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편향 논란에 휩싸인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문제의 불씨가 감사원 감사까지 옮겨붙고 있다. 감사원이 TBS도 직무 감찰 대상이라고 선언하고 나서면서다. 최재형 원장이 이끄는 감사원도 TBS 흔들기에 가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함께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 당시 KBS 사장 해임에 앞장섰던 과거사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20일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답변서를 보면, 감사원은 ‘TBS가 서울시 미디어재단 TBS는 감사원 감사 대상인지’, ‘서울시는 TBS에 연간 예산 약 400억원 지원·출연료, 비용 지출 등이 적절하게 집행되었는지에 대해 감사가 가능한지’ 등의 질의에 “서울특별시 출연기관인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티비에스(TBS)’는 감사원법제23조 제2호 및 제24조 제1항 제4호 등의 규정에 따라 감사원의 회계검사(예산 집행 등 포함) 및 직무감찰 대상”이라고 답했다.

감사원법 제23조(선택적 검사사항)의 2는 감사원의 검사 대상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보조금·장려금·조성금 및 출연금 등을 교부하거나 대부금 등 재정 원조를 제공한 자의 회계”를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24조(감찰사항)의 1항 4호는 “법령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위탁하거나 대행하게 한 사무와 그 밖의 법령에 따라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거나 공무원에 준하는 자의 직무”를 직무감찰 범위로 두고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정치적 목적의 방송장악에 앞장선 전례가 있다는 데 있다. 감사원은 13년 전인 이명박 정부 초기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몰아내는데 앞장서면서 핵심 역할을 했다.

감사원은 지난 2008년 8월5일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요구안을 KBS 이사회에 제출했다. 당시 감사원은 해임사유로 △취임 이후, 인력감축 요인이 있었으나 구조조정 노력없이 상위직 비중 증대 및 인건비·복리후생비 편법 인상으로 지출구조 악화 △사장 재직 4년간(2004년부터 2007년까지) 누적 사업손실액이 1173억여원에 이르는 등 적자구조 만성화 △인사관리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아 조직 내 갈등 야기 등을 들었다. 감사원은 경영상 문제로 ‘예산 편성 시 광고수입 과다 편성’, ‘퇴직금누진제 유지’, ‘법인세 등 환급소송 졸속처리’를 제시했고, 조직운용 측면에서 ‘부당한 특별승격 및 팀장 인사’도 꼽았다. KBS 이사회는 이 같은 감사원의 해임요구안을 근거로 그해 8월8일 해임제청안을 일방처리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달 11일 해임안을 결재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사진=TBS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사진=TBS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2월23일 정연주 전 사장이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무효소송에서 해임을 취소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대법원은 1심의 판결을 모두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명박 대통령(국가)이 해임처분을 할 때 해임처분의 법적 근거와 구체적인 해임사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고, 의견제출 기회를 제공하지도 않았다며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임처분이 당연무효라 할 만큼 명백한 하자는 아니지만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해임처분의 사유를 두고 재판부는 정 전 사장 재직시 적자경영 구조가 만성화됐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히 경영측면에서 △광고수입 과다편성 △15.29%의 임금인상 △퇴직금누진제 미폐지 등과, 조직운용 측면에서 △팀제도입으로 인해 상위직의 과도한 증가 △지역방송국 폐쇄 송중계소 무인화에도 정원감축 부재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또 방송시설 부실운영과 관련 △수원센터 부실운영 △신관 별관 중복투자 △감악산 중계소 파행운영 등 감사원이 제시한 정 전 사장의 해임사유에 대해서도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정되지 않는 사유도 명백히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가장 핵심 쟁점이었던 정 전 사장의 법인세 환급소송 중단 결정으로 KBS에 손실을 입혔다는 감사원 주장을 들었다. KBS가 법인세를 부과한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계속했으면 514억원을 더 받아낼 수 있었는데, 정 전 사장이 노조의 경영책임 추궁을 면하고자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해임사유였다. 이에 재판부는 정 전 사장이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인 것이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최종 사법판단 이전엔 알 수 없으며, ‘조정’이라는 것 자체가 법원의 관여 아래 합의에 따라 종결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KBS가 과세 관청과 합리적인 의견 조율을 거쳤으며 △안팎으로 많은 검토와 협의를 거친 뒤 결정한 것일 뿐 아니라 △노조가 이 문제로 정 전 사장 퇴진을 관철시키려 했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결정이 KBS에 손해를 끼쳤다는 취지의 감사원 주장은 해임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문제는 검찰이 배임행위로 판단하고 기소했던 사건이었다. 검찰 기소사건 역시 대법원은 정 전 사장을 무죄 확정 판결했다.

이밖에도 행정법원 재판부는 근무성적이 낮은 자의 승진인사 등 인사를 문제삼은 감사원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성과 창의력을 요하는 방송사업의 특성상 근무성적 등만이 아니라 대인관계, 평판, 리더십, 전문성, 비전 등과 같은 비계량적 자료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재량권 한계를 벗어난 인사권 행사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정연주 전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만성적인 경영 적자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두고 재판부는 해임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다면서도 ‘수신료 동결 장기화’, ‘제작비 대폭 상승’, ‘디지털 전환비용 증가’, ‘난시청 해소’ 등 공적 책무를 위한 지출비 증대와,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 보장을 위한 임기제를 감안할 때 해임처분의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더 높게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KBS 사장 해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재판부는 재량권 일탈과 남용의 위법이 있다해도 ‘당연무효’까지 보기 어렵고, 앞서 언급한 행정절차법 위반 역시 위법하지만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볼 수는 없어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을 정당하다고 인정해 판결을 확정했다.

감사원이 앞장선 정연주 해임은 절차상 위법하며, 해임사유도 무리하다는 법적 판단이 3년 여 만에 나온 것이다. 정 전 사장은 KBS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밀린 임금 2억7000만원의 배상하라는 판결도 받았다(2014년 11월 확정판결).

2008년 8월5일 감사원의 정연주 해임요구안 결정 당시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은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구로서의 처신과 자존심을 버리고 권력의 주구가 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인다”고 비판했고,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국세청 검찰에 이어 감사원도 이젠 정권의 개가 되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감사원이 이 같은 불행한 방송장악의 과거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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