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서울지역 장애인단체와 간담회에 참석했다. 오 후보는 자신의 과거 시장 재임기간에 장애인 권익을 위한 일에 “정말 많이 부족했었다”며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뒤 “가슴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관협회 관계자는 “반대만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 담당자는 ‘복지사 처우를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오 후보가 시장이 돼서 반대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오 후보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낸 장면이었다. 

오 후보는 간담회 후 건물 앞에 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을 보자 악수를 청했다. 이형숙 전장연 상임대표는 장애인들이 지난해 12월 오 후보가 예비후보 시절부터 수없이 공문을 보내고 사무실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는 등 정책협약을 제안했는데 이를 받아봤느냐고 물었다. 장애인들은 가짜정당 ‘탈시설장애인당’을 만들어 공식선거운동 기간 전까지 장애인 정책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 후보는 이 대표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오 후보에게 11대 정책이 담긴 서류를 직접 전하며 정책협약식을 재차 요청하자 오 후보 측 관계자가 이를 만류했고, 이후 오 후보는 이 대표와 함께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오 후보가 서류를 이 대표에게 다시 돌려주자 이 대표는 해당 서류를 가져가 달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성 정치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 3월31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장애인들 정책협약 요구에 응하는 모습. 사진=노컷브이 갈무리
▲ 3월31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장애인들 정책협약 요구에 응하는 모습. 사진=노컷브이 갈무리
▲ 3월31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장애인들 정책협약 요구에 응하는 모습. 사진=노컷브이 갈무리
▲ 3월31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장애인들 정책협약 요구에 응하는 모습. 사진=노컷브이 갈무리

 

전장연은 지난 2일 오 후보가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정책요구안을 받아갔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정책수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1개 정책은 재난시대 장애인 지원체계 마련, 장애인 탈시설권리 보장,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보장,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 보장, 뇌병변장애인 의사소통 권리 보장·종합지원 체계 마련, 장애인 문화예술 권리 보장,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여성 권리 보장, 장애인 건강권 보장 등이다.

거대양당의 공방이 치열하지만 함께 다뤄야 할 사회적 약자·소수자 관련 공약은 이처럼 배제돼있다. 장애인 정책 말고도 1000만 도시 서울을 위해 일할 시장이 고민해야 할 사안은 다양하다. 

이민·다문화 공약 없어 학자들 나서
재개발·재건축 공약뿐, 빈민정책은?

한국이민정책학회(회장 김태환)는 지난 1일 서울시장 후보에게 이민·다문화정책에 대한 공약을 제안했다. 

해당 학회는 “이민자와 내국인과 갈등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이민자에 대한 서울시민의 수용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은 무엇인가”, “외국인 출신 주민밀집 지역(거주지 공간 분리)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와 대안”, “이주민 유입이 서울시 인구동향과 미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지”, “종교 등으로 이주민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이들을 포용할 방안”, “다문화가족지원 정책에서 영유아정책은 소외됐는데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이주민에 대한 코로나 검사와 자가격리, 백신접종에 대한 입장” 등을 공개질의했다.     

해당 학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후보자들 공약 중 이민·다문화 정책을 확인할 수 없어 전문가들이 작성했다”고 전했다. 

빈민정책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달 29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주대책 없는 재개발·재건축 공약, 오세훈 후보는 민간개발 활성화 정책을 내놓은 것을 비판했다. 이에 반해 노점상·홈리스·쪽방촌·철거민 등 주거약자에 대한 공약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는 지난달 17일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정책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을 보내 온 곳은 송명숙, 신지혜, 김진아, 신지예 후보였다고 밝혔다. 

어린이·청소년, 성소수자도 정치 주체로 

투표권이 없지만 어린이·청소년들도 이 사회의 주체다. 그러나 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선거에선 철저하게 배제됐다. 선심성 공약으로 어린이 관련 정책을 끼워넣거나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을 대변하는 공약을 일부 내놓는 수준이다. 일부 후보들이 내놓는 어린이 관련 공약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어린이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어린이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어린이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어린이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와 신지예 무소속 후보는 ‘어린이청소년행복특별시 시민선언추진위원회’와 지난달말 정책협약을 맺고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고민할 사회적 의제를 던졌다. 3대 주요과제의 첫째는 놀 권리와 쉴 권리다. 어린이들이 충분히 쉬고 마음껏 놀 권리를 말한다. 치열해지는 입시경쟁과 코로나로 놀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둘째는 깨끗한 환경을 물려받고 후대에게 물려줄 권리, 끝으로 민주시민으로 어린이·청소년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할 권리 등이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지난 2일 주거권 정책을 요구했다. 아동학대, 가정 내 (성)폭력 등으로 탈가정 아동·청소년의 주거권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주거위기를 겪는 이들에 대한 긴급주택 지원과 함께 이들을 시설에 집단수용하는 기존 정책을 넘어 탈시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시는 현재 긴급복지지원제도, 주택바우처 제도 등을 마련하고 있지만 탈가정 어린이는 배제돼있는 등 제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국제아동인권센터 등 11개 단체가 5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아동권리, 아동보호체계 등을 정책에 반영해달라는 정책질의를 지난달 보냈지만 오세훈, 허경영, 이수봉, 김진아 후보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들 단체는 아동 권리 관련 예산을 확대하고 관련 정책과 조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들도 정책질의와 답변을 공개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달 26일 각 후보들에게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다양한 가족구성을 차별하지 않는 주택공급, 공무원 대상 성소수자 인권교육 진행 등을 요구했다. 박영선·오세훈 등의 후보는 답이 없었고, 답을 보내온 후보는 신지혜, 오태양, 송명숙, 신지예 후보였다고 전했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5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제도에서 배제되고 공공장소에서 지워지는 트랜스젠더와 여성들은 거리로 나왔다. 차별대우 속에 일상이 위험에 노출된 이주노동자들과 터전을 잃은 가난한 이들, 장애가 있는 이들, 부당하게 일터와 정상성의 제도에서 밀려난 이들이 차별의 벽을 두드렸다”며 “이들에게 귀기울이는 후보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영웅’이라던 의료노동자들 질문에 무응답

코로나 재난에 힘들게 노동현장을 지키는 의료·돌봄노동자들의 정책질의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는 지난달 24일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코로나 대응대책을 제안하는 정책질의서를 보냈다. 지난달 31일 이들은 지지율 1위인 오세훈 후보를 비롯해 허경영, 이수봉, 배영규, 정동희 후보 등 약 절반이 답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코로나 매뉴얼을 현장노동자·전문가와 함께 만들 것,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확대·강화, 서울시사회서비스원(돌봄서비스 제공)에 대한 정규인력확충과 역량강화 등 사업계획 수립과 지원, 감염확산시기 재가요양보호사 해소기 생계지원대책 마련, 사회서비스노동자 지원조례 제정, 감염확산 시기 노동시간 축소에 따른 생계지원대책 마련, 복지시설 내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 준수되도록 서울시 지침 개정, 사회복지예산 삭감 원상회복, 코로나 필수노동자 지원대상에 방문간호사 포함 등이다. 

선물보따리 같이 내놓기만 한 공약들

각 캠프의 이러한 소극적 답변태도는 향후 공약실현이나 시장직 수행을 예상하는 기준 중 하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난달 29일 서울시장 후보자들 공개질의서 회신 내용을 공개했다. 도시구상의 비전과 목표, 10대 핵심공약과 우선순위(사업주체·재원성격), 핵심공약 추진일정, 총 공약수와 공약 가계부, 정책의 지속성 등이다. 

이 단체 분석을 보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총 공약은 59개로 국책사업 8개(21년 재원 8190억원) 자체사업 51개(21년 재원 3조3000억원)로 구성됐고, 오세훈 후보는 최종 공약 미확정을 이유로 총 공약수와 소요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이 단체 분석결과 두 후보의 10대 공약은 1년3개월 잔여임기내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메니페스토본부는 “잔여임기 수행하는 시장이 할 수 있는 건 2021년 하반기 인사 정도이고 12월 국회·서울시의회 예산심의를 통과해야 정책공약 실행을 위한 예산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임기 내 실현할 정책공약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이에 “부실한 공약 가계부가 보여주듯 정책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보이고 선물보따리처럼 풀어놓는 후보들의 정책공약이 임기 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봤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약을 제안하는 여론에 대한 태도가 정책선거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로 보인다.

▲ 돌고래쇼. 사진=노컷뉴스
▲ 돌고래쇼 모습. 사진=노컷뉴스

 

또한 공약을 통해 사회적 의제를 던지는 경우도 있다. 신지혜 후보는 동물해방물결과 정책협약을 맺어 “코로나가 남긴 교훈은 인간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자연과 동물에 대한 학대를 지속해선 안 되며 새로운 공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실험이나 동물쇼 없는 서울과 탈육식을 선언해 공장식 축산방식에 경종을 울렸다. 

[관련기사 : 4월 재보선 외면받는 마을미디어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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