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탕으로 시작해 진흙탕으로 끝났다”

7일자 조선일보 기사제목이다. 4·7 재보선도 역시 수준높은 정책대결은 없었다. 네거티브, 좋은 말로 ‘후보자 도덕성 검증’이 공식선거운동기간을 잡아먹었다.

구체적으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당시 서울시가 국토해양부에 내곡동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는지 여부다. 내곡동은 오 후보 처가의 땅이 있는 곳이고 만약 오 후보가 당시 시장직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했다면 처가에 대한 특혜, 셀프보상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양상은 다소 복잡하다. 처음 의혹 제기는 지난달 9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캠프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이 제기했다. 오 후보는 처가 식구들이 상속을 받은 해당 토지에 대한 개발계획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이미 있었다고 반박했고, 민주당 측은 노무현 정부 때 계획은 계획일 뿐이며 최종 결정은 오 후보가 시장이며 이명박 전임 시장이 대통령이던 시점이었다고 주장했다. 

공방이 이어지던 중 KBS는 오 후보의 처가 땅 측량 당시 경작인들과 국토정보공사 측량팀장 등을 인터뷰해 ‘측량현장에 오 후보가 있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오 후보를 봤다는 증언, 사실 그 사람은 오 후보가 아니라 처남이었다, 처남은 당일 대학원 행사에 참석했다더라 등 논란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계속 퍼졌다. 두 후보의 TV토론에선 이에 대한 다소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고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일 오후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일 오후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그러다 측량 당시 오 후보가 인근 생태탕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는 식당 사장과 그 아들의 주장이 나왔다. 오 후보는 자신이 측량 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만약 생태탕집에 나타났다면 오 후보는 그 자체로 거짓말을 한 것이며 오 후보가 처가 땅 보상에 시장직을 이용했을 개연성도 커지게 된다. 생태탕 식당 측에서 당시 오 후보가 페라가모 신발을 신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사안은 이제 단순해졌다. 생태탕을 먹었냐, 페라가모를 신었냐.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서울신문·세계일보·중앙일보 등 다수 매체에서 이른바 ‘생태탕 선거’로 전락한 현재의 선거국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어떻게 인구 1000만명, 한해 40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대한민국 제1도시이자 수도 서울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생태탕과 페라가모로 귀결됐느냐는 지적이다. 교과서처럼 반복하던 서울시민의 삶을 해결할 정책비전이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 생태탕 관련 보도
▲ 생태탕 관련 보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한달간 이어진 뉴스의 흐름을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처음 의혹이 제기된 지 한달이 흘렀다. 그 과정에서 말그대로 진흙탕 싸움이 됐고 돌아보면 해당 의혹 하나가 현재 서울시장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맞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가운데 오 후보가 개입했는지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그날 생태탕을 먹었는지, 당시 페라가모 신발을 신었는지는 비교적 단순한 이슈다. 실제 최근 이틀간 포털에서도 생태탕과 페라가모 관련 뉴스는 많이 본 뉴스에 올랐다.  

여권의 프레임도 한몫했다. 박 후보 측에선 오 후보가 시장직을 남용했는지 문제 삼는 듯 하지만 실상 ‘거짓말 프레임’을 반복했다. 오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 후보가 처가 땅 보상 과정에 개입했는지 입증하는 건 어렵지만 이 과정에서 누가 서명을 했는지, 측량 현장에 오 후보가 갔는지 혹은 처남이 간 건 사실인지 등에서 오 후보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오 후보가 의혹제기 초반에 보인 태도도 불을 지핀 요인이다. 오 후보는 지난달 9일 의혹제기 직후 “땅의 존재도 모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정황상 거짓말로 드러났다. 초반 대응이 명쾌하지 않았고, 전혀 의혹을 일축하지 못한 점은 한달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며칠 뒤에서야 “양심선언이 나오면 사퇴하겠다”며 강수를 뒀지만 이미 ‘거짓말 프레임’에 묶인 상태였다. 

측량팀장이 오 후보를 측량현장에서 봤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여권에선 ‘사퇴하라’는 요구도 거세졌다. 이번 선거의 전반적인 성격이 오 후보의 거짓말을 심판하는 선거가 아닌 것으로 보이고 보수야권에게 유리한 선거국면인 건 사실이지만 오 후보가 선거국면 내내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는 등 제1야당이 주도하는 선거판으로 이끌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 내곡동 생태탕집 안고을식당 주인 황씨가 5일 아침 사전녹음으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전화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어준의 뉴스공장 갈무리
▲ 내곡동 생태탕집 안고을식당 주인 황씨가 5일 아침 사전녹음으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전화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어준의 뉴스공장 갈무리

 

조선일보와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지난 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생태탕식당 주인과 아들을 인터뷰하는 등 막판 이슈를 생태탕집 방문 논란으로 가는데 한몫했고, 조선일보는 6일 생태탕 식당이 과거 도박방조죄로 기소유예와 과징금처분을 받은 사실을 단독보도하며 이른바 메신저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7일 생태탕집 아들이 공익신고자에 해당하는지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답변(“답변 드리기 어렵다”)까지 추가로 보도했다. 

진흙탕싸움은 선거 전날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고 10년도 더 된 오 후보의 사진을 페라가모 신발이 아니냐고 묻는 박 후보나 그 신발이 국내브랜드라고 반박하는 오 후보, 두 당사자의 책임이다. 다만 한쪽에선 인물·정책경쟁이 사라졌다고 보도하면서도 생태탕과 페라가모에 대한 논란을 중계한 언론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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