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도 기자단이 만들어졌다. 공수처의 취재 지원을 받는 매체 모임으로, 기자들이 출입 자격 및 기관이 정한 엠바고 파기 제재를 결정하는 구조는 여느 기자단과 유사하다. 자격 문턱을 낮추기 위해 기자단의 출입 심사 투표를 없앤 점은 차이점이다.

이달 초 기준 공수처 기자단에 등록된 출입 매체는 53개 사, 출입 기자는 122명이다. 지상파 3사를 포함한 방송사 14곳과 통신사, 종합일간지·경제지 및 인터넷신문 37곳, NHK 등 외신 2곳이 출입 매체로 등록됐다. 공수처는 지난 30일부터 ‘공수처 출입기자 등록부’를 마련해 출입 신청을 받았다.

출입 자격은 크게 2가지다. 매체가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서울외신기자클럽 등 8개 언론유관단체 소속일 경우를 자격으로 뒀다. 소속이 없는 매체 경우, 최근 한 달 간 보도한 법조 관련 기사 목록을 내게 했다.

기사 수 기준은 협회에 속하지 않았지만 건전한 언론활동을 하는 매체를 배제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보완코자 마련됐다. 가입 문턱을 아예 없앨 순 없다는 이유로 ‘최소 법조기사 보도량을 확인해야 한다’고 정했으나 몇 건을 기준으로 둘 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기준은 공수처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논의해서 정했다. 공수처도 다른 공공기관처럼 출입 기준을 스스로 정하지 않고 기관을 출입할 기자들에게 정하게끔 위임했다. 57개 매체 기자들이 지난 2월 중순부터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한 달 반 가량 논의해 결정했다.

▲공수처 출입기자 등록부.
▲공수처 출입기자 등록부.

 

“기자단 필요해?” 어떤 논의 오갔나

논의에선 기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논의 초반 “공보 원칙은 기관이 책임지고 정해 운영할 일이므로 특정한 결정권과 실체를 가진 기자단은 불필요하다”거나 “공수처가 언론 대응 방안을 정하기 전부터 기자들이 먼저 기자단을 만들고 운영방식을 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소수에 그쳤다.

기자단 필요성을 주장한 기자들은 기자단의 존재와 폐쇄적 운영은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단이 필요한 이유로 “공수처 수사가 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제된 정보의 공개와 유통을 무시할 수 없다”거나 “취재 질서 등과 관련된 규약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 기자단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수처도 초기부터 기자단을 염두에 뒀다. 지난 1월 김진욱 공수처장이 임명된 후 각종 공수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려고 카카오톡방이 임시로 개설됐으나 기자가 운영을 맡았다. 공수처로부터 기자 1명이 대표로 자료를 받아 직접 대화방에 공유하는 구조로, 기존 기자단의 간사와 다를 바 없었다. 당시 간사 역할을 맡아 대변인실과 소통하던 기자는 “공수처도 기자단 구성에 긍정적인 의향을 가지고 있으며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및 서울시경찰청 기자단 구조 도식화. 디자인=안혜나 기자
▲경찰청 및 서울시경찰청 기자단 구조 도식화. 디자인=안혜나 기자

 

“법조기자단 방식에 준해야” 주장도 나와

논의에 참여했던 A기자는 “일부 기자들은 여전히 구태에 젖어 있었다”고 전했다. 기자들이 ‘검증단’을 만들어 다른 매체의 자격을 심사하자는 제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최소 자격 기준으로 “6개월 간 법조 기사를 한 달에 30건 이상 내고 최소 기자 3명이 법조팀에서 활동해야 한다”며 “공수처 출입 기자 중 5명 이상을 무작위로 뽑아 ‘비공개 검증단’을 만들고, 신청 매체의 6개월 간 기사 목록과 인력을 검증해 검증단의 과반 동의로 출입 자격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출입 자격 기준을 정하면서도 이견이 오갔다. “기자단 최초 구성 논의에 참여한 언론사는 당연 등록하자”거나 “‘최근 ○년간 법조를 취재했으며, 한 달 ○건 이상 기사를 보도한 매체는 8개 유관 단체 협회에 속하지 않아도 기자단 자격을 얻는다’는 단서를 넣자”는 제안이 나왔다. 기사 건수를 두고 “최소 1년 법조 취재, 한 달 10건 이상 보도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자 또 다른 기자는 “하루에 1건은 법조 기사를 내야 하지 않느냐”며 “한 달 20건 이상”을 주장했다.

일부는 “구태로 돌아가지 말자”고 지적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검증단’과 관련해 “공수처는 기존 법조 기자단 영역 내의 출입처가 아니”라며 “출입 희망 매체는 출입 신청서와 신원 조회 동의서, 공수처가 검증 가능한 협회 가입 증명서를 함께 제출하면 될 일이지 이 절차에 기자 검증단이 개입할 이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양측 모두 기자단 당연 전제… 엠바고 제재 규칙도 완료

기자단은 이밖에 엠바고 파기시 처벌 수위를 다수결로 정했다. 엠바고는 통상 기관이 보도자료를 미리 기자단에 배포하면서 정하는 보도 시점이다. 정부 부처 기자단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통상 ‘경고’, ‘벌금(출입기자실 간식 구매)’, ‘징역(출입정지)’ 등으로 처벌 수위를 나눈다. 공수처 기자단은 ‘엠바고를 3번 어길 시 3개월 간 기자단 지위를 박탈’로 규칙을 정했다. ‘엠바고를 1번 어겼더라도, 기지단 3분의 1 이상이 문제제기할 경우 과반 투표에 과반 찬성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부칙도 통과시켰다.

공수처 기자단은 이달 초 간사·부간사를 뽑으면서 본격적으로 기자단 형식을 갖췄다. 기자단 일각에선 “관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거나 “공수처부터 기자단 관습에 편승했다”는 소수의견도 여전히 있다. A기자는 “애초부터 공수처가 특정 기자를 통해서 자료 등을 배포했는데 첫 단추부터 이미 기존 기자단을 따라 갔다”며 “기자단 투표가 사라진 건 한 발 나아간 부분이지만 이게 개선의 전부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구체적인 공보 원칙은 내부에서 계속 논의·검토 중이라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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