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버스가 만들어갑니다.” 주간경향 최신호 표지사진이 포착한 문구다. 미얀마 한 거리를 지나는 버스 차창을 찍은 사진이다. 한국에서 중고로 수입된 버스인 듯하다. 시민들은 차창 안팎으로 세 손가락을 펴보이며 사인(sign)을 주고 받는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은 ‘편집실에서’ 칼럼을 통해 “버스 속 인물들이 미얀마인이 아닌 한국인이었다면 6월항쟁 때의 사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5·18 속 광주라고 해도, 부마항쟁 속 부산·마산이라고 해도, 2·28 민주운동 속 대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소개했다.

이 사진기사엔 ‘바이라인’이 없다. 주간경향 1442호(4월6~12일)는 미얀마 매체의 기자들이 현지에서 보낸 글과 사진들로 지면을 채웠다. 표지이야기 기사 11건이 미얀마 소식이다. 기자 실명을 비롯해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는 친군부 매체를 제외한 모든 매체를 폐간했다.

▲주간경향 1422호(4월12일) 표지 사진.
▲주간경향 1422호(4월12일) 표지 사진.

미얀마 매체 기자는 첫 표지이야기에 쿠데타 직후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을 종합한 고발 기사를 썼다. 복수의 현지 사진기자가 사진을 보내왔다. 현지 한국 교민은 인터뷰를 통해 현지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분위기를 전했다. 사선에 선 미얀마 기자 상황도 익명의 기고로 전했다. 미얀마 군부가 지명수배를 내린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장과 조합원 인터뷰도 담겼다.

주간경향 기자들은 국내 미얀마인들을 취재해 미얀마 젊은이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는 상황, 미얀마 현지보다 적극 목소리를 내는 국내 종교계 움직임을 각각 기사화했다. 국제사회가 쿠데타를 둘러싸고 단결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배경도 분석했다.

현지 기자들에 따르면 미얀마는 현재 무장한 군경이 거리를 장악했다. 군인들은 거리 곳곳의 트럭에서 격발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 수시로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저녁 8시부턴 통행 금지다. 주민들은 골목 골목 가림막을 세웠다. 가게도 오후 3시30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은행은 일부 지점을 제외하고 문을 닫았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는 접속이 불가능해, 시민들은 VPN(가상사설망)을 통해 우회접속한다. 모바일 인터넷은 차단됐고, 일부 시간엔 유선 인터넷도 끊긴다. 와이파이만 사용 가능하다.

군경은 시위대나 카메라를 발견하면 가차없이 총을 쏜다. 유독 머리에 실탄을 맞은 시신이 많이 발견된다. 군은 시위 사기를 떨어뜨리려 영아를 사살하는 전략도 쓴다. 교도소 수용자를 석방해 진압에 이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위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도 군부를 향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주간경향 1442호 ‘시민은 승리한다’의 한 페이지
▲주간경향 1422호 ‘시민은 승리한다’의 한 페이지

박병률 편집장은 최신호를 미얀마 뉴스로 다룬 배경에 “국제 뉴스를 국내 뉴스를 다루는 수준 이상으로 다뤄보자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국내 언론은 ‘해외뉴스’를 주로 ‘핫 토픽’ 감으로 다뤄왔다. 국내 정치보도는 코멘트를 하나하나 따져 분석하는데, 국제·외교 분야에는 정확한 정보 전달도 빈약했다.

군부가 벌이는 학살의 의미를 다시 새긴 계기도 있다. “논란이 된 5·18 소재 만평에 달린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군부 독재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감수성, 민주화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너무 떨어졌다. 눈을 돌려 미얀마를 보면, 우리가 겪어왔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총에 맞고 머리가 터져 죽는다. 미얀마 소식을 (국내 뉴스 수준으로 다루며) 우리의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한편 ‘미얀마를 통해 우리를 보자’는 뜻도 있었다.” 박 편집장의 설명이다.

주간경향은 현지 기자들에게 “쓰고 싶은 대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한 독립PD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다. 20매를 요청했는데 꾹꾹 눌러 담은 50매가 도착했다. 덜지 않고 실었다. 바이라인이 없는 사진들은 각기 다른 기자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일부는 온라인 아닌 지면으로만 볼 수 있다. 해당 사진을 찍은 직후 기자가 군부에 체포됐다. 어떤 기자는 손에 총을 맞았다. 박 편집장은 “머리에 총을 맞아 뇌수가 흘러내리고 피가 고인 사진, 두들겨 맞는 사진 등 잔혹한 사진이 다수였다. 그중 시민이 잡혀가는 장면을 골라 실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얀마어로 기사를 싣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미얀마 현지 기자의 기사를 미얀마어로 요약한 2매짜리 기사를 준비했지만 조판이 지원되지 않아 끝내 못 실었다. “준비한 다른 기사들은 한국인이나 한국어 쓰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지 않나.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사람들도 봤으면 했는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는 것.

주간경향은 이번 호 뒤로도 미얀마 쿠데타 관련 보도를 주요 뉴스로 준비하고 있다. 박 편집장은 “언론이 국제 사안을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엔 특파원이 기사를 쓰거나 국내 기자가 외신을 인용하고 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바로 현지에서 반응이 온다. 그에 비해 취재를 할 수 있는 사적 네트워크는 더욱 잘 갖춰졌다. SNS 페이지를 통해, 국내 교민과 연대단체를 통해 앉아서도 국제뉴스를 쓸 수 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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