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위해 급기야 ‘백신 특사론’까지 꺼냈다. 지금까진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중·미 무역갈등을 이용해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이 부회장 사면을 요구해오다 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까지 사면 근거로 끌고 왔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 ‘이재용 사면 보도’에 가장 적극적인 매체는 중앙일보다.

22일 중앙일보는 “이재용 ‘백신 특사론’…“반도체 지렛대로 백신 확보해야” 3면 기사에서 “정·재계에선 그동안 글로벌 인맥을 배경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백신 특사’를 맡겨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고 밝혔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며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관련 발언도 전했다.

▲22일 중앙 3면
▲22일 중앙 3면
▲22일 중앙 사설
▲22일 중앙 사설
▲22일 동아 6면
▲22일 동아 6면

중앙일보는 미국이 반도체 등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 무역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한 상황을 두고 “삼성전자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투자를 발표하고, 그 대신 미국으로부터 백신을 추가 공급받자”는 제안도 언급했다. 이와 관련 사설에서 다시 “우리가 현실적으로 미국을 도와줄 분야는 미국 정부가 애태우고 있는 삼성전자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증설”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등판이 불가피하다”고 적었다. ([사설] 한·미, 백신과 반도체로 결속력 더 강화해야)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체육계 활동까지 언급됐다. 중앙일보는 “고 이건희 회장이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것처럼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발언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이 “2002년부터 국내 인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에 초청받아 거의 매년 참석해왔다”거나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 배치 정국으로 한·중 관계가 불편했던 2019년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의 고향인 산시성 시안 공장에 80억 달러 추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22일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1면 모음.
▲22일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1면 모음.

 

특혜 사면에 “특혜 주자는 건 아니”라는 언론인

중앙일보는 9개 전국단위 아침 종합일간지 중 ‘이재용 사면’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룬 매체다. 지난 17~21일 중앙일보는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조명한 보도를 6건 냈다. 동아일보는 5건, 조선일보는 4건 등이다.

● 중앙일보 관련 보도
5대 경제단체장 '이재용 사면' 건의 (17일 1면)
[이하경 칼럼] 이재용 부회장에게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19일 31면)
[사설] 세계 반도체 전쟁 속 삼성 총수 부재가 아쉽다(19일 30면)
"이재용 부회장에 다시 기회줘야" 조계종 26개 교구 주지들 탄원서(21일 2면)

● 조선일보 관련 보도
경제5단체장 "통상위해 국가가 나서라, 이재용도 사면을"(17일 17면)
삼성가, 최소 1조 사회공헌 바표한다(21일 B1면)
지금 급한 건 한미 '반도체 백신 동맹'(21일 1면)

● 동아일보 관련 보도
홍남기 "이재용 사면 건의, 관계기관에 전달"(20일 12면)
손경식 경총회장 "홍남기 부총리에 이재용 사면 건의"(17일 6면)
조계종 25개 교구본사 주지들 "이재용 선처를 (21일 12면)

중앙일보는 지난 17일 한국경총을 포함한 5개 경제단체장이 이 부회장 사면을 건의했단 소식을 1면에 냈고 조계종 26개 교구 주지들의 같은 주장도 21일 2면에 비중있게 실었다.

▲19일 중앙 31면
▲19일 중앙 31면
▲21일 중앙 2면
▲21일 중앙 2면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부사장)은 칼럼을 써 이 부회장에게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고 밝혔다. 이 주필이 사면 주장을 위해 활용하는 수단도 ‘중·미 반도체 무역 갈등’이다. 매출규모 61조원의 삼성전자 법인의 경영 판단을 총수 개인의 결정권으로 환원하는 왜곡도 깔렸다. “미국이 중국을 아프게 때리는 지금이 한국 기업에는 한숨 돌릴 기회”인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이 부회장의 부재는 뼈아프다”는 식이다.

경제 위기는 사면론이 지펴지는 내내 활용됐다. 이 주필도 “한국 경제에 불이 났다면 비상구가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돼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라고 썼다. 그는 “‘재벌 3세 이재용’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고 그가 국가를 위해 글로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도 밝혔다. 대통령 측에 86억원 상당의 뇌물을 주고 그만한 회삿돈을 횡령해 징역을 사는 이를 그의 경제적 지위를 이유로 특별 사면하는 건 특혜다.

▲22일 한겨레 14면
▲22일 한겨레 14면

 

한편 한겨레는 고 이건희 회장 재산의 상속 방식을 두고 상속인들 간 재산 분배는 이 부회장 몫을 키우는 쪽의 안을 따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팔아 재원을 마련할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이견이 분분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삼성 지배주주의 보통주 기준 삼성전자 지분 20.9% 가운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은 15%여서 나머지는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법원 “일본에 위안부 배상 책임 못 물어”… “뒤집힌 정의”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각하되자 한겨레는 보도 제목에 ‘뒤집힌 정의’라고 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이날 이용수 할머니, 고 곽예남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하며 ‘국가면제’를 인정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 판결이다.

▲22일 경향 3면
▲22일 경향 3면
▲22일 국민 5면
▲22일 국민 5면

 

재판부는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을 갖는지에 대해 한국 헌법과 법률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가면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할 사항”이라며 “법원이 매우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며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국가면제는 “한 나라의 법원이 다른 나라 정부의 주권 행위에 대해 재판 관할권을 가질 수 없다는 규범”이다.

이는 다른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1차 소송’ 결과와 반대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재판부는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는 반인권적 행위까지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국가면제를 부인했다.

▲22일 한겨레 1면
▲22일 한겨레 1면
▲22일 한국 1면
▲22일 한국 1면

 

한겨레는 이번 재판부가 ‘대체적 권리 구제 수단’으로 12·28합의를 지적한 데 대해 “그러나 이 판결이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두 나라는 여전히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해차’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 해묵은 난제와 오염수 방류라는 새로운 악재로 시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2·28합의는 2015년 박근혜 당시 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협상, 타결해 최종 종결을 약속했다’며 서명한 합의다. 한겨레는 “‘중국의 부상’에 한·미·일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에 밀려 합의에 이르고 말았다”고 적었다.

중앙일보는 이번 판결이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통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 모색을 주문했다”며 “한·일 과거사 문제가 문재인 정부 지난 4년 동안 ‘사법’의 영역에 있다가 다시 ‘외교’의 영역으로 방향타를 틀었다”고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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