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낮 12시, KBS 1TV 뉴스 프로그램에는 ‘생활뉴스’ 코너가 있다. 지난 2011년 이래 장애인앵커들이 5분가량 생활 관련 분야의 뉴스를 전하는 시간이다. 지난달 29일부터는 제6기 장애인앵커로 채용된 최국화씨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KBS의 장애인앵커들은 뉴스 화면이 비장애인에게만 주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긍정적 취지 이면에 한시적 채용으로 그치는 보여주기식 제도라는 질타가 이어져왔다.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장애인앵커라는 자리는 어떤 의미일까. 제6기 KBS 장애인앵커로 활동하고 있는 최국화씨와 2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KBS가 선발소식을 알린 게 지난달 15일이다. 방송 시작 전까진 어떻게 지냈나.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짧게 2주 정도 교육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방송을 시작하다보니 시청자분들이 ‘쟤 진짜 부족하구나’ 생각하실 것 같아 걱정이다. 어제도 실수하고, 손이 이렇게 덜덜 떨리고.”

▲최국화 제6기 KBS장애인앵커가 지난달 뉴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KBS
▲최국화 제6기 KBS장애인앵커가 지난달 뉴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KBS

-어쩌다 지원할 결심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제 나이가 올해 마흔하나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어린 나이는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러다 (KBS 장애인앵커) 채용 공고를 보는 순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임 앵커분들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보여주는 모습은 시혜적이거나 측은하거나 불쌍한 대상인데 그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다. 또 제 고향이 경주인데 ‘KBS 앵커’ 하면 서울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행복하실까라는 생각도 했다.”

-방송 경력이 처음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복지TV’ 프로그램에서 1년 정도 MC를 맡았다. 말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장애인 대상 오디션이 있어서 지원했고, 트레이닝을 받으러 다니다 복지TV PD님의 제안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자유롭게 맛있는 거 먹고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뉴스를 하려니 너무 부족해서 아직 ‘나 뉴스 진행하니까 봐 달라’ 말을 잘 못하고 있다. 2주 동안 퇴근길 벚꽃길을 울면서 다녔다(웃음).”

-비장애인들은 장애 관련 지식이 많지 않다. 아직도 ‘정신지체’ ‘지체장애’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체장애는 저처럼 척수가 손상돼 팔, 다리 등 사지에 불편함을 가진 경우다. 절단장애일 수도, 마비가 된 경우일 수도 있다. 척수를 다친 부분 아래로 마비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지체장애 1급인데 허리 부분을 다쳐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정신지체’라는 표현은 아직 잔재가 남아있긴 하지만 정신장애를 낮춰 표현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장애 관련 강사 활동도 하셨더라.

“제가 2008년까지 병원 생활을 했다. 중국에서 사고를 당하고 한국으로 넘어왔을 때가 2007년 2월이었고, 2년 동안은 재활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다 국립재활원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사업 시작하는데 같이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제가 중국에서 한국 아이들을 잠시 가르쳤고 그전에 한국에선 어린이집 보육교사 등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 제가 교육 관련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제안을 해주신 거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두렵기도 하고, 휠체어 타고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막막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안해주신 선생님이 제겐 은인이다. 그렇게 하나를 시작하고 나니 계속 이 공부, 저 공부 욕심이 생겼고, 장애인식개선교육한다는 사람이 인권에 대해 무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인권위, 2018년 장애고용공단 강사양성과정에 도전해 교육을 맡아왔다.”

▲최국화 제6기 KBS장애인앵커가 지난달 뉴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KBS
▲최국화 제6기 KBS장애인앵커가 지난달 뉴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KBS

-뉴스 스튜디오에서도 평소에 타고 다니는 휠체어에 앉아서 진행하는 건가.

“맞다. 휠체어를 화면에 비추는 건 상징적 의미가 있다. 뉴스를 보시는 분들이 비장애인도 있지만 장애인도 있을 거고, 다른 소외계층이나 소수자 분들도 있을 거다. 많은 분들이 휠체어를 탄 사람이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고, 도전하고 싶고,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건물들이 이동권 보장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KBS는 어떤가.

“코로나 때문에 중간중간 동선을 막아놓은 곳들이 있는데, 풀리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장실, 주차구역 등등 필요한 곳들에 경사로 설치가 돼 있다. 제가 길을 잘 못 찾아서 아직은 크게 불편한 점은 없는 것 같다. 보안담당 직원분들이 항상 엘리베이터도 잡아주시고, 많이 도와주시려고 한다.”

-지금 진행하는 코너 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방송을 맡고 싶나.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한다. 사고로 장애가 생기기 전엔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했다. 과장 좀 섞어서 ‘철인 3종 경기’ 빼고 마라톤, 사이클, 수영 대회 등에 다 나갔다. 사고 이후에도 수영을 하고 있다. 아직은 스포츠를 소개하는 장애인 분들이 잘 없지 않나. 그런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특집이라도 기회가 생길 수 있으면 좋겠다.”

-기아타이거즈 시타 했던 사진을 봤다.

“야구는 진짜, 해설도 할 수 있다. 또 방탄소년단 좋아하면서부터 노래에 관심이 생겼는데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기회가 닿으면 좋을 것 같다. 노래로 사람이 참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는 걸 느꼈다. 얼마 전에 ‘KBS 3라디오’(소외계층 대상 채널)에 출연했는데 신청곡으로 BTS ‘봄날’을 신청했다. 내가 힘든 겨울처럼 힘들었던 일들을 무사히 지내고 나니 이렇게 여의도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봄을 맞은 것처럼 여러분도 아름답고 행복한 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쓰임받을 수 있는 곳이면 역할이나 자리 가리지 않고 다 잘해보고 싶다.”

-장애인앵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짧은 기간 비정규직을 뽑아 활용한다는 비판이 있다.

“전임 분들도 다 아쉬운 마음이 왜 없었을까. 이제 좀 잘 한다 싶으면 나가야 하는 입장이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 자리 내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저도 마음의 각오를 갖고 있긴 하다. 너무 미련두지 말자는 생각도 있고. 우선은 자리를 잘 잡아서 제가 나가더라도 다음 분은 언젠가 정직원이 돼서 KBS를 빛내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이 나오도록 힘써볼 테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날씨 뉴스를 야외에서 전하면, 배경으로 장애인들이 지나다니지 않도록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거리 인터뷰도 휠체어 탄 분들이 하는 걸 보신 적이 있나. KBS 면접 때도 이 말씀을 드렸다. 장애인들이 화면에 나오지 않도록 제한하는 관행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최소한 저희 장애인 앵커들이 화면에 비춰짐으로 인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장애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현실 왜곡이다.

“맞다. 그래도 인식이 조금씩 발전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매년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받기도 하고, 통합교육 덕에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과 달리 교실에서 장애인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많이 알게 되면서 보이는 과도기적인 모습이다. 장애인들이 상처받을까봐 언급을 꺼리고 조심하는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할 때 아이들이 제 휠체어를 보고 신기해하면서 ‘이게 뭐냐, 유모차냐’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부모님들이 ‘조용히 해, 하지 마’ 말하는 거다. 아이 입장에선 ‘내가 저런 사람한테 아는 척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말을 걸면 안 되는 사람인가’ 인식될 수 있다.”

▲제6기 KBS장애인앵커로 선발된 최국화씨. ⓒKBS
▲제6기 KBS장애인앵커로 선발된 최국화씨. ⓒKBS

-오히려 장애인을 과하게 의식하면서 차별적으로 보는 건가?

“그렇게 된다. 유럽권 나라에 가면 아이들이 장애인들을 잘 쳐다보지 않는데,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니라 항상 주위에서 경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통합학급 교육을 다녀온 뒤 오히려 장애인 학생들에게 낙인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강사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다보니 어떤 분들은 ‘이런 사람을 장애인이라 불러야 한다. 이러이러한 것이 정확한 용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던데, 저는 오히려 ‘최국화 선생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가르친다. ‘친구들을 외모나 별명으로 부르면 싫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름을 부르고 모르면 부르지 마세요’라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 제도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KBS에서 장애인 앵커를 내보내니까 다른 데서도 하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송사들에는) 없었고, 어느 뉴스에서도 제가 알기로는 장애인 앵커가 매일 나와서 뉴스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이런 걸 계기로 조금씩 기회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도 잘해야 할 거고, 나중엔 요구할 수 있는 부분들도 요구하려 한다.”

-언론이 장애 이슈를 다룰 땐 어떤 점을 유념하면 좋을까.

“일단 자연스럽게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자주 접할 수 있도록. 장애 당사자들의 역할도 다양한 곳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활동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들이 (화면에) 많이 비춰졌으면 좋겠다.”

-‘생활뉴스’ 진행하는 동안 어떤 앵커가 되고 싶은가.

“소통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KBS에서 저에 대한 보도자료를 낼 때 전했던 얘기가 ‘가장 작은 변화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노력하면서 이를 전할 수 있는 앵커가 되겠다’는 점이었다. 소외계층, 장애인 등 많은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듣고 놓치지 않는 사람이 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제게 주어진 역할도 그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해 달라.

“많은 분들이 도전하실 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저도 늦은 나이에 도전했고 도전했기에 성과를 얻었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을 찾은 것처럼, 많이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