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기자가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직전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 김태현에게 물었다. “화면 보고 있을 어머니께 할 말씀 없냐.” 김태현은 “볼 면목이 없습니다. 솔직히”라고 답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해당 질문이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수사를 마친 서울 도봉경찰서는 지난 9일 김태현에게 살인 등 5개 혐의를 적용해 이 사건을 검찰 송치했다. 이 과정에서 김태현은 경찰서 앞 포토라인에 섰다. 시청자들이 보는 화면을 기준으로 포토라인에 선 김태현씨의 왼쪽엔 SBS 기자가 오른쪽엔 MBN 기자가 자리했다.

▲신상공개가 결정된 김태현씨가 지난 9일 서울 도봉경찰서 앞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 중 “화면 보고 계신 어머니께 할 말씀 없냐”는 질문은 불필요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진=YTN 영상화면 갈무리.
▲신상공개가 결정된 김태현씨가 지난 9일 서울 도봉경찰서 앞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 중 “화면 보고 계신 어머니께 할 말씀 없냐”는 질문은 불필요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진=YTN 영상화면 갈무리.

복수의 서울 북부지역 경찰 출입 기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대표로 질문하기로 한 MBN 기자는 지난 9일 오전 9시 검찰로 송치될 김태현에게 질문할 내용을 기자들을 대표해 미리 취합했다. 서울 북부지역 경찰 출입 기자들은 총 74명. 취합된 질문들은 ‘심경’, ‘피해 유가족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스토킹 혐의 인정하냐’, ‘왜 죽였냐. 집엔 왜 갔나’, ‘정확히 언제부터 계획했냐’, ‘왜 자해했냐’, ‘범행 후 3일간 뭐 했냐’, ‘변호인 조력 왜 거부했냐’, ‘앞으로도 (변호인) 조력 안 받을 건지’, ‘하고 싶은 말’ 등이었다.

질문이 다 취합된 후 현장에 도착한 SBS 기자가 ‘화면 보고 있을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이라는 질문을 추가하자고 MBN 기자에게 말했다. MBN 기자는 해당 질문을 하지 말자고 한 차례 거부했으나, SBS 기자는 질문 목록에 넣자고 다시 말했다. 질문을 취합한 MBN 기자는 결국 ‘예비용’ 질문으로 해당 질문을 적어뒀다.

MBN 기자와 SBS 기자는 순서대로 질문을 시작했다. ‘심경’, ‘피해 유가족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왜 죽였냐’, ‘스토킹 혐의 인정하냐’ ‘정확히 언제부터 계획했냐’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5개의 질문이 남았으나 SBS 기자는 원래 하기로 한 질문들을 다 하기 전에 자신이 제안했던 질문을 했다. 이에 몇몇 경찰 기자들은 가해자 어머니와 관련한 질문이 불필요했다고 지적한다.

방송사의 A기자는 “화면 볼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라는 게 도대체 어떤 공적 가치를 지닌 질문인지 모르겠다. 특정 기자가 일방적으로 넣은 질문인 것 같은데, 예능이나 쇼가 아니다. 연좌제도 폐지됐다. 김태현이 먼저 저 이야기를 꺼냈으면 몰라도 기자가 유도해 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의 B기자는 “피의자와 범행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어머니까지 끌어들였다”고 꼬집었다.

당사자인 SBS 기자는 13일 미디어오늘에 “해야 하는 질문과 하지 말아야 하는 질문의 기준은 무엇이냐”고 되물은 뒤 “피의자에게 피해자의 입장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김태현 본인의 가족들은 이번 범죄로 인해 쫓기듯 이사하는 처지가 됐는데 그런 상황에 대해서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지 하고픈 말은 없는지 등을 묻고 싶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SBS 기자는 “제가 되묻고 싶다. 심경, 동기, 3일 동안 피해자 집에서 뭐 했는지 묻는 건 괜찮나. 만약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김태현이 했을 경우 소중한 사람을 동시에 떠나보낸 유가족이나 지인들은 또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언론의 역할은 그 사람의 개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다”고 설명한 뒤 SBS 기자의 질문을 가리켜 “보도의 목적을 잃어버린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도 “보통 사건 사고가 나면 동네를 찾아가 가족이나 주변인 인터뷰를 많이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정보 값이 없는 내용이다. 사건의 실체와 관계없는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할 말 없냐는 질문 역시 불필요하다. 사건 사고 보도는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돼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자는 사건 관련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질문은 무제한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한 뒤 “신상공개의 목적은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 두 가지다. 앞으로 이런 사건의 피의자 신상 공개가 많이 될 것이다. 언론은 신상 공개가 허용될 때 피의자에게 어떤 질문을 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어떻게 충족시키고 재발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기반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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