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11일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지 오늘로 2주년을 맞았다. 관련 운동을 이끌어온 단체들이 2주년 기념 행사를 열고 “임신중지는 국가가 모두에게 보장할 공공 의료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의료인 교육부터 건강보험 적용 등 의료 체계 전반을 개선하는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인근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주년 기념 토크쇼’를 열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나영 공동행동 집행위원장, 박김예림 예술활동가,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이 패널로 나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남은 사회적 과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임신중지를 공공 의료이자 필수 의료 서비스로 재편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나이, 장애 유무, 성정체성, 재산 등과 무관하게 필요한 당사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예훈 전문의는 “이와 정반대가 지금 현실”이라며 “당장 어떤 병원을 갈지, 수술과 약물 중 뭘 택할지, 무엇이 나에게 적절한지, 시술 과정은 어떤지 등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병원이 요구하는 금액대로 내야 하는 게 현재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인근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주년 기념 토크쇼’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1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인근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주년 기념 토크쇼’를 열었다. ⓒ손가영 기자

당장 걸림돌은 임신중지를 범죄로 간주한 오랜 사회적 편견이다. 최 전문의는 “임신중지가 권리가 된다는 건 성적 권리과 재생산권리를 책임지고 담당하는 지역 유관 관계자들, 예로 들면 학교나 상담소, 병원, 관련 시설 등이 정확한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공적 서비스란 걸 인식시켜야 한다는 뜻”이라며 “낙인을 없애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정부 모습은 찾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우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비용을 낮추고 모든 지역의 1차 의료기관 등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임신중지 건강보험 급여화’가 핵심이다. 최 전문의는 “건강보험에 편입시키는 건 이 서비스가 공공의료라는 사회적 동의”라며 “특히 의료인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유효한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임신중지를 포함해 피임, 응급피임 등이 모두 급여화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산유도제(임신중단 약물)도 접근성을 대폭 늘리는 안이다. 관련해 해외처럼 숙련 간호사와 조산사에게 유산유도제를 처방할 권한을 주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대약품은 지난달 초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미프지미소’(Mifegymiso) 공급 계약을 체결해 현재 식약처 허가 과정을 밟고 있다. 미프지미소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약물로, 30여년 전 생산된 후 해외에서 꾸준히 활용되면서 사실상 안정성도 확인됐다. 아직 한국에 도입되지 않아 일부 여성들은 온라인을 통해 음성적으로 구매해야 했다. 최 전문의는 “정부가 지난해 낸 의료·상담 관련 가이드라인에도 약물 내용은 다 빠졌다”고 지적했다. 

최 전문의는 의료인 교육도 강조했다. 그는 “낙인을 없애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모든 의료인을 대상으로 임시중지, 피임 등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당사자들은 자신 신체에 알맞은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 의료진의 충분한 설명과 그에 기반한 권리 찾는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형법 제269조 및 270조 1항의 낙태죄 처벌조항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지난 1월1일부터 효력을 잃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 입법 공백 상태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지금은 해당 제한 조항 적용을 받을 필요가 없다. 당사자도, 시술을 한 의료진도 처벌받지 않고 누구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남은 입법 과제는 형법상 낙태죄를 페지하고, 모자보건법 14조 임신 중지 허용 한계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10월 임신중지 허용요건을 구체화하고 특정 상황의 여성에게는 상담 및 숙려 기간을 의무화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동행동은 이에 “‘국가가 불가피한 경우에 예외로 낙태를 허용하게 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사실상 박탈한다’는 헌법재판소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며 “임신중지 관련 서비스의 접근성도 현저히 낮추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처벌이 유지되는 한 의사들도 더 나은 진료를 하려는 노력 기울이지 않게 되고 결국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전가되는 방식이 유지된다. 이제 올해부터 처벌이 사라졌으니 지금까지의 부정의를 바로 잡는 운동으로 더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운동에서 나온 구호 “부자는 ‘낙태’하고, 가난한 이는 죽는다”를 언급했다. 처벌 조항이 남아있다면 가난하거나 배제된 이는 더 위험하거나 죽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구호다.

참가자 20여명의 피켓팅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이들은 “죄가 아닌 정당한 권리” “공적의료시스템 보장” “건강보험 급여화와 적절한 비용과 선택지 제공” 등의 문구를 피켓에 직접 썼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낙태죄 폐지 운동이 “노인, 미혼, 미성년, 성소수자 등 성적 권리가 금기시되는 이들을 포함한 모두의 성·재생산 건강 보장 운동으로 확장돼야 한다”며 “개인 자율성을 존중받을 권리부터 성적 활동성 여부·시기 등을 결정할 권리, 생애에 걸쳐 차별·강제·폭력 없이 재생산권에 필요한 정보, 자원, 서비스 등에 접근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주년 기념 토크쇼’ 행사 모습. ⓒ손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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