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의 “투기마다 등장하는 ‘공무원 부인’들 공무원 남편 망치고, 패가망신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논란이다. 경기도청 공무원들뿐 아니라 여성단체들도 비판성명을 내 “여성에게 책임을 돌린다”며 사설 삭제를 요구했다. 

경기일보는 지난달 31일 부동산 투기 혐의로 포천시 공무원이 구속된 사건, 경기도청 공무원 원삼면 투기 등 사건에서 공동명의자가 부인이거나 부인 이름으로 부동산 거래를 한 점을 거론하며 “남편 공무원의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부인들이다. 남편과 공모해 개발지를 누비던 부인들”이라고 비판했다. 

경기일보는 “공직자에게 배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며 “이들의 희생과 절제 없이는 올곧게 수행할 수 없는 길”이라고 한 뒤 “그렇지 못한 배우자들의 비극을 지금 보고 있다”고 했다. 또한 경찰의 수사진행 사실을 언급하며 “여러 건에서 부인 등 가족의 이름이 거명될 것”이라고도 했다. 

▲ 지난달 31일자 경기일보 사설
▲ 지난달 31일자 경기일보 사설

이어 이 신문은 “남편의 의도인지, 부인의 계획인지 사건마다 실체적 진실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 역할을 바뀌지 않는다”며 “30년 공직의 뒤에 배우자, 남편을 영예롭게 한 부인이다. 투기 공직의 뒤에도 배우자, 남편을 패가망신시킨 부인이다. 많은 부인들은 전자(前者)에 산다”고 했다. 

이에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자주여성연대, 경기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은 지난 6일 논평에서 “원인제공을 한 인물로 ‘부인’을 등장시켜 마치 70년대 당시 ‘복부인’의 이미지, 즉 ‘투기=여성’으로 일반화한 이미지”라며 “이것이 온통 ‘부인’을 잘못 둔 ‘남편 사람 공무원’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로 대고 있는데 이는 논리의 비약이며 명백히 여성 혐오의 한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명예로운 공직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수많은 ‘부인’들이 있단다. 이때의 부인은 평생 남편의 뒤에서 묵묵히 공직의 길을 가도록 그림자 노릇을 해야 하는, 이차 생계부양자 위치에 놓는 것으로 ‘부인’의 역할을 규정한다”며 “이 무슨 성인지 감수성 없음이며 시절 지난 논리인가”라고 지적한 뒤 “사설을 취소하고 게시물을 내릴 것”을 주장했다. 

▲ 경기일보
▲ 경기일보

지난 8일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 등 3개 공무원노조는 “경기일보는 일부 공직자 불법 투기 문제를 공직사회에 만연한 것으로 오해하도록 사설 논조를 내고 불법 땅 투기를 한 공무원 당사자의 책임을 공무원 부인 탓으로 돌려 자칫 땅 투기는 여성이 하는 것처럼 일반화하는 여성혐오 의식을 만들어냈다”며 “경기일보의 이런 왜곡된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 없는 여성혐오 사설에 대한 성찰과 경기도청 공직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신연숙 경기도청 인권담당관 성평등옴부즈만 역시 사설에 대한 사과와 게시중단을 주장하며 경기도청 행정망 내 익명게시판 글 일부를 인용했다. 

익명의 게시자는 해당 글에서 “이게 뭔 여성혐오적 기사지요? 여성으로서도 공무원으로서도 불쾌하기 짝이 없네요. 신문사가 이렇게 성차별적 기사를 사설로 써도 되나요”라며 “경기일보에 화가 난다”고 했다. 

해당 글에는 “부부가 공동으로 합의해서 투기를 한 거지, 공무원 부인이 뒤에서 속닥속닥해서 청렴한 공무원 남편을 꼬드긴 것 처럼 기사 제목을 뽑은 것 같이 보이는 건 저만 그런가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신연숙 성평등옴부즈만은 여성단체와 노조의 주장을 전하며 “이 일을 계기로 지역에서 신뢰와 신망을 받아 온 경기일보가 이번 사설을 계기로 성인지 감수성을 돌아보고 앞으로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를 요청 드린다”며 “한겨레와 부산일보 등 매체들이 하나 둘, 사내 ‘젠더데스크’를 마련해 자체적으로 기사를 점검하고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음을 참고해달라”고 했다. 

▲ 12일 김종구 경기일보 주필의 반박 칼럼
▲ 12일 김종구 경기일보 주필의 반박 칼럼

이에 경기일보 측은 반박 입장을 내놨다.

12일 김종구 경기일보 주필은 칼럼 “사과할 글을 쓰지 않았다-경기도 공무원노조의 성명에 대해-”에서 “책임을 여성에 돌렸는지 보자. 성명은 사설의 ‘논조’를 거듭 지칭하고 있다. 이번 공무원 투기에 대한 경기일보 논조는 분명하다. 범죄의 출발은 공무원에 있다. 남편에서 시작됐다. 다소 지겹도록 이 논조를 써왔다. 사설 작성자인 나도 칼럼을 섰다. 3월25일자 칼럼 ‘그날, 공무원 아니라 땅투기꾼이었다’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주필은 “선량한 다수 공직자 부인들을 매도했는지도 보자”며 해당 사설에서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퇴임식에서 배우자가 함께 하고 함께 축하를 받는 장면을 쓴 부분을 인용하며 “많은 공무원 배우자를 소중히 평가하고 있다”며 “시대착오가 아님도 그 문장 속에 있다. 이 부분에선 ‘부인’이라 쓰지 않고 ‘배우자’라 썼다”고 했다. 이어 “범죄 가담자로 특정된 앞선 ‘부인들’과 구분하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김 주필은 “여성 혐오 인식 소유자, 성인지 감수성 부족자. 참담한 표현이다. 회복 안 될 명예훼손”이라며 “나의 뇌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인식이 1180자 어딘가에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 증명해달라. 끝까지 다 읽고, 정확히 찍어 주기 바란다”며 여성혐오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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