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프리랜서’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숨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이 마무리됐다. 이 PD가 사망한 지 1년 2개월, 그가 소송을 시작한 지 3년 7개월 만이다.

청주지법 제2-2민사부는 8일 오후 이 PD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 첫 공판을 연 뒤 변론 종결했다. 선고 기일은 내달 13일 오후 2시로 예정됐다.

이 PD 유족과 청주방송은 모두 이 PD 근무 실태에 대한 사실관계는 다투지 않겠다 밝혔다. 지난해 6월 발표된 ‘고 이재학 PD 사망 진상조사 보고서’의 사실관계를 인정한다며 이를 근거로 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8일 오후 1시 청주지법 후문 앞에서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대책위가 공정한 2심 판결을 촉구하는 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8일 오후 1시 청주지법 후문 앞에서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대책위가 공정한 2심 판결을 촉구하는 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진상조사보고서는 이 PD 측이 항소심 증거로 제출했다. 청주방송 측 변호사는 이에 “재판 내용과 관련된 보고서의 사실관계를 인정한다. 원고(이 PD)가 제시한 사실관계를 따로 반박하지 않겠다”며 “피고가 스스로 그만뒀다는 종전 주장도 철회하고 부당하게 그만두게 했다는 것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애초 법원 조정 절차로 마무리키로 했으나 청주방송이 관련 합의를 위반하면서 소송이 재개됐다. 청주방송은 지난해 7월 언론노조, 시민사회대책위, 유족 등 3개 단위와 이 PD 명예회복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27개 과제를 정해 청주방송의 이행을 강제한 합의다.

당시 청주방송은 이 PD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 내용을 담은 조정문도 합의로 정해 절차를 거치던 중, 지난해 9월 청주방송이 입장을 바꾸며 조정이 불성립됐다. 이후 지금까지 6개월 가량 유족, 시민사회대책위 등이 청주방송 합의 위반을 질타하며 대립해왔다. 그러다 최근 청주방송이 입장을 다시 바꾸면서 진상조사보고서 결과를 수용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 PD는 소송을 제기하며 “부당 해고된 2018년 5월부터 복직할 때까지 월 300만원 급여도 지급하라”고 밝혔다. 임금 셈법을 두고도 양측은 ‘월 300만원’에 준하는 산정 방식을 인정하며 서로 다투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측이 동일한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 재판부의 법적 판단만 남았다. 유족 등은 재판부가 이 PD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법적으로 가려내고 또 이를 어떻게 판결문으로 정리할 지에 관심을 가졌다.

▲8일 열린 대책위 회견에 참가한 유족 이대로씨. 사진=손가영 기자.
▲8일 열린 대책위 회견에 참가한 유족 이대로씨. 사진=손가영 기자.

 

유족 이대로씨는 변론 종결 전 최후 발언으로 “우리가 항소심을 하는 이유는 형(이 PD)의 의지를 유지하고 남은 동료들과 전국의 만연한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의지”라며 “사측도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마당에서 바라는 건 판사님께서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사실에 의해 좋은 판결을 내려 (유족이) 지난 싸움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꿔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PD 법률대리인도 “고인이 ‘무늬만 프리랜서’인 동료, 선·후배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중요한 선례를 남긴다는 차원으로 어렵게 결심한 소송이었다”며 “그의 노동자성이 구체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법률 평가를 통해, 판결문으로 확인되길 유족도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고인과 유족에게 여전히 끝나지 않는 숙제로 남겨질 것 같다. 잘 감안해달라”거 요청했다. 청주방송 대리인은 “제출한 서면으로 갈음한다”고 최종 변론을 마쳤다.

앞서 ‘이재학 PD 사망사건 시민사회대책위’는 재판 시작 1시간 전 청주지법 앞에서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2020년 청주지법 1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들과 배치되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하며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청주방송이 아무리 재판을 방해했더라도 청주지법이 올바르고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면 이 PD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제2, 제3의 이재학 PD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코 1심과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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