없다. 동료가 일반적으로 어떤 계약을 맺는지도 알지 못한다”며 “정보의 비대칭성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맺은 계약이라면 이후 수정할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씬정석 뮤지션유니온 조합원은 “공연예술 등에선 건건이 계약이 이뤄져 사용자를 특정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조합원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섞여 사용자집단처럼 묶이고, 이 관계를 ‘동료의식’으로 포장한다. 사용자 찾기 운동에 나서 창작노동자 지위 찾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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